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시간이 흐른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아침이 지나면 점심이 오고, 계절이 바뀌면 해가 바뀐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늙어가고, 세상이 변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시간’은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이 유지되지 않을 것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불교는 단호히 말한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물리적 시계를 부정하는 주장이 아니다. 불교에서 ‘시간이 없다’는 뜻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해석일 뿐이라는 의미다.
만약 인간이 ‘시간’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산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어휘가 없고, ‘과거’나 ‘미래’라는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식은 오직 ‘지금’이라는 경험만 남게 된다. 햇살이 따뜻하다면 그저 그 순간의 온기를 느끼고, 비가 내리면 그저 빗방울의 소리를 들을 뿐이다. 무엇이 ‘지나갔다’ 거나 ‘다가온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매 순간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찰나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과거’란 이미 지나간 현재에 대한 기억이며, ‘미래’란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기억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만이 실제로 존재한다. 불교는 이 상태를 ‘찰나(刹那)’라고 부른다. 모든 것은 찰나마다 생겨나고, 사라지고, 다시 새로 태어난다. 즉, 세상은 ‘시간’이 흘러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찰나마다 새롭게 일어나고 꺼지는 변화의 연속으로 존재한다.
시간은 세상의 본질이 아니라, 인간이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언어적 장치’다.
꽃이 피고 시드는 과정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단지 원인과 조건이 달라지면서 생겨난 결과일 뿐이다. 즉, 시간은 사물의 변화에 이름을 붙인 해석이지, 실제로 흐르는 실체가 아니다.
지도는 땅의 축소판일 뿐 땅 자체가 아니듯, 시간도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개념일 뿐이다.
시간을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항상 ‘과거’와 ‘미래’ 사이를 오가며 산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지금의 자신은 늘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이 인식 속에서는 행복이 언제나 미래에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언젠가 이뤄지면’이라는 생각이 삶을 끝없는 추구의 여정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 여정의 끝은 결코 도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은 항상 ‘지금’이 아닌 ‘어딘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모든 순간이 이미 완전한 현실임을 깨닫는다. 그에게 인생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피어나는 것’이다. 과거의 흔적에 머물지도, 미래의 그림자를 좇지도 않는다. 매 순간의 감각이 곧 삶의 전부이며, 그 찰나의 충만함 속에서 평온이 생겨난다.
불교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삶을 자유롭게 인식하기 위한 깨달음의 언어이다. 삶은 선처럼 이어진 것이 아니라, 찰나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점들의 연속이다.
이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삶은 흘러가는 강이 아니라, 순간마다 피어나는 생의 빛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