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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킴 Oct 14. 2023

'미비포유'로 보는 결혼, 불확실성의 확실성

나의 배우자가 사고로 불구가 된다면

오늘의 곁들임


 


Movie 
미비포유




Music  
에드시런  PHOTOGRAHP




결혼,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결혼만큼 가치관 차이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비혼'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버린 지금,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다. '기혼'들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할거면 해보고 후회 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미혼'도 있다. 미혼은 결혼을 하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판단력이 흐려지면 결혼을 하고 이해력이 떨어지면 이혼을 하고 기억력이 떨어지면 재혼을 한다는 농담을 만들어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결혼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고,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늘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측정하고 비교한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같은 돈을 썼을 때 더 만족감을 얻기 위해 가성비를 검색한다. 여행을 가더라도 유한한 시간의 소비자로서 가장 큰 재미를 얻기 위해 여행 코스를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그래서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기 전에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고민한다. '이 사람과 결혼해야할까?' '아이를 낳아야할까? 낳는다면 언제 낳는 것이 좋을까?' 



나와 결혼할 배우자는 어떤 사람일까?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배우자 기도문을 만들어서 매일 소리내 읽었더니 이상형을 만났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었더니 좋은 사람이 내게 나타났다고 이야기했다. 그 방송을 보고 나서 나도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서 나와 어떤 사람이 맞을지 가늠해보았다. 내 성격의 장단점을 적어보고 배우자와 겪게 되는 불화의 씨앗을 제거해보기 위함이었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나서는 친구에게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어떨까?' 물어보며 고민상담을 하기도 하고, 답답할때는 사주나 점을 보고 타인의 의견에 기대었다.



내가 여러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것처럼 상대도 나를 보면서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그렸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탐색한 후 내린 결정이 '결혼'이다. 쇼핑을 하거나 식당을 고르는 것보다 더 오랜 기간 고민하였기 때문에 완벽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이 생각대로 흘러간다는 법이 있을까?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음에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불쑥 터졌다. 내가 결혼하자마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가 보기엔 결혼하더니 일을 바로 쉬는 것처럼 비춰졌다. 나는 직장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것이라고 설명하였지만 새로운 직장을 찾는데 시간이 길어지자 상대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또한 제사와 가족 문제가 얽힌 일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자라온 가치관 문제가 충돌하기 십상이였다. 그 문제 때문에 결혼하고 나서 많이 싸웠다. 우린 서로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난하고 할퀴었다. 마지막엔 늘 이렇게 외쳤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한 줄 알아?'



그때쯤 보게된 것이 '미비포유'이다. 미비포유의 주인공 '윌'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휠체어 위에서 평생을 살아가야한다. '루이자'는 윌의 간병인으로 일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전신이 마비된 윌은 밥을 먹는 것부터 씻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혼자 할 수 없다. 루이자와 윌의 모습을 보며 '남편이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는 상상 속에서 휠체어에 환자이고, 내가 그를 위해 모든 수발을 들어주는 모습이 그려졌다. 내가 상황을 받아들일 있을까? 그의 보호자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반대의 상황으로 내가 사고로 전신마비가 환자가 된다면? 그를 생각하는 마음에 나와 이혼하고 새로운 사람을 찾으라고 말하지 않을까? 당장 내일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잇는 질문이 이어졌다. 영화를 보고 여운은 꽤나 길었나 보다. 다음날 싸울 일이 생겼지만 어제의 그 질문이 생각나 넘어가기로 했으니. 


 

'미비포유의 상황이 우리에게 닥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을 하다가도 종종 그 생각이 났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상황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결혼은 불확실성의 확실성이라고 결론내렸다. 





결혼하고 나서 그 사람이 어떨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절대로 미리 다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한가지 확실한 건, 그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우리는 서로 사랑해서 여생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확실성' 하나로 인생의 무수한 '불확실성'을 헤쳐나가기로 결심했다는 것.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가 사랑한다는 확실함 하나로, 우린 결혼하기로 결심했다는 것. 내겐 그 것이 중요하다. 



나는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결혼하니 어때? 나 이 사람과 결혼할지 고민이야'라고 물어올 때마다 미비포유를 보라고 조언해준다. '너라면 상대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도 그 사람을 사랑할거야?' 결혼 전에 그 질문을 깊게 생각하다보면 진짜 마음을 목격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결혼은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인생의 언덕길을 같이 올라가며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나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변치 않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 


'불확실성' 속의 '확실성'은 그런 것이다. 



오늘도 그는 침대가 아니라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있다. '여보는 나랑 왜 결혼했어?'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 그에게 슬쩍 물어본다. 아마 기혼자들은 공감할지 모른다.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걸 알지만 대답을 기대하게 된다. 

대답은 늘 달라진다. '몰라~' 하면서 웃어넘길 때도 있고, '그런 질문 할 시간에 청소나 하라'며 등짝 스매싱이 날라올 때도 있다. 

그래도 눈빛 속에 담긴 진심을 안다. 

'나는 너를 믿기 때문에 결혼한거야. 너도 그렇지?' 라고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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