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개념이 부족한 1학년 아이들은 일주일 남았다, 열흘 남았다고 말해주면 계산하지 못한다.
그래서 손가락을 펴면서 하루하루 세어간다. 현장체험학습 가는 날은 웃음꽃이 피고 설렘으로 가득찬다.
"오늘 소풍간다고 생각하니까 설레서 어제 한숨도 못잤어요~! 선생님!!"
기다리는 시간마저 가슴이 콩닥콩닥.
갓 어른이 되었을 때가 기억나시나요?
'난 커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 꿈을 이루면 또각 구두를 신고 다녀야지!'
사랑, 우정, 꿈 모두 갖겠다고 덤비던 시절이 있었다. 갖고 싶은 게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꿈 많은 소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소녀는 점점 생기 잃은 눈빛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따금 지하철 창문에 똑같은 하루에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 어른의 모습이 비칠 때면 깜짝 놀란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피곤한 내 눈동자를 보노라면 10년 전 서울 지하철을 처음 타고 설레여하던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열여덟의 나는 TV 뉴스에 나오는 국회의사당과 경복궁이 서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우리 가족은 바다로 여행가는 것을 좋아해서 여행으로라도 서울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에 뽑혀 발대식에 참여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엄마는 서울에 간다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같이 기차를 타고 가주었다. 엄마랑 둘이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을 때의 그 때 그 놀라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게 우리나라라고?' 집 근처의 모습과 전혀 다른 풍경에 깜짝 놀랐다.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빌딩은 마치 외국에 온 것같은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아주 어려웠다. 내가 살던 동네는 지하철이 없어서 한번도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야만 하는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야하는 것일까? 타는 방향도 어려웠고, 노선 색깔은 또 어찌나 많은지! 수많은 지하철 노선이 미로같이 느껴졌다. 역무원에게 물어물어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소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지 오래다. 익숙하게 지하철을 타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움직여도 발걸음이 알아서 목적지까지 안내해준다. 자주 다니는 노선은 앞을 보지 않고 걸어도 유령처럼 저절로 움직인다.
나는 꿈꾸었던 것들을 이루는데 성공한 멋진 어른이 되었을까?
먼저, 우정부터 보자면 '흠...' 스럽다.
모든게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영원히 친하게 지낼 것을 약속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퇴근하고 나서 남는 시간을 쪼개 친구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경조사 때가 아니면 얼굴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사랑을 보자면 더 '흠...' 스럽다.
영원히 사랑할 것을 약속했던 첫사랑과는 헤어진지 오래다. 물론 그 다음에 줄줄이 만난 남자들과도 똑같이 약속했지만 줄줄이 헤어져버렸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정과 사랑 모두 실패했으니 다음 순서인 '꿈'은 어떨까? 꿈을 보자면 더욱 처참하다. 예전 내 꿈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기가 찬다. 나는 생활통지표에 우주가 좋아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써냈다. 아뿔싸, 우정, 사랑, 꿈 어느 것 하나 이룬 것이 없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을까?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울고 웃고 행복하고 불안하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사랑과 이별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한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고 나면 수많은 감정들을 배우게 된다. 처음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은 새롭고 설레여서 잠도 잘 못잤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꿈을 얘기했던 순간이 별처럼 반짝였다.
참 해맑았던 순간들이었지만 정작 그 순간에는 몰랐다. 지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맑고 순수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 그 때의 감정도 잘 알게 되면서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된다. 이렇게 했었어야하는데, 하는 후회와 그렇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아련함이 밀려온다. 다시 열정 넘치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