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온해야 풍경도 보인다.

by 민수석

몇 년 전, 순천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순천만 습지를 오르던 중, 갑자기 장 트러블 신호가 왔습니다.

맛있다고 무리해서 먹은 게 문제였죠.


가는 길에 ‘전망대까지 왕복 40분, 마지막 화장실’이라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잠깐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이 줄 서 있기에 ‘40분쯤은 괜찮겠지’ 하고 그냥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긴급 신호가 옵니다.


와이프와 아이를 뒤로한 채

화장실을 향해 전력 질주했습니다.

내리막길임에도 불구하고 날다람쥐 저리 가라였습니다.

축지법이라도 쓴 듯, 인간의 한계를 넘는 속도였습니다.


중간중간 사진 찍는 어르신들이 길을 막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엔 경치도, 예의도 다 잊혔습니다.

그분들이 왜 그리 미운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20분 거리를 거의 날아오다시피 내려와

큰일 없이 마무리했습니다.

그날, 사람은 위급할 때 정말 초인적인 힘을 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위험 신호가 오면 미리 대비하자.

둘째, 경고를 무시하지 말자.

셋째, 내가 위급하면 좋은 경치고 뭐고 다 소용없다.


재난 영화에서도 늘 전조가 있습니다.

지진계가 흔들리고, 동물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지만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그러다 위험하다고 느낄 땐 이미 늦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장 트러블이라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순천만의 풍경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을 겁니다.


비행기를 탈 때, 위급상황 시 산소마스크를

아이보다 보호자가 먼저 써야 한다고 합니다.

보호자가 안전해야 아이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죠.


내가 위급하니 가족도, 주변 경치도 챙길 수 없었습니다.

휴직했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 멘탈이 흔들리니 가족을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나 자신이 평온해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깁니다.

가족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기보다

나를 먼저 돌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후로 순천을 다시 찾은 적은 없습니다.

언젠가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때 놓친 풍경을 평온해진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진 나와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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