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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석 Oct 29. 2024

계속된 질문의 힘

대학원 삐약이 시절

대학원 시절 제일 공포스러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룸 세미나'였습니다.


신입생들이 정해진 책으로 스스로 공부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교수님께 질문해서 답을 구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 시간이 공포스러웠던 이유는

신입생이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교수님은 신입생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까지 역으로 질문을 계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교수님 책에 보니까 반도체의 원리가 나오는데 어떻게 동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도체가 뭔지 설명해 보게'

'도체와 부도체 중간 성질을 가진 것으로 특정 조건에서 도체의 성질을 갖는 것입니다.'

'도체와 부도체의 특성이 뭔가?'

'특정 조건이라고 했는데 그 특정 조건이라는 게 뭔지 설명해 보게.'

'전자와 정공이라고 했는데, 전자의 특성이 어떻게 되지?'




이런 식으로 거꾸로 질문해 들어가다 보면 분명 막히는 부분이 생깁니다.

교수님 입장에서는 질문자가 모르는 것을 집어서 알려주시기 위해서였지만


앞에 서서 질문받는 입장에서는 땀이 뻘뻘 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근본적인 걸 질문받게 되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많았거든요.

1+1=2가 되는 것이 당연한 건데 왜 그렇게 되냐고 질문받는 느낌..


신입생에게 질문해서 대답을 못하면 그다음은 신입생 동료에게 질문이 돌아갑니다.

'동기 중 아는 사람 있으면 설명해 봐.'

'동기 중 아는 사람 없으면 재학생(2학기~4학기) 중 나와서 설명해 봐'

'재학생 중 아는 사람 없으면 박사들 나와서 설명해 봐'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썰렁해집니다..

질문했던 신입생은 죄인처럼 옆에 계속 서있어야 합니다.

대답 못한 재학생, 박사들도 마찬가지로 신입생 옆에 같이 서있어야 하고요.

근본적인 것에 대해서는 박사과정에 있더라도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대답하는 과정에서 명확하지 않으면 또다시 질문이 이어지니

아무도 대답 못하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교수님이 직접 설명을 해주십니다.



그러다 보니 혼나지 않기 위해 질문 만들 때 교수님의 예상 질문과 관련된 것들을

다 찾아서 공부하게 되는 (?) 기능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깨지는 건 마찬가지였죠.

설명해 주시는 방식이 거칠긴 했지만, 이걸 극복해 나간 과정이 추후 고객들을 대할 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옆에서 아무리 욕을 해도 의연하게 넘길 수 있는.. 도움..


역시 살면서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연구실은 룸 세미나만 한다고 하면 모두 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이 없이 교수님이 연구실에 오시면 진행되는 거라

항상 긴장하고 있었네요.


교수님은 질문을 계속 던지십니다.

질문하는 신입생으로 하여금 뭐를 모르고 있는지를 깨닫고 스스로 답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동기들은 문제를 다 내고 자는데,

혼자 문제 못 내고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았는데요,

서태지가 은퇴 이유로 들었던 창작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기억입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근본을 찾아가는 이러한 질문을 하고 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퇴사를 하고 싶어. 왜?

자유롭고 싶어서. 왜? 뭐가 자유인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거든.

네가 좋아하는 일은 뭔데?

지금 상황에서는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아봤어?



본질을 찾아가는 질문도 연습이 필요한 듯합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사색하고 길을 찾아야 합니다.


독서와 글쓰기가 연습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한 번에 바로 답을 알려주지 않고 제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다양한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변하면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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