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주치의 Mar 28. 2019

3. 아이들은 당신들에게 낳아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Epi.02. 이혼, 육아, 우울, 자녀와의 갈등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들

Episode.02


오늘은 목요일 오후 외래 시간.

평소 같으면 목요일 오후는 외래 환자분들로 붐비는 시간이다. 제대하고 1년 남짓한 나도 목요일 오후는 30명 넘게 외래를 봐야 하니까 목요일 오후는 정말 그런 날인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외래 간호사들도 조용하고 그렇다. 이런 날은 뭔가 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은 그런 느낌이 오는 날이다.


평소 같으면 커피를 진하게 내렸겠지만 이런 날은 좀 느긋해지고 싶다. 그래서 아껴 마시던 프랑스산 홍차를 꺼냈다. 진료실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서 프랑스산 홍차의 깊은 풍미를 느끼고 있는 사이 그녀는 진료실로 들어왔다.  




40세 여성인 미진 씨. 2년 전 이혼한 후 9세, 13세 딸 2명을 본인이 양육하고 있었다. 남편은 이혼 후에 애들을 보러 오지도 않는다. 남편과 이혼 후에 남편이 보내주는 양육비는 고작 월 30만 원. 미진 씨는 딸들을 키우기 위해서 대형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다. 매일매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10시쯤 돼서야 들어오지만 집에 도착한 미진 씨를 반기는 이는 없다.


은 소파에서 핸드폰만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 미진 씨는 이혼 후에 자신이 힘들게 일하면서 딸들을 돌보고 있지만 딸들은 항상 그것에 고마워하기보다는 아직도 부모 이혼에 대해 미진 씨에게 투덜거린다. 그리고 미진 씨가 와도 핸드폰만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진 씨는 그 날 저녁 참을 수가 없었다.


두 딸에게 욕설을 하고 화를 내며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아빠는 너희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데도 엄마가 너희를 거둬 먹이고 있는 것인데 왜 감사해하지 않냐면서 화를 냈다. 자신들이 왜 엄마한테 감사해야 하냐며 대드는 큰딸의 말에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에는 큰딸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미진 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분명 이혼할 때에는 남편보다 자신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부모님께서는 자신에게 미안해하시며 미진 씨에게 아이들을 자신들에게 맡기고 새 출발하도록 권유했었다. 친정 부모도 미진 씨에게 아이들을 넘기고 새로 시작하라고 했다. 하지만 미진 씨는 차마 아이들을 보내고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버겁다. 남편은 양육권을 넘기는 대가로 양육비를 30만 원만 준다고 했다. 당시에는 자신이 돈 때문에 아이들을 키우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고 쿨하게 수락했지만 정작 이혼하고 나니 경제적인 어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양육비를 더 달라고 하고 싶진 않다. 이혼하고 나서도 얼마든지 워킹맘으로서 일과 육아를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미진 씨의 어려움은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아니었다. 이혼한 사실에 대해 아직도 화를 풀지 않고 있는 두 딸들을 대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어느 순간 드는 생각은 딸들을 버리지 않고 키우고 있는 부모는 자신이라는 생각이다. 그 생각이 들면 어느 순간 서운하고 가끔은 화도 난다.


이혼하기 전에는 이혼만 하고 나면 행복해질 것 같았다. 성격도 안 맞고 걸핏하면 애들 앞에서 다투는 부부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도 남편보다 엄마 편에서 힘이 되어주고 감정적인 지지를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진 씨의 생각과는 달리 이혼 후의 삶은 더 메마른 사막처럼 느껴졌다.  


미진 씨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지금의 삶을 헤쳐나가야 할지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서점에서 정신과 의사가 쓴 책들을 보면 뭔가 일반적인 이야기들은 많은데 자신에게 딱 맞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게 미진 씨는 잠을 이루지 못한 초췌한 얼굴로 진료실을 찾았다.  




Pt: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Dr: "네. 안녕하세요. 어떤 어려움으로 내원하게 되셨나요?"


Pt: "(눈물을 흘리면서) 제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모든 것이 다 자신도 없고 우울하고 그래요. 내가 너무 싫고 짜증 나고 그래요."


Dr: "많이 힘드신 것 같네요.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드세요?"


Pt: "네. 사실 2년 전에 남편과 이혼하고 제가 아이들을 맡아서 키우고 있어요. 일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는 건 좋아요. 그런데 어저께는 저녁 10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두 딸이 반기는 내색 없이 핸드폰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서운하고 화가 나서 애들한테 화를 냈어요. 그런데 오히려 대드는 큰딸 아이 얼굴을 뺨으로 여러 차례 때렸어요. 그러고 딸아이가 쓰러져서 울고 있었는데 순간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괴물처럼 보였어요. 막 흥분해있는 괴물요."                                                  


Dr: "그래요. 물론 딸아이의 행동에 서운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이유에서라도 아이를 때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잘못된 행동의 원인을 같이 찾아보고 이해해보도록 합시다. 괜찮으신가요?"


Pt: "네. 선생님."


Dr: "그럼 우선 간단한 우울, 불안 정도를 체크하는 설문지를 드릴 테니 설문지를 자신의 증상에 맞게           체크하신 후에 다시 면담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Pt: "네. 선생님. 도와주세요. 제가 너무 괴로워요."


Dr: "네. 도와드릴게요. 꾸준히 치료를 받으시면 저마다 치료기간은 다르겠지만 좋아지실 겁니다. 그럼 설문지 작성 후에 뵙겠습니다."


Pt: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딸아이를 울릴 정도로 때린 후에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모습이 괴물처럼 느껴졌다는 미진 씨. 정말 그 순간에는 거울에 보인 자신이 괴물이었을 것이다. 딸아이를 훈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벌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조차도 자녀를 때린 행동은 절대 합리화될 수 없다.) 누구보다 자신은 알기 때문이다.


이혼 후에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하며 경제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던 미진 씨는 최소한 자녀들에게는 자신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 정도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큰일이 아니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보았을 때 과연 그것이 자녀들에게 당연한 요구였을 지는 의문이다.  




Dr: "검사 결과를 보니 우울한 정도가 매우 심한 정도네요. 불안한 정도도 심하시고요. 이 정도면 사실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우울한 이유가 어떤 걸까요?"


Pt: "사실 마트에서 일하는 것도 쉽진 않아요. 저는 이혼 전까지 그저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 가정을 꾸렸거든요. 남편과 자주 다투고 성격차이로 하루 걸러 싸우는 것이 반복되면서 서로 너무 지쳐갔어 아이들한테도 안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고요. 그렇게 저희는 이혼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아이들을 키워야 되기 때문에 마트에서 오후 열 시까지 일을 해요. 열 시까지 일을 마치고 나면 아이들을 챙겨주려고 마트에서 남은 음식들을 싸게 사서 집에 가요. 음식들을 집에 갖고 가면서 저는 아이들이 저를 반겨줄 거라고 생각하며 돌아가죠. 그런데 집에 가면 항상 아이들은 저를 반기지 않아요. 각자 핸드폰만 보고 있어요. 음식들을 펼쳐놓고 먹자고 해도 안 먹어요. 저는 정말 힘들게 살거든요. 선생님. 일은 하루 종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의 이런 모습은 너무 힘들어요...(침묵)"


Dr: "네. 이혼 후에 남편이 풍족한 양육비를 지원해줘도 엄마 혼자 아이들을 돌본 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미진 씨는 양육비마저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늦게까지 일도 하고 집에 와서는 아이들도 다 챙겨야 하고 힘든 것이 너무 당연합니다. 그렇죠."


Pt: "네. 맞아요. 저는 아이들을 제가 맡아서 키우면 아이들이 최소한 저에게만큼은 이혼한 것에 대한 원망보다는 고마워할 줄 알았어요. 그래도 저는 아이들을 버리진 않았거든요. 남편은 떠나버렸잖아요. 그런데 왜 이 모든 원망을 제가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진짜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편으로는 시댁 부모님이 자신들에게 아이들을 맡기라고 했을 때 맡겼다면 아이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안 좋아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미진 씨는 면담 시작부터 자신의 괴로움을 끝없이 표현했다. 자신의 고통을 누구라도 좀 알아주길 원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을 고통일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진 씨가 누구에게 이런 고통을 말할 수 있었을까?


양육권을 처음에는 서로 원했지만 미진 씨가 원하자 매달 양육비 30만 원을 주고서 양육권을 넘긴 남편? 아이들을 자신들에게 보내고 새 출발을 종용했던 시부모님?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도와주기 힘들다며 시댁에 보내라고 했던 친정어머니? 아니면 틈만 나면 수다 떨며 가십거리를 찾아 헤매는 마트 직장 동료들? 원래도 자신의 결점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성격인 미진 씨는

정말 그 누구에게도 이런 고통을 나누지 않고 있었다.

 

Dr: "미진 씨는 여태껏 누구에게도 이런 고통을 말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이 곳은 대나무 숲과도 같습니다. 재단사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떠들 수 있었던 그 공간 말이죠. 이 곳에서는 어떠한 말을 하고 감정을 토해내도 됩니다. 누군가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모든 말은 비밀 보장이 되니까요. 면담 시작 후에 자신의 고통을 10분 정도 토해내셨는데 좀 어떠신가요?"


Pt: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지금도 해결된 건 하나도 없지만 최소한 가슴이 터질 것 같진 않네요."


Dr: "네. 그래요. 그렇게 우선은 안정을 찾으셨으니 저도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최근에 자신이 많이 예민해지거나 짜증이 많아지진 않았나요?"


Pt: "너무 예민해졌죠. 짜증도 많아졌고요. 누가 조금만 자극하는 말을 해도 참을 수 없어요. 이유가 뭘까요?"


Dr: "이유가 뭘까요?"


Pt: "이유요? 상황이 힘드니까요?"


Dr: "네. 물론 그렇죠. 또 한편으로는 미진 씨의 내적인 마음이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들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우울하고 고통받는데 주변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예민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Pt: "네... (침묵)"


미진 씨는 한동안 숙연해졌다. 본인의 고통을 알아달라며 쉬지 않고 감정을 쏟아내던 미진 씨가 갑자기 숙연해진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미진 씨는 자신이 큰딸을 때린 행동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죄책감은 미진 씨에게 상당한 고통을 안겨줬을 거고 동시에 미진 씨의 자아는 부정, 합리화, 투사라는 미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해서 자신의 죄책감은 부정하고 본인의 고통을 호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먼저 "얼마나 힘들었나요?"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미진 씨의 자아는 위로받게 되었고 결국 방어적인 태도를 풀게 되었을 것이다. 타인의 진심 어린 위로와 공감만이 미진 씨의 미숙한 방어기제를 풀어내고 온전히 자신의 불안정했던 모습을 바라보는 데에 필요한 것이었다.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2. 당신의 생각은 사실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