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아니에요. 수면제가 아니더라도 다소 졸린 효과가 있는 항우울제, 항불안제가 있습니다.제가 처방한 약물도 취침 전에 복용하면 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물이고요.콧물 약도 먹으면 졸린 느낌이 있지만 수면제라고 안 하잖아요. 그런 거예요."
Pt: "아. 네. 그래서 그런지 전보다는 조금 잤어요. 그래도 여전히 잠드는데 한 시간 정도는 걸리는 것 같고요. 물론 한 시간 동안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계속 생각이 나긴 하고요."
Dr: "생각을 안 하려고 하셨어요?"
Pt: "네."
Dr: "어떻게 생각을 안 하려고 하셨어요?"
Pt: "네? (ㅡ..ㅡ)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거죠."
Dr: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Pt: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거죠." (ㅡ..ㅡ)
Dr: "그러니까 어떻게?"
Pt: "생각을 안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Dr: "그럼 생각을 안 할 수가 있나요?"
Pt: "(ㅡ..ㅡ) 아니 그니까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Dr: "더 물어보면 짜증 내실 것 같아서 그냥 말씀을 드릴게요. 우선 생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Pt: "아 그럼 어쩌라고요. (ㅡ..ㅡ^ 찌릿)"
Dr: "(왜 째려보지;;;) 그러니까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또 하나의 생각이 될 뿐이고생각을 안 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이어지면 더 스트레스받는 결과를 나타내거든요. 그러니까 생각을 안 할 수 있는 치트키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거죠. 그저 생각을 안 하려는 시도 자체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만 갖고 있다는 거죠."
Pt: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요?"
Dr: "어떻게 해야 될까요?"
Pt: "(ㅡ..ㅡ^ 두 번째 찌릿)..."
Dr: "(재빠르게 대답) 우선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부터 이야기해볼게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정이 어떤 행동이나 신체 반응을 일으켜요.예를 들어서 곰을 만난 상황에서 우리는 곰이 날 덮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럼 불안해지죠. 그런 불안감이 우리를 이미 달리게 하고 있어요.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온몸이 긴장된 상태로 말이죠.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상황이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죠."
Pt: "그럼 그 상황에 놓이지 말라는 건가요? 그럼 잠을 자러 아예 눕지 말라는 건지??"
Dr: "그것보다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어떤 생각이 자꾸 본인 머릿속을 맴도는 거죠? 저번에 듣기로는 직장 내에서 본인이 직장동료들과의 대화나 직장동료의 시선이 자꾸 생각나고 곱씹게 된다고 했던 거 같은데요."
Pt: "네. 그렇죠. 내가 했던 말 때문에 상대방이 기분 나빴을 것 같고 내가 한 업무를 상사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고"
Dr: "그럼 여기서 중요한 건 상황이라는 것이 잠자는 상황이 아니라 본인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상황인 거죠. 거기서 본인은 항상 부정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판단할 거라고 생각이 드는 거고요.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한 상황에서 은정 씨는 직장동료나 상사가 자신의 언행이나 업무능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거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뭐예요?"
Pt: "그냥 눈빛이 그래요."
Dr: "그럼 직접적으로 동료나 상관이 은정 씨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표현한 적이 없는 거예요?"
Pt: "그렇진 않죠. 차라리 그럼 사과라도 하면 속이나 시원하겠죠."
Dr: "그래요. 직접적으로 표현했을 때 사과를 하든 변명을 하든 그때 하면 돼요. 그렇죠?"
Pt: "아놔. 그런데 표현을 안 한다고요."
Dr: "자 일단 진정하시고. (relax~~~)
우리의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 개개인이 가진 관점에 따라서 사실을 해석하는 거예요."
여기서부터는 한동안 내가 말을 많이 했다.우선 이 이야기인즉슨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생각은 개개인이 지닌 관점에서 상황(사실)을 해석하는 것이다.자신의 생각이 사실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 의한 해석임을 알아야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직장 내에서 생활을 예로 들어보자.
은정 씨는 항상 상사 중 한 명이 자신을 보면 밝게 인사를 해주었는데 오늘따라 상사가 자신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은정 씨는 자신이 뭔가 상사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 건지 업무를 실수한 것이 있는지 곱씹고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은정 씨 자신은 상사가 서운해할 만한 일을 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은정 씨는 상사에게 잘못한 일이 뭘까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동시에 상사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친한 친구와 통화하며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밤에는 잠을 자려고 누워도 상사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가라는 분노 섞인 걱정을 하느라 잠들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상사가 자신에게 불만이 있다고 은정 씨가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은정 씨의 관점에서 상사의 행동을 해석한 내용이다.만약 은정 씨가 자신의 생각이 사실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임을 진정으로 고려할 수 있고 상사의 관점에서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역시 고려할 수 있었다면 은정 씨의 잠 못 드는 밤이 어느 정도는 잠드는 밤으로 바뀔 수 있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예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사실로써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상대방의 생각을 파악하려고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여기서 고민은 시작된다. 아니 고통은 시작된다.인간의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의도나 생각을 파악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고통이 시작된다.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의 의도나 생각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설령 은정 씨의 예를 들었을 때 우선 은정 씨가 상사의 행동에 대해서 해석하는 것은일단 사실이 아닌 관점에 따른 해석일 뿐임을 설명했다.그리고 만약 상사의 의도에 대해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상사에게 어떤 의도를 갖고 그렇게 행동했냐고 물어본다 해도 상사가 자신의 진심을 전달한다고 확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토라레 영화처럼 상사의 생각이 은정 씨에게 귀로 들린다면 모르겠지만생각은 소리로 전달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렇게 상사에게 물어보고 난 은정 씨는 자신이 또 괜한 짓을 했다며 자책하고 상사가 자신을 보면 속 좁은 사람처럼 생각할까 봐 또 걱정과 불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는 순간 고통은 시작되는 것이다.그렇게 은정 씨의 불면증도 시작된 것이다.
이건 그저 삽으로 땅을 파는 것이 다르다.땅 파는 건 밤새 삽질만 하면 결국에는 원하는 것을 얻게 되지만 상대방의 생각은 아무리 삽질을 해도 알아낼 수가 없다. 그야말로 그건 진짜 삽질이다.
이러한 고민을 갖고 진료실을 찾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은정 씨도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Dr: "은정 씨. 직장동료들의 생각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직장동료들의 행동에만 근거해서 대처하는 건 어떨까요?"
Pt: "행동에 근거해서 대처하는 건 뭔데요?"
Dr: "물론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채고 미리미리 준비하고 응대할 수 있다면 회사에서 또는 친구관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은정 씨는 회사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예요?"
Pt: "특별한 건 무슨요. 그냥 잠이나 걱정 없이 잤으면 좋겠는 회사원 A일 뿐인데요."
Dr: "그렇죠. 우리가 지금 원하는 건 최상이 아니라 최선인 것이고 그건 다분히 어느 정도 전략적인 면도 필요해요."
Pt: "... 그래서 그 최선이 뭐냐는 거죠."
Dr: "자. 한번 들어보세요. 회사원 A 씨.
회사원 A 씨께서는 궁예처럼 관심법을 쓸 수가 없는 관계로 안타깝지만상대방의 마음은 알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저 의심하고 고민할 뿐이죠.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대인관계 전략은 실수나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고 최대한 편안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어요.자.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사소한 갈등을 피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사소한 갈등에 대해서 우리는 대부분 크게 고민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별 거 아니면 굳이 상대방에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거죠. 왜냐하면 화를 내거나 따질 만큼 상대방이 잘못한 건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말이든 행동이든 나에게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대부분은 그리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상대방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은 별로 크게 생각하지도 않는 일에 대해서 나 혼자 잠 못 드는 건 좀 그렇잖아요."
Pt: "그러니까 상대방의 생각을 자꾸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상대방의 행동에 근거해서 반응하라는 건가요?"
Dr: "그렇죠. 폭탄 넘기기 같은 거죠. 불만이 있는지 없는지 은정 씨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불만 있으면 말을 하세요라고 상대방에게 폭탄을 넘겨놓는 거죠. 만약 어떤 때에는 불만을 표현할 수도 있겠죠. 그때 뭐 변명이든 사과든 하면 되는 거니까~.상대방에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는데 설령 물어본다 해도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애초에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 왜 고민하고 걱정하냐는 거죠. 애초에 어떠한 일에 대한 사과든 변명이든 상대방이 표현하기 전까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생각이 아닌 상대방의 표현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습관을 가지면 최소한 혼자 고민하고 열 받고 짜증 나고 불안하고 우울한 일은 생기지 않을 거 같지 않나요?"
Pt: "그렇네요. 진짜 삽질하고 있는 거네요."
Dr: "네. 진짜 삽질이죠."
일주일 후에 진료예약을 잡고 그렇게 면담을 마쳤다. 다음 주에 은정 씨는 어떤 경험을 하고 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은정 씨가 갑자기 인간관계에서 시크해지거나 쿨내 진동하는 사람으로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행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을 결국에는 실천하고 달라질 수 있듯이 알게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 중에 하나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안된다며 다음 주에 찾아올 은정 씨를 또 지지하고 보완해서 다시 시도하도록 할 테고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상대방의 생각을 파악하고자 하는 순간 고통은 시작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상대방의 표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