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주치의 Mar 19. 2019

1. 상대방의 생각을 알려고 하는 순간 고통은 시작된다

Epi.01 우울, 불면, 대인관계 불안

저 등불을 켜고 끄는 것으로 정신과 진료는 시작되고 끝난다.


Episode.01


36세 미혼인 직장여성 은정 씨는 오늘도 회사에서 하루 내내 직장동료들과 생활하며 주어진 일을 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너무 피곤하고 지치는 것 같다. 매일매일 집에 오면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피곤하고 피곤하다 보니 어느 순간 피곤함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이라도 잘 수 있을 때에는 버틸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 다들 잠든 이 시간에도 은정 씨는 방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렇게 잠을 자지도 못하고 깨어있지도 못하는 밤이 매일 반복된다.


그렇게 은정 씨는 매우 지친 얼굴로 정신과를 찾아왔다. 그녀는 잠을 자고 싶다는 이유로 이 곳을 찾았다.




Pt: "안녕하세요. 선생님."


Dr: "네. 어떤 이유로 찾아주셨나요?"


Pt: "네. 잠을 너무 못 자서요. 항상 피곤한데 잠은 또 안 오네요. 피곤한데 잠도 안 오니까 무슨 좀비처럼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요."


Dr: "그간 너무 힘들었겠는데요. 잠을 자지 못하는 건 진짜 힘들어요. 그렇죠?"


Pt: "네. 잠만 좀 재워주세요. 선생님."


Dr: "잠은 얼마든지 재워줄 수 있어요. 그런데 불면증은 단순히 불면증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정신과적인 진단에서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우울증, 불안증, 공포증 등 다양한 정신과 질환에서 표현되는 증상이죠. 그래서 정신과적 평가 후 진단을 내리고 약물치료를 해야 치료효과가 높습니다. 예를 들어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라서 잠을 못 자는 사람이 수면제만 먹는다고 해서 잠을 이룰 수 있을까요?"


Pt: "그건 아니겠죠."


Dr: "네. 높은 용량의 약물을 쓰지 않는 이상 그분들이 갖고 있는 우울, 불안 증세를 치료하지 않고 잠을 잘 자도록 하는 건 어려워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치료가 들어가야 진짜 편안하게 잠이 들게 되는 거죠."


Pt: "네. 그럼 저는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Dr: "우선 제가 드리는 설문지를 자신의 증상에 맞는 항목에 체크해서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설문지를 작성해서 주시면 저희가 그 점수를 매겨서 어떠한 이유로 불면증이 생겼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제가 추가적인 면담을 통해서 증상을 평가하고 치료방법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Pt: "네. 알겠습니다. 잠을 잘 못 자서 얼마나 잘 체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해볼게요."




은정 씨는 자가 보고식 설문지인 BDI, BAI 등을 작성했다. BDI는 우울 정도, BAI는 불안 정도를 체크하는 설문지인데 자가 보고식으로써 간단하게 환자의 현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은정 씨의 자가 보고식 설문지 작성 결과 심한 수준의 우울, 불안 정도를 보였다. 그리고 다양한 신체증상 또한 관찰되었다. 복통, 생리통, 두통, 가슴 답답함, 두근거림, 어지러움, 피곤함 등등


Dr: "신체증상이 아주 다양하네요. 다른 것보다 복통, 가슴 답답함, 두근거림, 어지러운 증세에 대해서는 내과 또는 외과적인 원인에 대해서 파악해보셨나요?"


Pt: "네. 회사 일 시작하고 나서 배도 자주 아파서 내시경도 해봤고요. 답답하고 두근거리고 그래서 심전도도 해봤는데 아무 이상은 없었어요. 어지러운 것도 신경과 진료를 한번 봤는데 이상은 없었고 이석증인가 해서 이비인후과도 가봤는데 그것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또 검사해보면 어떨지 모르죠."


Dr: "자. 그래요. 저희 병원도 기본적인 검사는 가능하니까 제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의심되는 증상에 대해 검사를 내도록 할게요. 한편으로 생각해봤을 때 은정님께서 갖고 있는 신체증상의 경우에 각각 해당하는 신체 장기를 보면 위, 대장, 뇌, 심장 등이 이상이 회사일을 시작한 이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Pt: "... 높지 않을 것 같아요."


Dr: "아니면 이 다양한 신체증상을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이 생각나는 것이 있으세요? 어떤 거라도 말씀해보세요."


Pt: "선생님 질문의 의도가 정신과적인 원인이 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피식)"


Dr: "네. 사실 은정 씨께서 작성해주신 설문지를 보았을 때 우울한 정도가 심한 수준이고 불안한 정도도 심한 수준으로 나타나서 더 그렇게 생각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은정 씨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적절하게 해소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한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억압되는 과정을 겪다 보면 신체적인 증세로도 표현되고는 합니다. 어떤 신체증상이라고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기질적인 원인에 대해 평가해봤을 때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면 우리는 정신과적 원인에 대해 평가하고 정신과적 원인과 신체증상 간의 관련성이 판단되면 정신과적 치료를 통해 신체증상의 호전을 시도합니다. 지금처럼 은정 씨께서 높은 수준의 우울, 불안, 불면 증세 그리고 회사 취업 이후 시작된 점과 같은 근거로 이러한 신체증상들이 정신과적 원인에서 기인했을 거라고 추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편안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말씀해보시길 바랍니다."



Pt: "그냥 좀 많이 힘든 것 같아요. 회사에서 편하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Dr: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데 회사에서 편하다는 느낌을 가져보지 못했다면 너무 힘들겠는데요."


Pt: "(수 초간 침묵) 네. 저는 왜 그럴까요?"


Dr: "뭐가 왜 그래요?"


Pt: "(진한 한숨을 몰아내 쉰 후에) 에휴... 그냥 좀 한심한 거 같거든요. 모르겠어요. 진짜 우울증이라도 걸린 것 같네요. 불안증인가?"


Dr: "일단 지금 진단이 무엇인 지 단정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 우울한데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고 불안한데 우울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까요. 지속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다 보면 지치고 우울해지는 거고 우울감이 지속되면 지금 이 우울함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하고 그래요."


Pt: "그렇네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우린 둘 다 먹고 있다는 사실이랑 비슷한 건가."


Dr: "그건 좀 재밌는 말이네요."


Pt: "그럴 리가요. 저는 재미없는 사람인데요. (ㅡ..ㅡ)"


Dr: "저는 재미있는데요. 본인이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Pt: "네. 그래서 사람들 대화에 끼기도 힘들고 그래요. 가끔씩 드립치고 그러면 주변 분위기가 싸아~~ 해지는 것 같고 누가 반응을 해줘도 재미없는 데도 반응해주는 사람이 너무 고맙고 그래요. 드립 치고 집에 오면 진짜 이불 킥하고 있어요."


Dr: "그렇네요. 그런데 그게 사실일까요?"


Pt: "뭐가요?( ㅡ..ㅡ)"


Dr: "자신이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사실이냐는 거죠."


Pt: "진짜 저는 재미없는 사람인데요."


Dr: "그러니까요. 그것이 사실인 지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다음 시간에 한번 가져볼게요."


Pt: "(ㅡ..ㅡ;;;) 지금 이야기하면 안 되나요? 무슨 말씀하려는 건지 궁금한데요."


Dr: "그 이야기는 중요한 주제라서 좀 여유 있는 시간에 면담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면담이 좀 길어질 것 같거든요. 다음 시간에 좀 더 길게 이야기해요. 괜찮으시죠?"


Pt: "네. 그래요. 그래도 뭐 생각보다 괜찮네요."


Dr: "네? 어떤 것이요?"


Pt: "그냥 뭔가 좀 이야기하고 나니까 좀 체한 것 같은 마음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Dr: "거 봐요. 좋아진다니까요?"


Pt: "언제 좋아진다고 하셨나요? (ㅡ..ㅡ^)"


Dr: "안 했나요? 좋아질 겁니다. 아셨죠?"


Pt: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Dr: "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은정 씨와의 첫 치료시간을 마쳤다. 사실 면담시간은 생각보다 길었지만. 그렇게 항우울제, 항불안제 소량을 처방하고 1주일 후에 예약시간을 잡았다.


To be continue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