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주치의 Mar 28. 2019

4. 자녀들은 그저 받아들여야 되나요?

Epi.02. 자녀와의 갈등, 분노 조절 어려움, 훈육, 이혼 후 삶,

침묵을 지키던 미진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Pt: "결국 제가 큰딸을 때렸어요. 선생님."


Dr: "네. 그렇게 되셨네요."


Pt: "저는 이혼하고 주변의 만류에도 제가 아이들만큼을 키우겠다고 했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남편과 이혼은 했지만 아이들만큼은 이런 엄마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줄 것이고 그럼 남편 없이도 우리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아이들의 불만은 1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언제쯤 아이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만 있다면 저는 다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선생님."


Dr: "미진 씨 입장에서도 그럴 수 있고 아이들 입장에서도 그럴 수 있는 문제라서 갈등을 푸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네요. 하지만 서로 간에 각자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인정해주기를 원하기 이전에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지지가 우선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미진 씨께서도 제가 미진 씨의 고통을 공감하고 지지해주기 전까지는 본인 입장에서 자신의 고통만을 긴 시간 동안 이야기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미진 씨의 고통에 다가가는 순간 미진 씨께서는 죄책감에 대한 방어를 풀고서 오늘 이 곳에 오신 진짜 이유를 말씀하셨죠. 그건 바로 큰딸을 때린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었죠."


Pt: "그렇네요. 아이들이 힘들 거란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공감해주기 어려웠어요. 이유는 아이들이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걸 인정하면 남편과 이혼하고 제가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사는 이유가 없어지는 거니까요."


Dr: "그렇죠. 아이들의 행복이 미진 씨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것인데 아이들의 불행을 인정하면 미진 씨는 동력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거죠. 그런데 말이죠. 아이들의 불행을 인정하는 것이 공감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들의 불행에 공감하는 미진 씨의 변화가 아이들의 행복이 시작되는 시점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Pt: "네. 선생님."




여기서부터는 내가 말이 많았다. 미진 씨는 고개만 끄덕이며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고 싶어 진다. 


여기서부터는 내 생각이고 미진 씨에게 온전히 전달된 이야기이다.


부부간의 이혼? 그건 부부간에 서로 미워하고 서로 비난할 수 있는 이슈다. 범죄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혼이 불법이 아닌 세상이 된 거니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도 각자 부모는 이혼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만큼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사건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누구도 부부에게 자신을 낳아달라고 한 적이 없다.


부부가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결국에는 아이를 낳아서 잘 키워보자고 약속하고 아이들의 동의가 없이 자녀들을 낳은 것이다. 당신들의 아이들은 누구도 당신들에게 자신들을 낳아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아이들을 낳아서 잘 키워주겠다고 결정한 것은 당신들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마음이 맞지 않는다며 헤어지겠다고 한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것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상황인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키워주세요 제발...


미진 씨에게는 유연하고 부드럽게 전달된 이야기이지만 여기서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다. 이유는 내 생각이 매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직설적이니까. 과연 일하고 돌아와서 반겨주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부모가 이혼하면 양쪽 부모 모두에게 분노하게 된다. 그건 부모가 우리한테 했던 약속을 어긴 거니까.


다른 친구들은 아빠, 엄마한테 가서 안녕히 주무셨냐고 인사도 하고 학교도 다녀오고 방과 후에 집에 오면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고 아빠도 좀 있으면 퇴근해서 같이 저녁을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데 그리고 저녁에 가족 모두 산책도 하기도 하는데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우리를 그렇게 키워줄 줄 알았는데...


아빠는 이혼하고 매달 30만 원을 보내며 아빠 역할을 한답시고 한 번씩 만나면 매우 당당하다. 엄마는 일하고 집에 저녁 10시가 돼서야 들어온다. 항상 먹을 걸 갖고 오기는 하지만 그 시간에 뭘 먹고 싶지는 않다.


우린 이제 초등학생일 뿐이다. 저녁 10시까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우리 둘만 있다. 우리 손에 있는 건 핸드폰뿐이다. 핸드폰이 아빠고 엄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냐고? 나랑 놀아주는 것은 핸드폰뿐이니까.


저녁 10시. 9살과 13살인 우리가 있는 이 집에 그나마 엄마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 10시. 엄마는 밤늦게 들어와서는 항상 지쳐있고 예민하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낸다. 우리가 투정을 부리거나 불만을 이야기하면 가차 없이 뺨을 때린다. 집 안에 있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진다. 유일한 휴식은 휴대폰을 볼 때다.


아빠는 나가버렸고 엄마는 짜증내고 화내는 이 집에서 9살, 13살인 우리는 지쳐간다. 그냥 우리를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마음은 이런 것이 아닐까?

물론 엄마인 미진 씨는 억울할 수 있다. 왜 자신은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은 떠났는데 자신마저 아이들이 미워하고 사랑해주지 않는지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분노는 지금 내 옆에 있는 부모에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다른 부모는 옆에 없으니까 화를 내고 싶어도 화를 낼 수 없는 일 아닌가. 그것까지도 감안하고 아이들을 양육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에 부모는 양육권을 주장해야 한다. 그것을 감안하지 못한 채 자신이 아이들을 책임졌다며 아이들에게 당당해지고자 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갈등의 단초가 된다. 이유는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이혼할 때에 아이들을 양육하고 싶다면 부모 모두에게 화가 난 아이들의 마음을 본인 혼자서도 포용해야 할 수 있음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미진 씨가 집에 돌아왔을 때 두 딸은 각자 자리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물론 핸드폰이 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진 씨의 두 딸은 핸드폰밖에 볼 것이 없었을 수도 있다. 미진 씨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이 아빠고 엄마였을 수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숙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


Pt: "제가 집에 돌아왔을 때 핸드폰만 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제가 없는 동안 핸드폰만 보고 있었을 아이들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 너무 화가 나네요. 저는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일 뿐인데 저는 그래도 성인인데 말이죠. 저는 그래도 제가 선택한 길이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하지도 않은 길인데 얼마나 화가 날까요. 너무 미안하고 집에 가서 아이들을 껴안고 울면서 사과하고 싶어 지네요. 선생님."


Dr: "미진 씨께서 아마 본인 내면에 우울감이 없었다면 아이들에 대한 공감이 가능했을 겁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공감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미진 씨는 이제부터 이 곳에서 공감받고 지지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찾은 후에 집에 가서 아이들의 마음에 공감해주세요. 결국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부모 자식 관계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결국 부모는 아이에게 충분한 공감과 휴식처를 제공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 관계는 결코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부모가 늙고 자녀가 성인이 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죠. 오늘 수고 많으셨고요. 우선 1주일 후에 다시 외래로 내원해주시길 바랍니다. 항우울제 소량도 같이 처방하겠습니다. 지속적으로 제 진료실에서 미진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시길 바랍니다. 꼭 남편이나 자녀, 부모만이 미진 씨를 공감해주고 지지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정신과 의사 한 명과 꾸준히 면담치료를 하면서 그러한 공감도 받으시고 지지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 곳을 그렇게 여기시면 됩니다."


Pt: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선생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아이들을 필요로 해서 키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더 나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정한 자신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불안정한 양육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그리고 더 나은 환경 (여기서 나는 안정적인 조부모 또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다면 그것까지도 받아들이는 것도 부모로서 해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혼한 후에 부모 중 한 명이 안정적으로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 최선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나는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며 미진 씨가 두 딸에게 최선의 양육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현재 정신건강의학과에는 우울감, 예민하고 짜증스러운 기분을 조절할 수 있는 효과가 높고 부작용이 적은 항우울제가 이미 널리 처방되고 있다. 그리고 미진 씨는 자신의 불안, 분노, 우울, 고립감 등의 감정을 충분히 치료자와 함께 다룰 수 있는 내적 자원이 있어 보였다.


미진 씨는 두 딸이 자신으로 인해 더는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저 그 진심이 아이들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그렇다면 분명 좋아질 거다. 그렇게 많이들 좋아졌으니까. 치료자는 확신이 들었고 아이들의 엄마인 미진 씨에게도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게 돕겠다는 약속을 다.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나 공감으로 채워지길 원하는 그릇이 있다. 누군가에 의해 미진 씨의 내면에 텅 비어있는 그릇이 공감으로 가득 채워진다면 머지않은 날에 미진 씨도 두 딸들에게 밝은 웃음을 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pisode.02

The end

매거진의 이전글 3. 아이들은 당신들에게 낳아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