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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Mar 28. 2019

5. 이미 닮아버린 아이

Epi.03. 분노 조절 어려움, 부부 갈등, 대인관계 불안, 알코올

지그문트 프로이트

Episode.03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토요일 오전 외래에 초진으로 접수가 된 남성이 있었다. 토요일임에도 단정하게 정리된 두발 상태와 정장 차림, 한 손에는 핸드폰, 다른 한 손에는 가죽 가방이 쥐여있었다. 진료실 안에 들어와 먼저 악수를 청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자리에 앉았다. 언뜻 보기에 뭔가 웃고 있는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여태껏 경험 상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지나치게 느껴진다면 대부분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수현 씨,


35세 남성인 그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자로 높은 직급을 차지하고 있으며 4살 어린 아내와 6살 아들을 두고 있다. 회사 내에서 유머러스한 말솜씨와 눈웃음 짙은 얼굴로 대다수의 직장 동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아내는 중학교 양호선생님으로 얼굴도 예쁘고 애교도 많다.


부부간에 오랜 연애 후 결혼을 해서 그런 지 장난스럽고 친근한 관계를 갖고 있다. 6세 아들도 귀여운 외모에 머리도 똑똑해서 수현 씨 자신 또한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하는 여유가 있고, 출근 이후에도 직장 동료들 또는 거래처 직원들과 웃음을 주고받고 화기애애한 직장생활을 한다. 일을 마친 후 집에 와서 아이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아이를 재운 후 아내와 함께 차를 한잔 마시면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잠이 든다.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그러하듯이 수현 씨도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Dr: “네. 들어오세요. 오늘 어떤 이유로 오시게 되셨나요?”


Pt: “(10초 정도 침묵) 이런 문제로도 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Dr: “네. 다들 어떤 문제든지 갖고 오시더라고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Pt: “그게 말입니다. 사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잘 아는데 가끔씩 화가 나면 저도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가 터져버립니다. 그런데 그게 주로 아내랑 아이에게 그렇게 화가 폭발합니다. 항상 침착하고 차분하게 논쟁을 하고 싶은데 어느 순간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막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도 아이도 놀라서 울고 있을 때가 있고 저는 너무 죄책감이 들어서 힘듭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아무리 다짐하고 다짐해도 막상 또 화가 나면 똑같다는 겁니다. 제가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뭘까요?”




그는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일단 진지하지 않은 고민을 갖고 정신과에 스스로 내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바로 눈앞에 당근을 보며 끊임없이 달리는 말을 보며 사람들은 웃을지 몰라도 그 말에게는 아무리 달려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고통스러운 상황이듯 고민을 갖고 오는 정신과에 오는 분들은 각기 저마다 나름의 절망적인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Dr: “어떤 경우에 그렇게 화가 났었죠? 예를 들어서 설명해주시면 좋을 거 같은데요.”


Pt: “네. 별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훈육하는 데 아내가 말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까지 화가 나서 훈육을 하고 있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그만 하고 씻기고 재우자고 하는 말을 했고 그때 저는 제가 이야기를 하는데 끼어들지 말라고 화를 냈고 아내는 또 예민하게 군다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정말 화가 나서 화도 내고 욕설도 하고 아이도 울고 아내도 흥분하고 서로 화내고 그러다가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방에 들어간 아내가 계속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나자 저는 또 참지 못하고 방안에 들어가서 화를 내고 흥분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화를 내고 나니 아이가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내 성질 때문에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 비참했고 괴로웠습니다. 저는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상처 받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Dr: “네. 본인도 많이 괴로워하고 있으신 거 같고 저도 그런 상황에서 자괴감 같은 힘든 감정이 들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원인을 알아봐야겠죠. 원인을 찾았을 때 그에 대한 해결도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할 테니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대답해주세요.”




수현 씨가 병원을 찾은 이유를 알았으니 나는 이 사람이 병원을 찾은 이유에 대한 이유를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우선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남성의 경우 내가 가장 관심이 있는 건 그 남성의 아버지이다.


Dr: “실례지만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Pt: “(아버지를 물어보는데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버지요? 아버지가 왜 궁금하시죠?”


Dr: “ 사실 아이가 자라나는 데 있어 부모와의 관계, 특히 동성 부모와의 관계가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치거든요. 이 또한 현재 수현 씨의 성격 형성에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어서요.”


Pt: “네... 아버지요... 사실 아버지는 훌륭한 분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부모를 일찍 여의셨고 작은 아버지 집에서 눈치 보면서 공부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에는 본인이 등록금도 어떻게 마련해서 명문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임원까지 매우 빠르게 올라갔고 지금은 대기업 전무이사로 일하고 계십니다.”


Dr: “대단한 분이시네요. 그런데 아버지의 업적보다 아버지의 성격이나 수현 씨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Pt: “아. 네. 아버지는 항상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항상 본인처럼 성공해야 한다고 말씀했었습니다. 재미있게 놀아주는 것보다 저희를 강하게 키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모두를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하셔서 가족들이 자신의 말에 경청하지 않거나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항상 어머니를 벌세우거나 밥상을 뒤엎기도 했습니다. 밖에서는 뭐 폭력사건을 일으키거나 그런 적은 없습니다. 항상 절제된 모습을 보였고 그랬죠.”


Dr: “그렇네요. 수현 씨와의 관계에서는 어떤 아버지였나요? 다른 사람 말고 수현 씨와의 관계가 어땠는지 알고 싶습니다.


Pt: “음... 그래도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부족하지 않게 시켜주셨고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셨으니까요. 그런데 제 생각을 한 번도 강하게 해 보진 못했던 거 같습니다. 화가 나시면 너무 소리를 지르시고 흥분을 가라앉히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항상 어머니가 안타까웠고 아버지처럼 화를 내고 차분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저는 싫었습니다.”


Dr: “네. 집안 분위기를 무섭고 두렵게 만드는 아버지의 분노가 당황스러웠을 거 같은데요. 그런데 오늘 본인께서 갖고 오신 고민이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모습과 비슷한 거 같기도 하네요.”


Pt: “(무슨 소리하냐는 듯이 쳐다보며) 아버지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닌데요."


수현 씨는 한숨을 몰아 쉰 후에 침묵이 흘렀다.


(30초 정도의 침묵을 깨고)


Dr: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네요. 지금 본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Pt: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유년시절을 보내고 자신을 통제하며 살아야 했던 아버지한테 비교하며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아버지 시대와 지금 시대에서 요구하는 아버지상이 다른데 그걸 그렇게 비교하고 앉아있네요. (한숨)”




면담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수현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현 씨가 높은 수준의 psychological mindedness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sychological mindedness: 심리학적으로 본인의 내면을 받아들이고 분석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 상태를 의미함.)  


이는 환자가 스스로 본인에 대해 통찰을 가질 수 있는 자질로써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아는 능력이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가능한 사고 과정 체계를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왜곡되고 비합리적인 감정에 대응하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수현 씨는 분명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분이지만 집안에서 분노를 다루지 못하는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본인에게 그렇게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단점이 자신에게도 힘든 문제가 되어버린 것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왜 자신도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며 욕설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이유를 모르니까 어찌해야 좋아지는 건지 막막했다.


상처 받는 아내, 불안해하는 아들... 그리고 커져가는 본인만의 죄책감과 자괴감을 해결하고 싶어 오늘 진료를 받으러 찾아온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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