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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Mar 29. 2019

9. 부부는 갇혀있다.

Epi.04. 부부갈등: 부부는 부정적인 관계 고리에 갇혀 있습니다.

Episode.04


벚꽃이 활짝 피는 3월은 다시 찾아온 듯하다.

출근하는 길에 걷는 가로수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커피 한잔을 들고서 벚꽃이 만개한 이 출근길은 그래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다..

벚꽃이 피는 3월이 좋다.


이르면 3월 말부터 개화해서 대략 한 달간 즐거움을 주고서 떠나버리는 벚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소소한 일상에 작은 즐거움이면 좋겠다. 바쁜 일상 속에 그래도 진료받으러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즐거움이고 싶다.


나와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즐거울 수 있다면,

나와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위로될 수 있다면,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고 싶은 마음을 갖고서 병원 안으로 나는 들어간다.




진료 시작 전부터 진료실 앞에 이미 앉아 있는 남녀가 있다..

적당히 거리를 둔 채로 남성은 다리를 벌리고서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고 있고 여성은 남성과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리고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괜히 책장에 꽂혀 있는 부부치료 책을 한번 바라보고 진료 시작을 알리는 벨을 눌렀다.


Dr: "안녕하세요. 두 분은 어떤 이유로 오시게 되셨나요?”


수미: “당신이 이야기해. 나는 할 말이 없어.”


진한: (침묵…)


수미: (침묵…)


Dr: (덩달아 침묵…)


결국 참다못한 수미 씨는 먼저 말을 꺼냈다.


수미: “선생님. 저희 부부는 지금 깊은 불화를 겪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 말도 하고 싶지 않고요.

남편은 너무 분노조절이 안되고 불안정해요. 이 문제로 저희는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것 같고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 알지만 아이들이 있기에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저는 이 남자한테서 해방되고 싶어요. 선생님. 솔직히 이 남자가 무서워요. 선생님." (고개를 숙이고서 울기 시작하는 수미 씨)




36세 진한 씨, 35세 수미 씨. 그리고 슬하에 7세 아들.


마치 터진 화산처럼 쏟아내는 수미 씨의 옆에서 진한 씨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쉬고 있다. 뭔가 자신도 할 말이 있어 보이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그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Dr: "네. 그렇게 느끼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수미: "저 사람은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자기 생각이랑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 앞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던지고 주먹으로 문을 치고 그래요. 저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도 저 사람을 무서워하고요."


수미 씨의 말에도 아무론 대꾸를 못하고 있는 진한 씨.

여기서 내가 궁금한 것은 이 부부가 지금 이 순간 병원을 찾은 이유였다. 그리고 그 이유가 진한 씨가 입을 다물고 듣고만 있는 이유일 것일 것 같았다.


Dr: "네. 아주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건 오늘 바로 이 시간 이 곳찾아주신 직접적인 사건이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수미 씨는 진한 씨를 깊은 분노를 느끼듯이 바라봤다. 그리고 진한 씨를 노려보는 수미 씨의 눈에서는 금세 눈물이 흘렀다.


한숨을 쉬던 진한 씨가 결국 입을 열었다.


진한: "제가 7살밖에 안된 아들을 밀쳐버렸습니다. 넘어진 아들은 한참을 울었습니다. 눈물을 그치지 않는다고 저는 내내 윽박질렀습니다. 제게 화를 내는 아내를 보며 화를 참지 못하고 아내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곧 정신을 차렸지만 아내는 겁에 질려 있었고 아이는 떨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정말 손목을 잘라내고 싶을 만큼 후회스러웠습니다. 제 마음은 그게 아닌데 짐승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먼저 아내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오늘 선생님께 오게 되었습니다."


진한 씨는 눈물이 터져버렸다. 고개를 숙인 채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진한 씨, 그런 진한 씨를 노려보며 눈물을 흘리는 수미 씨.


진한 씨는 어떤 이유로 어린 아들의 작은 몸을 밀쳐 넘어뜨린 것일까? 7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밀치고 아내의 멱살을 흔들었던 진한 씨의 내면에는 어떤 날짐승이 있을까? 그런 진한 씨를 노려보며 눈물을 흘리는 수미 씨가 이 진료실에서 원하는 것은 뭘까? 진짜 진한 씨의 손목을 내가 잘라주길 원하는 건 아닐 것이다. 수미 씨는 진한 씨의 내면에 존재하는 날짐승의 목을 잘라주길 원하는 것이다.




Dr: "아이한테까지 폭력적인 행동을 한 자신의 모습, 남편의 모습이 이 부부가 치료를 받기로 결정한 이유인가요?"


수미: "저는 힘들지만 견딜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한테도 어느 순간부터 윽박지르고 폭력적인 저 사람의 모습에서 미래가 너무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선생님. 더는 미루고만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상처를 받는 것이 너무 괴롭거든요... 진짜 저는 이번이 마지막인 것 같아요. 선생님."


Dr: "마지막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시죠?"


수미: "단호하게 말하겠습니다. 이번에 남편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저는 이혼할 겁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몰라도 아이들에게 부모는 둘 다 필요하니까 한번 마지막으로 저도 노력해보려고 오늘 왔습니다."


진한: (한숨을 쉬며) "선생님. 도와주세요. 부부간의 문제에서 항상 갈등이 시작되고 저는 짐승처럼 되어버리고 말아요. 하지만 저는 아내와 아이들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사랑합니다. 그런데 아내와의 관계가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아요. 도움을 받고 싶어요. 선생님."


Dr: "네. 알겠습니다. 수미 씨도 진한 씨도 간절한 마음을 갖고 오신 것이 느껴집니다. 결국 두 분에게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장 최선 부모가 안정적인 모습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안정적인 양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부부간의 애착이 충분히 안정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결국 부부의 문제는 누구 하나가 아닌 남편과 아내가

부정적인 관계의 고리에 갇혀 있다는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진한 씨가 진한 씨 개인에 대한 치료 접근을 통해 이전과 다른 변화를 나타낸다고 해도 결국 수미 씨께서 그 변화를 긍정적인 선순환으로 이어주지 못하면 다시 진한 씨는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각자에 대한 치료보다 우선 부부치료를 두 분께 권유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수미: "부부치료는 어떤 것이죠? 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부부치료도 좋습니다."


진한: "네.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Dr: "그래요. 우선 부부치료는 아까 말했듯이 부부의 문제를 누구 한 명의 문제가 아닌 두 분이 어떤 부정적인 관계의 고리 안에서 갈등이 반복되어 있다는 관점을 갖접근합니다.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며 지적을 하고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분이 그간 반복하는 부정적인 관계의 고리를 같이 바라보며 부정적인 고리를 밝히고 그 고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부정적 관계 고리 순환


예를 들어서 아내의 행동 또는 언어는 남편의 내면에 충족되지 못한 애착 욕구 같은 해결되지 못한 예민한 부분을 자극하게 되고 그러면 1차 감정이 발생합니다. 주로 1차 감정은 서운함, 우울함, 두려움, 불안 등과 같은 깊고 연약한 정서입니다. 그런데 예민한 부분이 자극된 남편은 1차 감정으로 표현하기보다 2차 감정으로 대응합니다. 2차 감정은 분노, 질투, 짜증과 같은 반응적인 감정으로 1차 감정에 기반하지만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갈등을 고조시키는 감정입니다. 고조된 감정으로 인해 정작 아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와 동시에 남편은 자신 또는 아내에 대해서 왜곡된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아내에게 평생 인정받지 못하는 남편으로, 아내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아내로 말이죠. 그럼 남편은 아내에게 그러한 해석에 기반한 행동을 보이게 되죠. 이때 남편의 이러한 행동은 또다시 아내에게 전달되어 아내의 내면에 애착과 관련된 예민한 부분을 자극하게 되고 아까 남편에게서 진행되었던 그 과정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죠. 아내 또한 1차 감정이 아닌 2차 감정으로써 남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부정적 관계 고리를 더 강화시키는 순환을 부부가 반복하며 갈등의 고리가 더 깊어지고 서로에 대한 부정적 관점이 더 강화되는 것입니다. 부부치료는 이러한 부정적인 상호작용의 고리를 규명하고 2차 감정이 아닌 1차 감정에 서로 접근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러면서 고조된 부정적 감정이 순화되고 부정적인 고리를 재구성하여 긍정적인 고리를 순환하도록 만들어주는 치료입니다. 부부가 상대 배우자의 내면에 내재된 감정에 다가가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애착관계를 재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부부치료는 진행될 것입니다. 부부치료에 동의하시나요?"


수미: "네. 선생님."


진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Dr: "네. 그래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부부의 문제에 대해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가 부정적인 자극과 반응을 반복하며 부정적인 관계 고리에 갇혀 있는 것이고 우리는 이 부정적인 관계 고리를 같이 밝히고 이면에 숨어있는 감정에 접근하여 1차 감정으로 서로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서로의 내면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켜 부정적인 관계 고리를 긍정적인 관계 고리로 바꾸는 공동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밖에서 스케줄을 잡아드릴 것입니다."




진한 씨와 수미 씨는 다시 서로 결합되기를 원한다. 그들도 예전에는 서로를 가장 사랑했고 가장 원했을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들의 사랑은 현실에 부딪혔을 것이고 각자의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상처는 상대방을 향하는 칼날이 되어 서로를 다치게 했을 것이다.


서로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를 밀어냈을 것이고 그것이 그들을 멀리 떨어져 있게 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더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랄 때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니까.


이제 다시 그들은 부부치료를 통해 손상된 부부의 애착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간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비난하고 화를 내던 것에서 이제는 같이 나란히 서서 그들을 힘들게 했던 부정적인 관계 고리를 밝히고 규명하고자 한다.


그래도 나는 이 부부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나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진실된 감정을 이끌어 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다음 시간부터 우리는 부부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To be continued...




p.s) 다음 글부터는 진한 씨와 수미 씨의  부부치료 과정이 기술됩니다. 진한 씨의 폭력적인 행위는 가정폭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법적인 처벌 필요성이 있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이 글은 우선 부부치료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진행됩니다.

"Hold me tight" 정서중심적 부부치료 by 수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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