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주치의 Mar 29. 2019

8. 진정한 통찰로 나아가는 길

Epi.03. 자존감 저하, 정신분석, 우울, 불안, 좋은 사람 증후군,

수현 씨가 좋은 사람으로 살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수현 씨는 자신이 처음 만난 동성과의 관계, 즉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학-피학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에서 수현 씨는 항상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뜻을 굴복하는 방법으로 지내왔을 것인데 대개 남아가 처음 가진 동성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양상을 경험하게 되면 이후에 만나는 동성과의 관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반복하는 패턴을 보인다.


물론 성인이 된 남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강건한 남성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눈치를 보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원해서 그런 것처럼 적절하게 합리적인 관계인 것처럼 포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현 씨는 알고 있다.


수현 씨 또한 자신이 그러한 합리적으로 보이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는 부단히 눈치를 보고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본인의 이중적인 성향이 수현 씨를 부단하게 우울하고 불안하게 했을 것이다.


끝없이 성공한 내 아버지와 비교되는 자신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내면의 불안을 감추고 항상 웃음 짓고 결점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노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것만 반복할수록 수현 씨는 심리적으로 지쳐갔을 가능성이 높다.

 

흔히 감정을 승화시키는 것과 감정은 억압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승화는 갈등을 본인이 깊은 통찰을 갖고 이해와 함께 해소하는 것이고 억압은 그저 방안에 있는 쓰레기를 침대 밑에 넣는 것처럼 눈앞에서 안 보이게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갈등이 해소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의식 또는 무의식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가둬진 갈등으로 인해 부글부글 끓는 상태가 된다. 그것은 그저 물이 끓는 냄비 위에 뚜껑을 닫아놓은 것일 뿐이다.


그렇게 지내던 중 주변에서 자신이 대하기 편한 누군가가 사소한 자극을 주면 마치 폭죽이 터지듯이 이전부터 내면에 쟁여놓은 감정들까지도 터지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수현 씨도 주로 아내에게 자신을 감정을 폭발시키는 양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후 수회에 걸쳐 정신과적 면담이 반복되었고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다. 통찰에 다가서는 날도 있고 저항에 부딪혀서 뒷걸음질을 치는 날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통찰은 통찰대로 저항은 저항대로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깨달음을 향해 가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현 씨는 자신이 부정하고 싶었던 무의식의 내용에 다가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Pt: “선생님. 제 안에 아직도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남아있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네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노력하는 것이 마치 아버지한테 인정받으려던 제 어린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도 알 것 같고요. 그리고 여기서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기주장도 못하는 저에 대한 불만족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합리화하고 억압하고 살았던 것도 알 것 같습니다."


수 초간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이내 말을 이어가는 수현

 

Pt: "결국 그러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인 채 아버지처럼 집에서 아내와 자식에게 다 쏟아내고 있었던 것도요. 결국 제가 이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던 어린아이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로써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걸 진심으로 깨닫고서 제가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들을 그때그때 시기적절하게 표현해야 된다는 걸 알겠습니다. 그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제가 아버지처럼 집에서 감정을 폭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 같고요.”


Dr: “오늘 하신 말씀이 여태껏 수현 씨가 찾던 답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거든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모든 운동하는 물건에 관성이 생기듯이 여태껏 본인이 행해오던 것들을 쉽게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는 것이 당연하죠.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결국에는 깨달은 것들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수현 씨는 치료시간에 본인 내면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을 얻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치료자로서 반갑고 뿌듯한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치료자는 환자가 나타내는 통찰이 과연 지적인 수준에서의 통찰인지 진정한 감정적인 통찰인지를 알아야 한다.

 

물론 지적인 통찰은 중요하다. 아는 만큼 더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식적인 수준에서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다. 때로는 자기 계발서 같은 책들을 많이 읽으면서 자신을 잘 알게 되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과거 부적응적인 생각과 행동은 바뀌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여전히 상처를 주고 있음에도 본인은 지식적으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자기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만족하는 상황이다.


자신이 과거 반복하던 부적응적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통찰이라 할 수 없다. 그저 지식적인 수준에서 통찰을 얻었고 거기서 멈춰있을 뿐이다.

 

진정한 감정적인 통찰은 그동안 반복하던 병적인 행동 또는 사고가 달라졌을 때 치료자는 환자가 그러한 수준의 통찰에 도달했다고 판단한다. 아무리 좋은 칼이어도 그 쓰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듯 지식적인 통찰에 만족하며 오히려 자기애적 성향이 강해진다면 그러한 통찰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와 같은 책들을 많이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진정한 통찰을 갖고 병적인 행동 및 사고가 달라지는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현 씨가 통찰을 얻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수현 씨가 지식적인 수준에서 만족하지 않고 현실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를 혼자서 보고 혼자서 판단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 때로는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다.


치료의 종결은 여기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수현 씨가 현실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반복적으로 만족스러운 변화를 경험하며 훈습을 이뤄질 때까지 정신과적 분석 치료는 이어진다. 


때로는 지식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과거의 실수를 재현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누구든지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치료시간에 치료자와 함께 당시 상황에 대한 분석과 실패 원인에 대해 고찰해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수현 씨는 더욱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메워나가는 것이고 그렇게 더욱 적응적인 면이 강화되는 것이다.




Pt: “선생님. 그런데 또 다른 고민이 있거든요. 사실 저는 술 문제도 있습니다. 술이 자꾸 마시게 됩니다. 술을 마시면 제가 솔직해지는 것 같거든요. 술을 끊어야 되는 건 아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술 마시고 흥분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그런지 아내도 술을 끊기를 원하는데 제가 술을 자꾸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현 씨와 같이 자신의 내적인 모습과 외부로 표현되는 모습 간에 괴리가 있는 경우에 문제 되는 알코올 남용 또한 병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알코올이 수현 씨와 같은 분들에게는 내적인 욕구를 분출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영화 마스크에서 짐 캐리가 갈등하면서도 마스크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현실에서 본인이 밖으로 꺼내 보이지 못하는 내적인 욕구를 마스크라는 도구를 사용했을 때는 마음껏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절제한 음주행위는 결국 현실도피적인 행위로 사용되는데 이는 합법적이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써 알코올만 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도피적인 수단으로써의 음주 행위를 멈추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근본적인 방법은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도피하고 싶은 곳이 아니도록 만드는 것이다.

 

수현 씨의 경우 현실이 불만족스러운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매사에 좋은 모습을 보이는 자신, 하지만 아내와 아들에게 몬스터처럼 화를 내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듯이 수현 씨가 자신이 더는 아버지에게 굴복하던 그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통찰을 얻고 성인 남성으로서 본인의 주장을 할 수 있다면 그러한 변화가 선순환으로 이어져서 아내와 아들에게 예민하고 화를 내는 모습 또한 나아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더는 수현 씨에게 현실은 불만족스러운 공간이 아니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더 이상 수현 씨에게 알코올이 현실도피의 수단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외에도 알코올이 현실도피적인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들이라면 결국에는 현실이 도피하고 싶은 곳이 아니도록 하는 것만이 건전한 음주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Pt: “모든 것이 제가 그저 무섭다고 꺼내보기 싫다고 가둬놨던 제 감정에서 생겨난 것들이군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뒤늦게라도 아버지께 그때 서운함을 말하고 싶네요. 거기서부터 시작한 거니까요.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해요. 그것이 제가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분노감이 생길 때에 과연 이 분노감이 지금 이 상황에서 적절한 것인지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는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선생님 말에 의하면 제가 다른 곳에서 화가 난 것을 참고 괜한 사람에게 분노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항상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만큼의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수현 씨는 지금도 매달 한 번은 진료실에 찾아와 본인의 감정을 털어놓고는 한다. 아무리 그때 시기적절하게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한다고는 해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감정은 누구나 있기 때문이다. 수현 씨는 현재 진료실이라는 공간을 본인이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움 감정을 털어놓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서 재단사가 대나무 숲을 찾아간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정신과 진료실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대나무 숲이 되어 준다. 우선은 그 누구보다 비밀보장이 되며 누구도 여기서 이야기한 내용을 알 수가 없을뿐더러 치료자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Episode.03

The end

매거진의 이전글 7. 나는 왜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