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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Mar 29. 2019

7. 나는 왜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요?

Epi.03. 대인관계 불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착한 사람 증후군

수현 씨는 닮고 싶지 않았는데 이미 아버지를 닮아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통찰에 다가서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을 갖게 되었다. 왜 닮기 싫은데 이미 닮아버린 걸까? 수현 씨와 같은 고민을 갖고 정신과에 내원하는 남성분들이 과연 적을까? 사실 생각보다 많다.


분노 조절 어려움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수많은 중독 질환, 우울증, 불안증, 신체화장애 등 수많은 정신과적 증세가 사실 자신의 동성 부모 또한 갖고 있던 모습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수현 씨와 같은 이들에게 이러한 현상을 어떠한 정신역동적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정신분석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접근하면 오이디푸스 기에 겪는 거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동성의 부모를 동일시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남근기(3세~5세)에 남아는 이성 부모인 어머니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이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자신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옆에는 이미 자신보다 더 크고 힘이 센 동성 부모, 즉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남아는 직감적으로 어머니가 아버지의 여자임을 알 수 있고 그러고 나면 남아는 아버지의 여인인 어머니를 탐한 결과로 아버지에게 처벌받을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처벌은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남성의 상징인 페니스가 거세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잃는 처벌을 받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남아가 보기에 자신의 페니스는 아버지의 페니스에 비해 보잘것없고 힘조차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남아는 거세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버지에게 항복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는데 항복하는 방법은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이뤄지게 된다.


마치 역사적으로 강대국에게 점령된 나라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결국 강대국의 문화, 역사, 언어를 받아들이듯이 남아 또한 그렇게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때 아버지가 합리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성격을 갖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아버지가 합리적이고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으며 잦은 분노를 보인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시기에는 아직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가치 기준이 확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아는 자신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 채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도덕적 가치 기준이 확립된 후에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되지만 이미 동일시한 부분은 합리적으로 사고할 줄 알고 꾸준히 자신을 성찰하며 반성하는 노력을 통해서 바뀔 수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아이가 태어나 처음 겪는 불안은 annihilation anxiety. 즉 소멸 불안이다. 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모호한 정체성에서 기인하는 불안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흡수되어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영향을 받는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이 확고하게 형성되지 않은 유아기 발달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성인기에는 정신병적 상태가 아니고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극심한 불안을 겪게 되는데 이유는 자신이 존재하는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게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주변에서 남자아이라고 하는데 남자는 과연 무엇인지, 또는 여자아이라고 하는데 여자는 과연 무엇인지 말이다. 수현 씨가 남자이기에 남성을 예로 들자면 갓 태어나 한동안 어머니가 공급하는 음식에만 의존하고 배변을 혼자 처리하지 못하는 등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한동안은 그저 먹고 자고 놀아주면 행복감을 느끼지만 이내 곧 아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주변에서 남자아이고 페니스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린다. 내가 남자아이인 것도 알겠고 페니스가 내 다리 사이에 있는 이것인 것도 알겠는데 과연 남자라는 건 무엇이고 페니스가 달려있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내 존재에 대해 확실한 정체성이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는 내 존재에 대한 감각 또한 부족하여 마치 나란 존재가 소멸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아이는 이러한 소멸 불안을 해결하고 싶지만 이론적으로 남성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기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때 아이는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나와 같이 다리 사이에 페니스가 있고 나와 같은 남성이다. 대부분 그 존재는 아이의 아버지인 경우가 많다.


아이는 막연한 가운데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고 소멸 불안에 허덕이는 것보다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아버지를 모방(modeling)하기 시작한다. 옳은 행동, 잘못된 행동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별없이 모방(modeling)하게 된다. 마치 먹고사는 것이 힘든 나라가 먹고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비록 이후에 부정적인 결과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우선은 잘 사는 나라의 모든 것을 선별 없이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는 것처럼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 허덕이는 남아의 절실함이 그런 방법을 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후 나이를 먹고 나서 합리적인 가치판단이 가능해진 이후에 자신이 아버지의 나쁜 부분까지 닮아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닮아버렸기 때문에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힘든 상황에서는 더욱 아버지와 같은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수현 씨에게 남아가 동성 부모를 동일시하는 과정과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했지만 설명을 듣고 난 후에는 수현 씨 또한 그럴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모든 환자들이 겪는 증상을 정신역동적인 이론, 즉 환경적인 요인으로 원인을 찾아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이론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학계 이론은 선천적으로, 유전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질에 심리사회적 스트레스와 같은 환경적인 요인이 동반되어 발생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치료과정에서 이러한 정신역동적인 이론을 찾고 심리사회적인 원인을 찾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 걸까? 단순하다. 이것이 바로 치료 가능한 요인이니까. 

  

아직도 수현 씨는 자신도 모르게 닮아버린 아버지의 분노 가득 찬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지만 사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정신과적으로는 매우 치료적이다. 최소한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를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느끼던 막연함은 느끼고 있지 않으니까.  


나는 왜 좋은 사람이 되었을까...


Pt: “선생님. 저는 정말 좋은 사람일까요? 좋은 사람인 척을 하는 걸까요?”


Dr: “수현 씨가 말씀하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요?”


Pt: “(망설이다가) 사람들이랑 항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인정받고 신뢰받는 사람이면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요?”


Dr: “사람들이랑 항상 원만한 관계가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뭐죠?”


Pt: “저요? 회사 내에서 가급적이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을 하니까요. 갈등이 자주 있으면 그 관계는 원만할 수가 없잖아요.”


Dr: “사람들이랑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하는데요?”


Pt: “진짜 아니지 않은 이상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자 하죠. 상대방이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면 제 주장이 있어도 그냥 그렇게 하자고 하기도 하고요. 마찰이 있으면 피곤하잖아요. 사실 제가 또 그렇게 주장하고 설득하는 것도 피곤하고요.”


Dr: “그런가요. 그것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죠. 그런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요. 이전에 이야기하셨던 내용이 떠오르네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버지가 화내는 것이 두려워서 본인이 원치 않아도 아버지의 요구대로 해주면서 살아왔다고 하셨던 내용이 비슷한 상황인 거 같지 않나요? 다만 본인은 피곤하니까 요구를 들어준다고 하지만 사실 갈등이 있을 때 본인이 갖고 있던 두려움을 다시 느껴서 그렇게 합리화하는 건 아닌가 싶은데요.”


본래는 통찰이 담긴 내용은 환자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가진 단도직입적인 성격 특성상 직접적인 해석이 들어갈 때가 있다. 섣부른 해석이 항상 환자들을 도망치게 만드는 걸 알면서도 전방 스트라이커에게나 도움이 될 법한 공격적인 성격이 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수현 씨도 지극히 당연하게도 분노에 가까운 저항을 나타냈다. 사실 이건 야구로 치면 거의 몸 쪽 꽉 찬 직구와도 같으니까. 


Pt: “그럼 제가 그럼 지금 직장 동료들에게 아버지에게 느꼈던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건가요? 지금 저는 성인이 되었고 누구보다 힘도 세고 키도 크고 겁날 것이 없는데요. 오히려 제가 분노하는 것이 두려워서 치료를 받으러 왔는데 제가 오히려 사람들이 화낼까 봐 두려워한다는 말은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정신분석 작업 상 환자의 무의식에 대한 치료자의 해석은 매우 시기적절하게 환자에게 진입을 시도해야 한다. 피부 상처에 딱지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힘으로 떼어내면 다시 피가 나고 염증이 생기듯이 치료자의 해석은 환자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시도되었을 때 오히려 환자는 통찰로 가는 길에서 당황하며 뒷걸음질치기도 한다. 뒷걸음치기만 해 주면 고마울 때도 있다. 달려들면서 때리려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통찰을 얻을 때까지는 사실 대개 많은 환자들이 수현 씨처럼 저항을 나타낸다. 치료시간에 나타내는 환자의 저항 또한 치료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환자와 치료자 간에 생겨나는 갈등이 있어야 치료자 입장에서는 환자의 치료에 사용할 무기가 많아지는 것이다. (There and then) 거기, 그때 있었던 갈등에 대한 깨달음보다 환자와 치료자가 함께하는 (Here and Now) 여기, 지금 나타나는 갈등에서 깨닫는 것이 더욱 환자의 내면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차분하게 수현 씨에게 말을 이어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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