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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Mar 29. 2019

10. 너 아니면 나야! 그러니까 너야!!

Epi.04. 부부갈등, 부부대화법

가까우면서 먼 거리. 30cm...


오후 외래진료를 마치고 난 오후 여섯 시.

30분 후에 시작될 진한 씨와 수미 씨 부부의 첫 부부치료 시간을 기다리며 가만히 리클라이너에 몸을 기대고서 눈을 감은 채 생각한다.

 

오늘 이들 부부는 어떤 기대를 갖고 올까?

서로 대화는 할까?

도중에 한 사람이 나가진 않을까?

다른 배우자는 어떤 반응을 할까?


하지만 그저 골똘히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저 원두커피를 내리기로 했다.


그저 지금 내려지는 커피 한잔이 부부치료를 시작하는 진한 씨와 수미 씨에게 따스함을 전해줄 것 같기도 했고, 그저 아무런 예상도 하지 않은 채 진한 씨와 수미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6시 30분이 되자 노크소리가 들렸다. 진한 씨에 이어 수미 씨도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1인용 소파 두 개는 양 옆으로 배치했다. 두 소파 사이엔 30센티미터 정도 간격을 두었다. 부부가 손을 잡기를 원할 때에 한쪽이 손을 내밀면 배우자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간격이었다.


한쪽이 먼저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거리. 둘 다 동시에 손을 내밀지 않아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


그것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수미 씨는 좌측, 진한 씨는 우측에 위치했다. 수미 씨는 팔짱을 낀 채로 앉아있다. 진한 씨는 양 팔받이에 양 손을 올리고 있다. 지금은 둘 중 아무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 여유 또는 마음은 없어 보였다.


 Dr: “그래요. 편안하게 한번 이야기를 해보죠."


1~2분이 넘도록 아무도 말을 시작하지 않는다. 사실 치료자 입장에서 이런 침묵은 나쁘지 않다. 어찌 되었든 부부치료는 1시간이면 끝나니까.


하지만... 나는 불행히도 그리 차분한 성격이 아니다...


 Dr: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갖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세요.

이 곳은 안정을 추구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도전을 하는 곳입니다.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해 도전하세요.


(그래도 침묵)


누구 하나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는 없다.

마치 부부는 카운터 펀치만은 피하려는 권투선수처럼

차갑게 누구 하나먼저 카드를 내밀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저 커피를 마시면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은 수 분이 더 흘러갔다.


결국 나는 커피 첫 잔을 비웠다. 내 빈 커피잔을 본 진한 씨는 긴 침묵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진한: “선생님. 물론 제가 잘못한 것이 더 큽니다. 아이를 밀치고 아내 멱살을 잡았으니까요. 그런데 저를 항상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가는 것도 아내에게도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사회적인 존중도 받고 있는데도 항상 집에서는 아내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아내와 아이는 한편이 되어 있고요.”


사회적인 존중을 받고 있다고?그러고 보니 남편 직업이 뭐였더라?? (ㅡ..ㅡ) 이제 와서 다시 묻기엔 체면이 말이 아니었고 결국 내가 기억을 더듬는 동안 다행히도(?) 수미 씨는 참고 있던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수미: “남편은 00 지검 검사로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집에서도 검사로써 우리를 대해요. 모든 부분에서 통제하려고 해요. 그러고 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면 제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요. 남편은 자신을 무시한다면서 흥분하고 아이한테도 아버지한테 버릇없다고 소리를 질러요. 선생님.”


한번 시작된 부부의 대화는 쉼 없이 이어졌다.

너 아니면 나~ 그러니까 너야!!!


그저 나는 듣고 있었다.


그저 듣고 있는 이유는 서로 표현하지 않고 가둬뒀던 감정을 내놓음으로써 부부의 고조된 감정상태를 단계적으로 De-escalation 시키기 위함이었다. 여기서부터 부부는 쉼 없이 감정을 쏟아낸다.


그저 나는 또 한잔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내 탓이라고?)


(그럼 내 탓이냐!)


(커피 두 잔째)



그러다 보니 그들도 조금씩 힘이 빠져갔다. 그리고 서로 말도 하고 듣기도 하는, 말 그대로 대화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차분해진 그들이지만 아직도 서로에게 전달하고 싶은 감정은 남아있다. 조금은 낮아진 목소리로 그들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한: “나는 항상 긴장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제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날도 시작은 똑같은 갈등의 반복이었습니다.”




진한 씨와 수미 씨가 정신과에 내원하기로 한 이유인 그날 일에 대해서 진한 씨는 결국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잠시 격앙된 마음을 내려 앉히고서 이제야 자신들 앞에 놓여있는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그들은  이 곳을 찾게 된 이유를 말하고자 했다. 나는 오히려 커피잔을 내려놓고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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