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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Aug 16. 2023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순간


테레사 수녀의 고백


‘빈자들의 성자’로 불리던 테레사 수녀는 생전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신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침묵과 공허가 너무 큽니다.”   

  

“저에게 있어 하나님의 부재는 일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비밀입니다. 내 영혼에 왜 이렇게 많은 고통과 어둠이 있는지…”



모든 가면이 벗겨질 때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바라본 고뇌의 흔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난다는 건 수녀의 고백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면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겹 두 겹 세 겹…. 양파 껍질처럼 계속 벗겨내야 한다. 모든 가면이 벗겨질 때 비로소 맨 얼굴을 만나게 된다.     


맨 얼굴의 나를 만난다는 건 부끄러운 일, 수치스러운 일,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억눌러온 ‘비밀’까지도 직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 나아가 밖으로 드러낸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슴에서 뽑아내야 할 ‘대못’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볼록 어항이 있다. 어항 속에 있는 물체는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 어항 속 물고기의 연분홍 지느러미는 실루엣처럼 하늘하늘 길게 나풀거리고, 오물오물 주둥이는 상어 턱처럼 크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거대함’의 본모습이 얼마나 작은 지를. 그 ‘웅장함’의 실체가 얼마나 빈약하고 나약한지를.     


나를 직시(直視)하면 거품이 빠진 나의 모습이 보인다. 거품을 뺀다는 건 어떤 의미할까. 사실을 부풀리지 않는다거나 욕심 내려놓기, 솔직해지기 같은 것들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야     


《이솝우화》에 나오는 ‘원숭이와 돌고래’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항해를 시작하는 한 선원이 자신의 애완동물인 원숭이와 함께 배에 올랐다. 갑자기 폭풍이 휘몰아쳤다. 산처럼 거대한 파도는 배를 산산조각 냈다. 선원들과 원숭이는 모두 바닷속으로 빠졌다. 돌고래 한 마리가 허우적거리는 원숭이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돌고래는 원숭이를 사람으로 착각했다. 돌고래는 육지로 데려다주겠다며 원숭이에게 등을 내밀었다. 돌고래는 마침내 아테네 항구인 피레우스 맞은편 육지에 다다랐다.   

  

돌고래가 물었다. “당신은 아테네 사람인가요?”     


원숭이는 거짓말을 둘러댔다. “물론이지. 나는 아테네에서도 가장 유명한 가문의 사람이야.”     


“그러면 피레우스도 잘 알겠네요?” 돌고래는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는 아름다운 항구를 자랑하듯이 말했다.     

원숭이는 피레우스가 아테네의 유명한 관리일 것으로 짐작하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잘 알지. 나와 제일 친한 친구인걸.”     


원숭이가 거짓말하는 것을 알아챈 돌고래는 깊은 물속으로 내려갔고, 원숭이도 함께 가라앉았다.       


   

솔직함, 최고의 덕목     


아닌 것을 그런 척해봐야 결국에는 들통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안다. 솔직함이 소통과 건강한 관계를 위한 최고의 덕목이라는 사실을. 솔직해지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평안에 이르는 길은 이처럼 단순하다. 평안은 깊은 단순함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깊은 단순함! 마음이 고요하게 멈춰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어느 현자가 ‘원숭이 마음’이라고 말했을까. 여기서 저기로 한시도 쉬지 않고 옮겨 다니는 원숭이의 분주함에 빗댄 말이리라.     

‘나’는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나선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다. 산티아고 가는 길 같은 순례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 길은 관광지 돌며 유람하는 여행길이 아니다. 부르튼 발을 달랠 시간도 없이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고행의 길, 삶의 의미를 사색하고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는 탐색의 길이다.




‘나’를 만나야 ‘나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다      


탐색의 길 끝에서 ‘나’를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깊은 고요함이 찾아와 원숭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까. 자신의 존재 이유가 선명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재능을 담은 두레박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깨닫게 될지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만나는 순간은 도약의 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생을 살며 단 하루라도 ‘나’를 만날 시간을 내어 볼 일이다. 어느 날 산티아고 가는 길로 인도할 비행기 탑승구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큰맘 먹고 한번 떠나보자. 내면을 향한 여행을. 어차피 우리 모두 여행자 아닌가. 좁쌀만 한 지구에서 잠시 살다가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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