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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Aug 16. 2023

‘특별한 나’를 만드는 비법

    

자기애(自己愛)


나는 몇 년 전부터 ‘자기애(自己愛)’를 일상에서 실험하고 있다. ‘자기 사랑’이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나름 깨닫고 나서다. 논리의 근거는 단순하다.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 여기서 자기애는 이기주의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자기애의 주된 실험 대상은 ‘감정’, 특별히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다. 목적은 ‘관리’이자 ‘통제’다. 감정 관리와 통제, 이걸 잘하면 성숙한 사람이 되는 거니까.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하다     


구체적인 실천방안도 마련했다. 첫째, 수시로 밀려드는 감정의 변화 제대로 읽기. 둘째, 나는 지금 ‘자기애’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라는 상황 인식하기. 셋째, 행동 다스리기. 간단한 것 같은데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  

   

다들 그렇듯 ‘욱’하는 순간이 문제다. 이때는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 범죄자 딱지가 붙을 수 있는 긴박한 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욱’하는 순간, 범죄자와 일반인을 가르는 차이점이 ‘순간적인 자제력’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실험을 통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망, 이 일곱 가지 감정을 읽고 느끼며 조절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스로 마음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때로는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실험’이라고 한 것은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은지를 체득하고 계속 업그레이드해 나간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경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중요한 건 조절이고 제어다. 자기애는 이 조절과 제어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나’를 지키다, ‘나’를 사랑하다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1751~1821)은 자신의 서재 이름을 수오재(守吾齋)라고 지었다. ‘나를 지키는 집’이다. 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면 서재 이름까지 이렇게 지었을까. 사실 ‘나’는 약한 존재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넘어지고 무너진다. 술에 넘어지고 욕망에 무너지고 출세에 눈이 먼다. 수오재. 생각할수록 깊은 속내가 묻어난다.     


‘팝의 여왕’으로 불렸던 미국 가수 휘트니 휴스턴(1963~2012)도 나의 ‘자기애’ 실험에 한 표를 던진다. <Greatest Love of All(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노래를 통해서다. 그녀는 노래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연인 간의 사랑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 자신으로 사는 것


노르웨이 출생 극작가이자 시인인 헨릭 입센(1828~1906)도 《인형의 집》에서 ‘자기애’를 강조했다. 헨릭 입센은 3막 희극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 노라를 통해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주인공 노라는 자신이 남편(변호사 헬메르)의 노리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집을 뛰쳐나간다.     


노라는 절규하듯 말한다.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     


채인선 작가의 《나는 나의 주인》이라는 책 첫 장을 펼치면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나는 나의 주인.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압니다.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압니다. 나는 나의 주인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나의 몸을 잘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손톱이 길면 깎아주고 무릎에 상처가 나면 약을 발라줍니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잘 보살펴주어야 합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주인공과 들러리의 삶을 가르는 기준


나는 ‘최고’가 될 수 없을지언정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남에게 어떻게 평가받을까, 어떻게 사랑받을까를 궁리할 시간에 스스로를 사랑하면 될 일이다.    

 

‘나’는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존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꺼이 ‘지나가는 행인 1’ ‘지나가는 행인 2’를 자처한다. ‘독창성’을 팽개치고 ‘닮음’을 택한다. 눈도 닮고 코도 닮고 욕망까지 닮아간다. 오죽하면 성형한 사람들을 일컬어 ‘신사동 쌍둥이’ ‘압구정 쌍둥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주인공은 능동이고, 들러리는 수동이다. 주인공은 자율, 들러리는 타율이다. 능동과 자율, 수동과 타율이 주인공과 들러리의 삶을 가르는 기준이다.    

 

이왕 한번 사는 인생, 주인공 삶을 살아야 한다.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내 목소리 내면서. 멋지게 내 팔 한번 흔들어보는 거다. 냄새나는 남의 똥 만지지 말고 내 똥 한번 시원하게 싸보는 거다. 이왕이면 질펀하게. 질펀할수록 독창적일 테고 질펀할수록 주인공의 삶에 가까워질 테니까. 이게 자기 사랑이고, 특별한 나를 만드는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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