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토르 피아졸라 100주년 기념 마티네 콘서트 후기
내 인생, 슬픔도 변주하여라.
선지자가 그러했듯이. 황홀하게 변주해라.
- 공연 후 메모중에서
무한도전의 <순정마초>부터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경기곡 <Adios Nonino> 그리고 온앤오프의 <The 사랑하게 될 거야>까지. 이 모든 곡들엔 슬픔을 연주하는 악기가 하나 있다. 바로, '반도네온'이다.
나는 슬플 때면 반도네온으로 연주되는 아픈 음악들을 듣고 들었다. 음원으로 연주되는 탱고의 슬픔 속에서 언제쯤 반도네온 연주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을까를 상상하고 상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간절히 바라면, 탱고를 듣게 된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부엌에서 어머니가 우연하게 틀어놓으신 라디오에서 물소리와 섞인 틈을 타 DJ가 말한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100주년 기념…콘서트…아트홀, 문자와 TBS앱으로 신청하시면 초대권을 드립니다.”
'이건, 나를 위한 멘트야!'라며 나는 무엇이든지 구하면 얻어낼 수 있는 믿음을 간증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처럼 문자를 보냈다. '피아졸라를 너무 좋아해서 꼭 가고 싶어요!'…. 소식은 없었다. 떨어졌나 보나 했던 일요일에 소식이 왔다. 초대권을 보내주겠다는 소식. 그때서야 깨달았다. 연주장이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위치해있었다는 걸….
티켓값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전석 2만 원에 수준급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니. 근처에 살았으면 더더욱 좋았었겠지만, 이렇게 갈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사실 이것은 운이 아니라 피아졸라와의 '필연'이라고 생각하며 이른 새벽부터 준비해서 밖으로 나섰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피아졸라를 들을 수 있어.
쉽게 얻었다고 쉽게 져버리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과 드디어 반도네온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다는 설렘이 뒤섞였다. 설렘 사이로 오랜만에 외출에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하필이면 꼭 이런 날 아프다니. 공짜로 얻은 표니 쉽게 버릴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군말하지 말고 2시간을 견뎌보자.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은 출근길과 행선지를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승객석에서 간신히 문 옆에 자리 잡은 나는 숨을 가파르게 쉬었다. 마스크 안에 숨이 고였다. 산소가 모자란 사람처럼 눈앞이 어지러웠다. 중간에 한 번 내렸다 다시 탔다. '나는 할 수 있다.'
나의 경건한 다짐만큼 몸은 날 따라주질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 지하철 역사를 뛰쳐나가 몸의 절반을 쏟아내는 것처럼 속을 게워냈다. 핑핑 도는 머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다시 내려와 고민을 했다.
'앞으로 1시간, 나는 하행선 열차를 타고 아트홀에 갈 것인가. 아니면 상행선 열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건 이렇게 묻는 것과도 같았다.
'1시간 뒤에 다른 미래를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같은 공기와 익숙한 집에서 또다시 방바닥과 붙어 지낼 셈인가' 후자는 이미 수차례 경험했다.
'하행선의 열차에 사람이 많지 않으면… 아니, 제발 사람이 없어야 해'라고 나는 한 번도 기대본 적 없는 지하철 벽에 기대서 하행선이 내려오는 것을 봤다.
다행히 사람은 없었고 나는 운이 좋게 의자 끝자리인 VIP석에 앉아 지하철에 기댔다. 간신히 눈을 몇 번 떴을 땐, 지하철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초록색 풀과 푸른 하늘이 보였고, 기둥에 걸친 팔이 아릿하게 저렸다. 객실 안엔 약간의 냉풍이 오가서 숨을 쉬기 편했고, 알람을 진동으로 맞추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고 깨니 '죽전'이었다. 푹 잔 듯이 나는 음악을 느끼기 좋은 상태가 되어, 신에게 감사하며 아트홀로 향했다.
오전 10시 50분 쯤되었으려나. 별로 없을 거로 생각한 홀엔 사람들이 북적였다. 나는 앞에서 맡겨진 티켓을 못 찾는 아주머니에게 “물품보관소에 가보셔요”라고 말하고, 내 티켓을 찾았다. 그와 나는 다시 또 입구에서 마주쳤고, 웃음을 나눴다.
아트홀에 들어서자 붉은 조명과 바닥으로 떨어지는 심플하게 빛이 나는 아름다운 황금빛 조명이 눈에 띄었다. 안내원에게 묻자, 그는 나를 지하철의 VIP석처럼 초대권 좌석으로 안내했다.
푹신한 의자에 앉자 마치 이제껏 겪었던 모든 슬픔과 고난은 피아졸라의 탱고를 듣기 위함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오전 11시가 되자 웅성거리는 장내에 신호를 주듯 객석의 불이 꺼졌다. 붉은 조명과 양 옆 간단한 제목을 소개하는 LCD는 앞으로 멋진 공연이 펼쳐질 것처럼 빛났다.
곧이어 안인모 피아니스트가 등장해 해설을 시작했다. 그의 해설은 아주 경쾌했다. 인터미션(쉬는 시간)이 없는 대신, 그는 중간에 반도네온 연주자인 고상지와 기타리스트 김진택을 인터뷰 하고, 적절한 때에 나타나 피아졸라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들과 함께 곡 소개를 했다. 뒤이어진 공연은 내 뉴런에 깊이 박힌 실내악이란 편견을 깨부수기 충분했다.
피아졸라 탄생 100주년 기념 <탱고의 향연> 2021.04.28. WED. 11AM. 용인포은아트홀
연주자 고상지(반도네온), 송영민(피아노), 장우리(첼로), 김진택(기타), 이시현(베이스), 장영광(클라리넷)
해설 : 안인모
곡 순서 (원곡자 : A.Piazzolla 아스토르 피아졸라)
01. Tango Callejero 거리의 탱고
02. Primavera Porteña ‘사계’ 봄
03. ‘History of Tango’ 중 ‘탱고의 역사’ 중
-Ⅱ. Cafe 1930
04. -Ⅰ. Bordel 1900
05. Oblivion 망각
06. ‘Tango Suite’ 중 ‘탱고 모음집’ 중
-Ⅱ. Andante
07. Adios nonino 아디오스 노니노
08. Libertango 리베르탱고
실내악이란 편견
나의 첫 번째 실내악은 수다와 소음으로 뒤섞인 공연이었다. 페이스북이 한창 유행이던 시절, '천 원의 행복'이라는 공연이었다. 말 그대로 천 원이면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사였다. 어느 날엔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의 공연이 이뤄진다기에 당장 신청을 하고 공연장에 갔더랬다.
그곳에 가면, 라흐마니노프만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을 거로 기대했다. 음원만 들은 탓이었다. 공연장은 생각보다 작았으며, 객석은 무대와 아주 가까웠다. 일찍이 들어선 공연장엔 사람들의 수다는 끝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객석을 메우기 위해 친구들이라도 동원된 것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시끄러울 수가 있나. 마치 첫 관람인 영화에서 스포일러를 듣는 기분이었다.
연주는 황홀했다. 음원으로만 들어오던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직접, 그것도 가까이에서 생생한 악기 소리로 들으니 세상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공연 전 소음과 수다 소리는 곡과 함께 저 먼 인상 깊은 곳에서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분명 그랬다. 공연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음악보다 뒷사람들의 시끄러운 소음이 더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이후에 나는 '저렴한 실내악 공연' = '시끄럽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곳'이란 편견이 생겼다.
두 번째 실내악 공연은 꿈의 숲 아트센터에서 진행했던 <천재 문학가, 애니메이션 거장을 만나다>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연을 직접 연주자들이 해설하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상실의 시대까지 두 아티스트가 엮인 음악들을 연주하는 공연이었다.
비올리스트 이신규 님께서 직접 하루키의 소설 속 클래식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하야오와 지브리의 음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하나의 음악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실내악 공연을 보고 난 후에 라야, 난 첫 번째의 달콤한 악몽 같던 소음에서 벗어나 음악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 모든 소음들은 피아졸라가 연주하며 들었던 핀잔소리와도 같았다. 피아졸라의 반도네온 소리가 울렸을 장소의 소음처럼, 난 모든 소음들을 뚫고라야 피아졸라를 만날 수 있었다.
"반도네온에는 행복한 거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 아스토르 피아졸라(Ástor Pantaleón Piazzolla, 1921.03.11 - 1992.07.04)
선지자가 고향에서 그러하듯 그 또한 고향에서는 끊임없이 배척당하고 박해받았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택시기사로부터 승차거부를 당할 정도였으니 피아졸라에 대한 거부감과 배척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꺾지 않는 음악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세상 어디든 자유롭게 내달았던 잡초 같은 생명력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음악과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 트랜스라틴 22호 (2012년 12월), 홍승찬 <피아졸라의 삶과 음악>
반도네온은 저항한다
반도네온은 마치 물속에서 무중력 상태에 저항하듯 움직이고 소리를 냈다. 유튜브나 TV에서 보던 반도네온은 으레 피아노가 그렇듯 '눌러서 소리를 내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할 줄 아는 악기라 생각했는데, 반도네온은 이따금 숨소리만 낼뿐, 화려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불규칙한 버튼들로 이루어진 반도네온은 자기 자신을 다룰 줄 아는 사람에게만 자신을 허락했다.
"반도네온의 연주 버튼은 71개입니다. 피아노 건반은 88개인 데다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주하는 연주하는 체계가 피아노엔 있지만, 반도네온은 음계가 불규칙하게 날 수 있습니다.
한쪽은 저음, 한쪽은 고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음을 나타내는 규칙은 따로 없습니다."
- 무대 중 해설가와 고상지 님의 인터뷰 중에서
반도네온은 접혔다 펴졌다 하는 소리에서도 소리가 달라졌다. 피아졸라가 왜 반도네온엔 행복이라곤 없다고 했는지 이해가 갈 만도 했다. 반도네온은 작은 실내악 악기들 속에서 이단아로 보였다. 세상에 저항하듯 움직였고, 소리를 냈다.
이번 마티네 콘서트에서 또 다른 발견을 했다면, 익숙하다고 해서 새롭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 공연 전까지만 해도 반도네온과 함께 연주된 피아노, 첼로, 기타, 베이스, 클라리넷 모두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봤던 악기들이라 수준급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악기들은 마땅한 소리를 내는 게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오케스트라 연주 속 소리들을 담당하는 악기들이니, 이들의 역할과 소리는 너무 당연하게 보았었다. 클래식하다고 생각했었던 악기들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반도네온이 그러했듯, 어떤 악기에도 당연한 소리는 없었다.
악기들은 연주자들이 어떻게 어루만지느냐에 따라 강렬하고 캐주얼한 소리를 냈다. 가끔 연주자들은 악기들을 일부러 치기도 하면서 연주장에 소리들을 쌓아갔다.
기타는 <Bordel 1900(선술집 1900)>에서 더욱 매력을 더했다. 기타의 몸통을 튕기는 연주로 마치 남미의 타악기가 연상됐다. 기타가 이렇게 이국적이고, 풍부한 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니! 베토벤은 기타를 작은 오케스트라고도 표현했다지. 정말 놀라웠다.
수준급의 인재가 연주하는 음악들을 쉽게 듣다보니 당연해져서 몰랐었다. 어떤 연주자가,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악기는 그 사람의 말을 음으로 표현해주는 도구란 걸.
"반도네온이란 악기는 불특정 한 버튼을 눌러야 해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런 반면에 (협업할 때) 기타는 연주할 수 있는 음계가 있어 응하기 편한 면이 있습니다."
- 무대 중 해설가와 고상지 님의 인터뷰 중에서
모두가 답습할 때, 나만의 새로운 이야기로
"피아졸라가 개척한 누에보 탱고(Nuevo Tango, 새 탱고)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재즈의 영향이 많이 보입니다. 피아졸라가 클래식과 재즈 사이에서 하나만 결정을 못하고 있었을 때, 오히려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 다 섞어서 융합을 해냅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교육열과 뉴욕의 재즈,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섞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인 영향도 크게 작용한 거로 보입니다."
- 안인모 님의 해설 중에서
2014년 김연아 선수의 소치 동계올림픽 프리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Adios Nonino(아디오스 노니노)>는 피아졸라가 뉴욕의 클럽에서 일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듣고 아주 큰 슬픔에 휩싸였을 때 만든 곡이다.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는 '안녕, 할아버지'란 뜻입니다. 피아졸라의 집안은 이탈리아 집안이었는데, 우리나라 아가들이 '할머니'를 옹알대며 '할미'라고 부르듯이, 이탈리아 아가들도 '할아버지'를 뜻하는 '논노'를 '노니노'라고 발음합니다.
'아디오스 노니노'에서 '노니노'는 그런 뜻입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피아졸라의 손자들이 안녕을 말하듯이 지은 제목이지요.
예술가의 슬픔은 악보 위에 음표로 남았고, 작곡가인 피아졸라 자신도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은 곡이기도 합니다. '아디오스 노니노'는 피아졸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곡입니다."
- 안인모 님의 해설 중에서
해설을 듣고 나서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가 이어졌다. 여러 장의 책들이 겹쳐있는 듯한 모양의 반도네온은 피아졸라의 아버지이자, 손자들의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주고받듯 기타와 음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시절은 다시 올 수가 없어서, 그리움만 얘기하기에는 너무나 예쁘고 그리웠던 시절이라서 이토록 아름다울까 싶을 정도로 연주의 한 음 한 음엔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했다.
피아노는 빠르게 때론 느리게 연주되면서 뻐근한 마음을 어루만졌다. 슬픔과 기쁨에 장단조가 있다면, 다시 오지 못할 시절들은 웅장하게 장단조를 넘어들며 관객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때 반도네온이 치고 들어온다. 피아노는 가장 밑의 건반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선지자의 어린 시절에 들어선 듯 하자 첼로가 묵직하게 현을 연주한다. 악기들의 음은 마치 사람의 말소리처럼, 할아버지처럼, 어린아이처럼 말하고 연주됐다. 마치 이미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그랬어요?"라고 묻고 "어땠어요?"라고 물으면 "그랬단다"라고 대답하듯 악기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움직였다. 그건 오로지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음악이었다.
슬픔이여 변주하여라
탱고는 네 박자다. 송대관 선생님이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다며 한 구절 한 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인생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이라고 노래 부르셨듯. 반도네온도 네 박자 속에서 인생사 쿵짝한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아픔이 다시 몰려왔다. 공연이 끝나기 전·후,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슬프기만 했던 삶 속 조연이 아닌, 피아졸라가 세상에 남긴 슬프지만 황홀하고 역동적인 그의 음악처럼, 나의 인생도 그렇기를 강렬히 바라는 사람으로…. 내 인생, 지금의 슬픔도 변주하여라. 선지자가 그러했듯이. 황홀하게 변주해라.
(해설해주신 안인모 님을 비롯해, 반도네온의 고상지 님, 피아노의 송영민 님, 첼로의 장우리 님, 기타의 김진택 님, 베이스의 이시현 님, 클라리넷의 장영광 님! 훌륭한 연주와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본 블로그에 기재되는 모든 글과 사진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본 글에 첨부된 사진과 인용된 대사/글, 사진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