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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Nov 08. 2019

답 주려고 하는 사람들

싫어

인생엔 답이 없어. / 아니. 있어.
꿈은 구체적일수록 좋아. / 아니. 그렇게 구체적일수록 너, 원하는 일 못 해.
'왜'냐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해. / 아니. 그냥 해. 다들 그렇게 살아.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중요해. / 아니. 그 가치를 지키려면 인권센터에 들어가야 해.

"모두 다 그래"라는 대충 때우려는 비겁함.  
무한경쟁의 레이스에서 답을 받고 싶지 않다. 난 응답하고 싶다.


"강해. 적극적으로 보여. 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들 것 같달까?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 같은 느낌? 회사보다는 직원들을 대변할 것 같은 느낌?"


면접에 가지고 갈 이미지 컨셉을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는 모의면접 내내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의 모습을 지적했다. 공손하게 손짓한 걸 손가락질했다고 하고, 정갈하게 말한 내용이 강해 보였다고 했다.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그날 정말 피곤해서 더 부드럽게 얘기하려고 노력했는데도 그렇게 보였냐고 하니까 그럼 평소엔 어떻겠냐며 좀 맞아야 된다고 했다.


이 답변을 들은 이후로 11월에 다른 취업 강연 프로그램들은 듣지 않기로 했다. 너무 많은 애를 쓰고 있었다. 아무리 영양가 없어 보이는 강의일지라도 하나라도 얻으려고 했던 시도들에서 너무 많이 지쳤다.


오랜만에 친했던 교수님과 후배를 만나 식사를 했다. 최근에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 근황토크엔 취준얘기가 빠질 수 없었다. 모두가 저 강사가 이상함에는 동의했지만, '노동조합'이라는 말은 지나치질 않았다.


"그럼 노동인권위원회에서 일하시는 건 어떠세요?" 후배가 말했다.


"나는 노동인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직업으로 삼고 심지는 않아.."


교수님은 내게 경찰을 하라고, 기자를 하라고, NGO에 가는 건 어떻겠냐고 끊임없이 답해주셨다. 언론고시를 준비할 환경이 안 된다는 걸 말했지만 또 말하게 된다. 그렇게라도 도움을 주려고 하는 마음은 안다. 너무 잘 안다. 조금이나마 편하게 가길 바라며, 내가 지금 추구하는 가치가 잘 실현될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말한다는 걸.


하지만 난 경향에 매몰되어 뾰족해져서 일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고생한다. 쉬운 답을 제시하는 것만큼 내 하루는 녹록지 않았다. 이미 그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포기했다. 고생이 고생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성격에 맞는 게 쉬운 길인데, 지름길을 피해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물며 부모님을 비롯해 가까이에 어른들은 '아무 데나' 가서 일하라고 하는데 말이다.



'아무 데나', 쉬운 답들


반문하고 싶다. 지금 내가 아무 데나 가면 행복할까? 인권 이슈를 다루는 기관에 가서 일하는 것이 편한지. 그건 내가 추구하는 무수히 많은 가치 중 하나일 뿐인데. 실은 인권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이슈는 영웅들이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그냥 나는 민주사회에서 있는 기업, 사람이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받고 싶을 뿐이다.


아무 데나 가서 폭언이나 폭행, 희롱을 당하고, 그것마저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기업에 가서 꿈에서도 일을 하고, 오늘 아침에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직장생활을 나는 '다시'하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남들 눈엔 나의 '다시'는 거세된다. 시도는 제거되고 결과만 남았다.


3월에 취업코칭해준다고 자청했던 사람은 내게 sky를 왜 나오지 않았냐면서 왜 고3 때 공부를 안 했냐 했다. 그렇다. 난 sky를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답은 되지 않는다. 다시 전공을 바꾸기 위해 하루에 5시간 남짓 자며 종일 서서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했던 내 시도들을 당신은 못 봤으니까.


이런 식이다. 단면을 툭 잘라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거 참 쉽다.


꿈은 구체적이면 좋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말할수록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게 특정한 일을 할 수가 없어.'다. 난 그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으레 그런 말을 할 땐 상대의 표정은 고루하다. 생각 참 어려 보인다는 표정. 고루한 표정을 만날 때, 난 질문에 고립된다.


대통령부터 잘나가는 명사들은 '왜'라고 끊임없이 물으세요. 생각하세요라고 했지만, 사회는 '왜'를 묻는 순간 이단아로 취급한다.


지금 내게 직책이 없어서일까. 그럴듯한 명함을 만들고 나면 나의 고뇌는 박수를 받겠지? 그다음엔 어떤 답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나도 답이 절실했던 때가 있었다.


25살. 기존의 정의관은 무너지고 우울과 무력감이 지배했던 시기. 계속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모든 행위가 너무 싫었다. 내 생활들은 너무 구질구질한 것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당장 이 끈적한 고민을 끝낼 답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답은 없었다. 질문을 납득할 시간이 필요했다. 1년을 약속했다. 1년만 참아보자고. 그사이 나를 둘러싼 사회는 끊임없이 답을 만들었고, 답을 제시했다.


졸업 후 사회에 놓였을 땐 답이 분명했다. '인생엔 답이 없어'라고 말하지만, 정량적인 답이 있었고, 답이 없을 땐 '모두 다 그래'라는 말로 어수룩한 면을 비껴갔다.


"모두 다 그래"라는 말로 대충 때우려는 비겁함.

무한경쟁의 레이스 속에서 답을 받고 싶지 않다. 난 응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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