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있게 색깔을 입는 남자
"색깔 있는 남자요?"
"어? 음흉한 남자들 아냐?" 당장 이런 식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기만의 개성 있는 느낌을 가진 사람을 색깔과 연관시켜 나는 이렇게 부른다. 색깔 있는 있는 남자라고. "아! 저 사람은 이 색깔이야!" 이런 식으로.
사람은 누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기만의 색깔을 입고 있다. 한 색깔일 수도 있고 , 여러 개일 수도 있으니 재미있는 사실이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남자나 여자 가리지 않고 외모보다 전체적인 분위기, 즉 색깔을 본다. 그냥 느낌으로 "음, 이 사람은 주황색? 아님 하늘색?" 이런 식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상대방을 색깔로 가리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에 대한 나의 색깔 매김은 무슨 과학적인 근거나 보편적인 기준 같은 건 없다. 순전히 내 기준과 느낌에서 맞춰진 색깔 매김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인이라 해서 무조건 장밋빛의 색깔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재미 삼아한다. 나름 흥미롭다. 맞는 확률도 높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다 보니 대충 짐작으로 딱 맞아떨어질 때도 있다. "와~ 제대로 맞추었네요!" 할 때는 정말 어려운 퀴즈를 맞춘 것처럼 신난다. 상대방도 색깔로 자신을 매겨주는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 딱히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하하, 호호~"하며 재미있어한다.
지금 수준 정도로 우선 남편을 보자면, 그는 단연코 무채색이다. 무개성이 개성이다. 평소에 감탄사라곤 없다. 예를 들어, 가을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탄성을 지를 만큼 황홀하게 물든 단풍잎들을 보며 "저것 봐! 너무 멋지다~, 저런 풍경을 보고 무슨 생각이 안 들어?” 하고 한마디 던진다. 그의 대답은 대번에 “ 아무 생각 안 해!” 하며 그런 질문을 귀찮아한다.
몇 년 전 , 로마에서 여행 중이었다. 곳곳마다 여러 형태의 동상들을 자세히 보고, 사진을 찍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가 느닷없이 "이봐~다 똑같아! 그 돌이 , 그 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단순한 것이 무기다. 옛날엔 하늘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 그는 무채색이다. 그것도 상당히 센 무채색. 아무튼 무채색도 색이다.
남편은 그렇다 치고, 색깔 있는 남자 하면 피식 웃으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직원들 사이에는 일명 "미스터 P (Park의 줄임말)"로 불린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박 사장님이다. 오늘은 사장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2년 동안 일하면서 지켜본 사장님은 딱 한 가지 색깔로 말하기 힘든 타입의 남자다. 딱히 말하자면, 사장님은 현란한(?) 칼라의 남자다. 다양한 분위기,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되겠다. 좀 복잡하다.
사장님의 색깔을 말하려면, 일단 그의 용모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난 남자의 용모를 따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장님의 첫인상은 "헉"할 정도다.
오래전, 내가 회사 인터뷰를 갔을 때다. 사장님을 처음 본 순간 느낀 것은 "어머! 넘 무서워~“ 였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까만 피부, 부릅뜬 눈망울에 까치처럼 솟아오른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나, 한 성질 하는 사내야!" 하고 쓰여있는 듯한 그런 얼굴이다. “이거, 회사 잘못 들어온 것 아냐?”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사실, 조목조목 뜯어보면 나쁜 생김새는 아니다. 이상하게 그의 용모는 전체적으로 조합이 잘 안 맞는 것 같다. 어떤 여인은 예쁘지 않은데 사진이 기가 막히게 잘 나오는것처럼.
그럼에도 사장님에게는 그를 빛내주는 몇 개의 무기가 있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은 공평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 카리스마(?)하는 용모에 웬만한 미국 남자들과 겨룰 만큼 큰 키에 한 덩치 한다. 이민 2세로 유창한 영어와 유머러스한 언변은 사람들을 배꼽 잡게 하기도 하고, 간혹 폭탄 세례를 맞듯 한바탕 터지는 직원들의 꼬인 마음도 풀게 한다. (해고할 듯이 혼내고, 하루가 지나기 전에 풀어주는 방식을 고수한다)
거기에다, 그의 용모에서는 나올 것 같지 않은 목소리다. 성우를 뺨칠 정도로 좋다. 약간의 고음이 섞인 청량 하면서 부드러운 톤의 소리다. 목소리만으로는 멋진 수트를 입은 중후한 신사가 아닐까? 하고 바로 상상이 될 정도다.
이런 외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장님은 기본적으로 짙은 남색깔(Navy Blue)을 풍기는 남자다. 차가운 남 색깔이다. 보통 때 직원들을 대하는 모습에는 작열하는 카리스마가 있을 뿐이다. 한번 소리를 지르면 온 회사가 울러 퍼지고, 회사는 바로 경보알람이 켜진 것처럼 적막에 쌓인다. 이런 모습이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 어머! 혹시 조폭 출신 아냐?, 오래 버티기 힘들겠다~” 했다.
그 후로 사장님은 마치 새 옷을 갈아입듯 예상하지 못했던 색깔들을 걸치고 번쩍번쩍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땐, 마음이 동하면 직접 마켓에 가서 꽃을 몇 다발씩 사들고 온다. 꽃을 사 오는 사장님은 처음 보았다. 꽃을 든 남자는 외모가 어떻든 멋져 보인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자, 미스 김도, 그리고 캐런도, " 하면서 보이는 데로 여직원들에게 꽃을 나눠준다. "와, 사장님 멋져요~!" 하며 여직원들은 말 그대로 전율한다. 난리가 난다. 여기저기 회사는 꽃천지가 된다. 그것을 무척 즐긴다. 이처럼 사장님은 사랑을 주는 여인처럼 달콤한 초콜릿 색깔로 변신한다.
어느 날은 슬픈 보라색의 옷을 입는다. 매번 직원 회식 때면 노래방에서 흘러간 옛날 노래, "여고시절"을 부른다. 사장님의 애창곡이다. 입사 때부터 들었으니 12년째다. 그의 노래 톤은 애처롭다 못해 구슬프다. 모두가 저절로 숙연해진다. 왠지 애써 슬픈 표정을 지어야만 하는 분위기가 된다. 근데, 왜 매번 여고시절이람? 그것도 남자가? 뭐 "남고 시대" 같은걸 불러야 되는 것 아닌가? 하고 괜히 궁금증이 생긴다. 왜냐고? 그렇게 노래 한가닥을 뽑는 사장님의 모습은 영락없는 보라색이다. 내가 느끼는 보라색은 애매하게 우울한 색깔이기도 하다.
또 어느 날은, 실수한 일도 "괜찮아~ " 하며 한없이 넓은 하늘색이 된다. 그러다 어떤 날은 갑자기 질투의 화신이 되는 노란색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기분이 좀 안 좋을 때다. 어쩌다 좀 생긴 여자와 남자들이 웃고 떠드는 장면이 발각되면 단번에 질투심이 폭발한다. 사장님이 경계하는 직원은 그의 말대로라면 "잘 생긴 놈”이다. 그런 놈이 뭘 모르고 예쁜 여직원들에게 얼씬거렸다간 잘릴 수도 있을 정도다. 아~ 사장님의 질투는 정말 노란색으로도 부족하다. 회사의 인물은 단연코 사장님 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 어느 날은 편안한 브라운 색깔로 변하기도 한다. “허허, 하하” 거리며 세상에도 없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미소의 남자로 옷을 입는다. 직원들을 자식처럼 챙기는 아버지 같고, 할아버지 같다. 인정 많고 뚝배기 같은 정겨움이 막 피어난다.
간혹, 공장 직원들이 자녀를 데리고 온다. 그럴 때면 아이들 손에 캔디와 백 불짜리 지폐 한 장을 덥석 쥐여준다. "이걸로 장난감 사고 인형도 사~"라고 한다. 이때는 산타 할아버지가 된다. 이러한 행사는 공장 직원들에 한해서다. 어릴 때 가난했던 집안이라 장난감 하나 가질 수 없었던 것이 슬픈 일이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가장 힘든 곳에서 일하는 공장 직원들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다. 사장님이 가지고 있는 색깔 중 가장 근사 한 컬러다.
사장님은 단번에 색깔을 매기기 어려운 남자다. 대충 감을 잡기가 힘들다. 자세히, 오랫동안 들여다보아야 색깔이 파악이 된다. 어쩌다 변덕스럽게 골라 입는 색깔도 아니다. 마음속 어딘가 색깔 저장고가 있는 듯싶다. 문득문득 성질대로 튀어나오는 색깔이지만 색깔마다 굉장히 진지(?)하다. 다양하고도 현란한. 그래서 제대로 한 색깔 하는 남자가 아닐까.
직원들은 오늘도 궁금하다.
기대 반 호기심과 걱정 반으로 사장님이 무슨 색깔을 걸치고 나타날지.
"아~ 제발 , 카리스마 작열하는 그 남색깔 말고요~ 특히, 황당한 노란색은 정말 싫어요~ "하면서.
이번 글부터 제가 본 좋은 영화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소개합니다.
"The book shop"-Netflix 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