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한 닢의 사랑
언젠가부터 동전을 줍기 시작했다. 무심코 길을 걷다 보면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동전이다.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거리라고 해 보았자 회사의 파킹장이나, 식품점이니 레스토랑 등 들르는 곳곳의 파킹장이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는 동전은 의외로 많다.
미국에서 흔히 쓰이는 동전은 1센트, 5센트, 10센트, 25센트다. 길에 떨어져 있는 동전은 주로 1센트와 10센트가 대부분이다. 25센트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경우가 드물다. 크기도 하고, 그나마 돈다운 구실을 한다고 여기는지 관리를 소홀(?) 히 하지 않는가 보다.
요즘은 거의가 카드로 물건값을 지불한다. 좀처럼 동전이 생기는 일이 드물다. 혹 현금으로 지불할 때가 있다. 가령, 물건값이 $50.17이 되면 동전이 필요하다. 당장 동전을 찾고, 고르고 하는 것이 귀찮아진다. 그냥 지폐로 계산하고 다시 동전을 만든다. 그것도 처치 곤란이다. 왜? 지갑이 무거워지니까. 그럴 때면 그냥 아무 데나 쏟아놓았을 정도로 동전은 나에게 가치 없었다. 쓸데없는 물건처럼 무관심한 것이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에 다운타운으로 일을 다닐 때였다. 아침마다 전철을 타야 했다. 막 전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죽어라 하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표소에서 겨우 티켓만 챙기고 가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그들이 버리고 간 동전들이 정말 많았다. 그때는 적은 월급쟁이였는데도 그 많은 동전을 쌍~무시해 버렸다. 그것들을 싹~쓸어 모았다면 꽤나 되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괜히 그런 생각이 든다.
심지어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동전을 발견해도 그깟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국 사람들도 동전을 어지간히 무시(?)한다. 동전은 그들의 책상 위의 먼지에 덮인 채로 막 나뒹굴고 있을 정도니까. 동전 지갑은커녕,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도 않는다. 생기는대로 마구 흘리고 다니는 게 보통이다. 그들에게도 동전은 이래저래 볼품없는 물건처럼 대해진다.
내가 동전을 줍기 시작한 것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오래전인가 신문 기사에 났던 일이다. 조지아 주에 산다던 한 노인이 평생 모은 동전을 트럭에 싣고 은행에 들렀다는 일이다. 얼마의 지폐를 챙겼는지는 모른다. 단지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실감했을 뿐이다. 난 그때부터 "아! 동전도 돈이쟎아!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월급도 동전으로 이루어져 생긴 것 아닌가? 분명 그렇다. 뭐 돈에 환장한 것은 아니고.
이런 계기로 나의 동전 줍는 일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동전에 애착하기로 한 것이다. "동전~어디 있나~" 하며 애를 쓰고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참고로, 동전에 대한 목적(?)을 가지면 줍는 일이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식으로 힘들다. 동전을 쉽게 줍는 비법이 있다면 땅을 보고 걷는 나의 습관이다. 그것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어야 한다. "음, 날씨 한번 좋네" 하면서.
그렇게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어떤날은 동전과 맞닥뜨리게 된다. 땅에 버림(?) 받은 동전들은 의외로 많다. 너도 나도 "뭐 이깟것" 하며 별 신경 쓰지 않고 떨어뜨리는 것들이다. 나는 "어? 요깟 것이라뇨?!" 하며 줍는다.
그저께도 워킹을 하면서 동전을 주웠다. 내 생일날에도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서도 동전 한 닢을 손에 쥐었다. 물론 가장 흔한 1센트짜리였다. 동전을 줍다 보니 1센트라도 굉장히 반갑다. 보통 애착이 가지 않는다.
미국에서 동전에 특히 애착하는 부류가 있다. 그들은 대개 노인들이다. 그중에 할머니들이 으뜸이다. 동전에 대한 애착심이란 대단하다. 유심히 살펴보면 손때가 묻은 두둑한 동전주머니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할머니들의 동전주머니는 어떻게 해서 두둑한지 잘 모르겠다. 옛날 식대로 현금을 만지작거리며 쓰는 것이 좋은지 모른다. 동전의 출처가 거기에서 나오는지, 아니면 나처럼 어디서 주워 모으나? 뭐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런 그렇다 치고, 할머니들은 계산대에서 한참을 걸린다. 현찰 계산이기 때문이다. 일단 동전을 손에 잡히는 데로 끄집어낸다. 눈에 보이게 쫘~악 펼친다. 1센트. 5센트, 10센트.. 이런 식으로 해서 돈을 맞춘다. 할머니 뒤로 손님들의 줄은 길게 늘어져간다. 아랑곳은 둘째치고 너무 멋질 정도로 뻔뻔하다.
미국 식품점에서 어째 줄이 길다 싶으면 빨리 다른 줄로 비켜가는 게 상책이다. 아마도 그 줄에는 동전에 애착(?)하는 할머니가 있을 확률이 높다.
이들 중에는 행색은 초라해 보이지만 의외로 알부자 노인들이 많다. 어쩌면 동전 한 푼 한 푼으로 부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동전에 애착하는 할머니들은 바로 나의 엄마 세대들이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에 엄마도 동전에 애착하며 사셨다.(지금도 그렇더구먼) 동전을 모아 푼돈을 만드셨다. 그렇게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오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미국 할머니들이나 엄마는 동전 세대다. 누구나 동전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동전을 줍고, 모으는 건 무슨 알부자가 되는 길에 보탬이 되려는 건 아니고 , 또 그렇게 되기도 힘들다. 순전히 재미다. 동전주머니는 항상 나의 가방에 따라온다. 동전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인 동전들은 나의 동전 항아리에 채워진다. "이걸 언제 채우지? 하고 애를 태우지 않는다. 보이면 줍고, 모이면 동전 항아리에 채워진다.
이렇게 모은 동전은 별것 아닌 기부금에 보태는 일도 한다. 어떤 땐 나의 여행 어카운트에 입금된다. 이 기부라는 것은 별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한 달에 한, 두 번꼴로 금요일마다 일어나는 행사다. 주로 아침 출근길에 기부박스를 들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부담 없이 기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여러분! 기부들 좀 하세요!!" 하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무슨 , 무슨 비영리 단체에서 나와 기부박스를 들고 있다. 자동차들이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서면 이들이 차 옆으로 지나간다. 기부를 원하는 사람이 자동차 유리문을 열면 이들이 다가온다. 자유자재로 기부금을 박스에 넣는다.
박스에 떨어지는 소리로 짐작컨대, 기부금의 대부분은 동전이다. 물론 지폐도 있다. 별 부담없는 기부행사라 너도 나도 참여한다. 동시에 “ 고마워요! 축복받으세요~"라는 답례가 돌아온다. 동전 몇 닢으로 축복받으라니 괜히 송구스럽기도 하면서 기분도 좋아진다.
기부란 이렇게 동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야말로 작은 동전이 모여 푼돈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 돈이 모여 이웃을 돕고 사회를 밝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는데 한몫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동전에 대한 나의 애착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동전 한 닢을 줍고, 모을 때마다 내 마음에도 꿈 한 자락, 두 자락들이 쌓여가는 것 같다.
어째 부자가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부자가 별건가? 말이죠. 동전이 작은 기부에, 어떤 때는 나의 여행길에 헌신을 하는 것처럼 생각되니.. 동전에 대한 나의 애착심이 유난스러워지는 것이 당연한걸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