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얻는 소중한 것들
여행의 선물
여행은 항상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불상사도 있지만 그런 여행을 통해서 배우고, 얻는 일이 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조금은 낯설기도 하면서 좀 특별한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시댁 어르신들이요, 남편과는 친누나와 동생이나 다름없는 시사촌 언니 부부가 함께 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어르신(언니 남편)의 넘치는 끼(?)와 유머로 정말 유쾌한 여행이었다.
멋진 바다, 에게 해에 뛰어들고 싶어 수영을 배우다
일흔이 넘은 어르신은 선수만큼 수영을 잘하신다. 실제로, 배를 타고 나갔다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보란 듯이 멋지게 에게 해에 다이빙을 하셨다!.
수영을 엉성하게 하는 나는 여행을 떠나오면서 어르신에게 수영을 제대로 배우기로 작정을 했다. 미리 복고풍의 점잖은 수영복도 챙겼다. 아무래도 수영 선생님이 어르신이라 신경을 조금 썼다. 아무튼, 수영을 배운다는 것에 가슴이 떨리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것도 산토리니에서!
그렇게 작정을 했음에도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지쳐서 호텔에 있는 수영장을 가지 못했다. 그러다 하루를 남기고 우리 모두는 수영장에 모였다.
‘기어코 물에 뜬다!'라고 열정적인 자세로 선생님의 코치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역시 수영을 못하는 두 사람(언니와 남편)은 물이 무서워~하며 수영 장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발만 물에 살짝 담근 채, 나의 허우적거리는 모습에 깔깔대고만 있었다. 그게 일종의 응원? 이라나? 뭐, 그랬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물이 무서워 수영을 못 배우겠다는 것이고, 나는 물이 무서워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희망으로 열심히 물과 씨름했다. 몇 시간 동안 강도 높은 강습을 받은 후 드디어 물에 뜰 수 있었다. 백 프로 완벽한 수영은 아니지만 일단, 성공이다. 좀 더 연습을 하면 나도 포옴 잡고 수영할 수 있다고!
뭐, 나의 바람은 이런 것이다.
언젠가.. 멋진 바다, 에게해에 뛰어들고 싶다고!
인생 비망록
이번 여행은 몸이 편찮으셨던 시사촌 언니를 위한 격려 여행으로 시작되었다. 여행이라면 무조건 싫고, 그것도 유럽은 더욱 불편하고, 게다가 더운 여름날은 딱 질색인 그(남편)가 어쩔 수 없이 동행했던 여행이다. 사촌 누나를 격려한다는 의지(?)에서다.
언뜻 생각하기에, 우리(남편과 나)가 어르신들을 위해 좀 대견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웬걸, 산토리니 여행은 어르신들이 어린(?) 우리를 모시고 간듯한 그런 느낌의 여행이었다.^
사실, 산토리니 여행에서 대장 역할은 어르신 (언니 남편)이었다. 워낙, 여행을 많이 하신 덕분에 여행 일정을 짜는 것도 척척 하셨다. '어디 갈 거야?'라고 묻지 않고, '어디 가자!'라는 식으로 앞장을 섰다. 그는 에게해의 깊고, 푸른 바다에 다이빙을 하신 당~찬 어르신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모든 것에 자신만만한 청춘이셨다.
게다가, 두 사람의 여인들이 있음에도 재정지출(식사 등 여행경비)까지 담당하셨다. 영수증을 챙기고, 꼼꼼하게 여행 가계부를 관리하셨다. 이런 식으로 어르신은 매일 저녁이면 여행 일지를 쓰셨다. 여행기록을 남기는 식의 일기였다. 거기엔 하루 중 방문한 장소와 한 일들, 먹은 음식들, 나눈 이야기와 느낌들을 기록하셨다.
맛있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와인까지 마셔 기분 좋은 밤이면 어르신은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쏟아내셨다.
그중에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인생 비망록'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 비망록'이란 그의 살아온 삶과 사후에 소망을 적은 노트다. 일종의 자녀들에게 권하는 조언과 바람을 담은 유언 노트 같은 것이다. 그의 말로는 노트의 내용이 변경되기도 한단다. 그 노트는 자녀들이 어느 때고 볼 수 있도록 서재의 어느 한 자리에 꽂혀있다고 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우리들의 삶인데,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었다.
여행 내내 어린 자식처럼 따라다니며 시시덕거리던 우리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이야기가 진지하고, 의미 있게 들려지니 말이다. 나도 여행에서 돌아가면 인생 비망록 노트 하나 정도는 마련해야 될 것 같다.
에게해의 고즈넉한 바람을 느끼는 것도 마지막인 밤이다. 처음 산토리니를 보았을 땐 '뭐, 한번 정도 오는 것으로 좋은 곳?'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이 섬이 너무 좋아졌다. 하루, 이틀 지나고 여행이 끝날 무렵에서야 느끼게 된 사실이다.
산토리니는 보기엔 럭셔리하고, 화려할 것처럼 보인다. 사실, 산토리니는 소박한 시골 섬이다. 곳곳에 처량한 개와 큰 눈망울을 한 주인 없는 고양이들, 허름한 시골 가게와 버스 정류장, 수더분한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웬지 고독한 듯, 낭만이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하루키 작가가 그리스 곳곳의 섬들을 수 차례 방문하고, 장기간 체류하면서 글을 쓴 것도 어쩜,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이 섬에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