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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May 04. 2023

부부의 기싸움

부부의 다름은 무승부

아버지와 엄마는 늘 한 가지를 놓고 티격태격했다.


'치약 짜는 법이다'


한 깔끔 뜨시는 엄마는 치약 짜는 것도 그런 식이였다. 그녀는 항상 맨 아래서부터 매끈하게 짜 올리고, 아버지는 손가락이 가는 대로 제일 위쪽이나 중간에서 푹~찌르듯 짜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사용한 치약은 튜브 모양이 두 동강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꼭~한 마디를 한다. 어제와 똑같은 짜증이 묻힌 말이다.


"당신! 제발~ 치약 좀 아래서부터 짜요~"


매번 같은 소리고, 싫은 소리다 보니 어쩌다 아버지 면전 앞에서다. 대부분은 뒤에서 구시렁거린다. 하지만 딸 셋은 코앞에서 들어야 하는 명확한 잔소리였다.

 

그런들 아버지가 모르시겠는가? 게다가 사나이라면 그런 돈 한 푼 안 되는 설교(잔소리)를 듣고 싶어 하겠는가?^ 물론, 아버지도 사나이다. 그것도 한 성깔 하는 경상도 사나이다. 질색팔색이시다. 듣기 싫어 죽을 지경인 표정과 몸짓을 한다. 보통 때는 '아이고 너네 엄마 또 시작이네~'하고 어디로 숨어버린다. 또는 티브 볼륨을 크게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좋지 않은 타이밍일 경우다. 무섭게 역정을 낼 때가 있다. 어쩜, 밥상 앞이었다면 상을 엎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도 아버지 앞에는 치약만 있는 정도였으니까. 까짓것, 집어던져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물건이다.


그런 사태가 일어나면(아버지의 성냄) 딸 셋 중에 큰 언니가 앞에 나선다. 화를 내는 아버지께 항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엄마에게 따지기 위해서다!.


" 아니~ 엄마는 양치질만 하면 됐지, 무슨 치약을 위~아래로 짜는 것으로 매번 난리야~"


큰 언니라고 제법 야무진 소리를 한다. 그러면 둘째 언니와 막내인 나는 "맞아~엄마!" 왕언니의 말이 백번 옳다는 식이다.


세 딸들이 볼 때, 엄마가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이다. 그것도 '치약 짜는 방식'을 놓고. 당장, 엄마는 서운했을 것 같다. 아버지의 편을 드는 맹랑한 딸 세 년들의 반항(?)에. 사실, 딸 셋의 반항이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엄마 아버지의 치약 싸움은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고도 끈질 게도 이어갔다. 끝나질 않을 기싸움에 결국,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치약'을 쓰게 됐다.


세 딸들이 고민하고 얻은 엄마와의 합의였다. 나름, 괜찮은 해결책이었다. 그때는 아버지, 엄마가 혈기가 왕성할 40-50대였다. 부부의 삶 중에서  가장 치열(?) 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일단은 잠잠해졌다. 엄마는 아버지의 치약튜브를 슬금 보면서 인상을 지었을 수도 있다. ^


세월이 흘러 엄마 아버지도 노인이 되었다. 가끔, 부모님 집에 들렀을 때다. 치약이 두 개였던 것은 보지 못했다. 다시 하나의 치약이었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치약을 다루고 있었다. 아무튼 엄마, 아버지의 기싸움은 무승부다.



우리 집 부부는 어떤가? 희한하다. 엄마에게 그토록 지독한 치약 짜는 일에 난, 딱 아버지를 닮았다. 아무 데나 마음이, 손가락이 움직이는 데로 푸~욱 짠다. 남편은 그대로 엄마 스타일이다. 아래서부터 쫘~악 훑어서 치약 튜브를 매끈하게 만든다.  


다행인 것은, 남편은 그것이(나의 치약 짜는 방식) 눈에 그슬리는 것 같지 않다. 한 번도 문제를 삼았거나 잔소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님, 쩨쩨하게 그런 걸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사실, 목적은 양치질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치약을 짜든. 상관없는 것에 마음이 일치한 것으로 믿고 싶다.^


게다가 남편과 나는 치우고, 버리는 일은 기가 막히게 잘 맞다. 하지만.. 만사가 이렇게 척~척 맞으면 좋겠지만 모든 것이 좋을 리는 없다.


결혼하고 보니 웬걸,  나도 엄마처럼 남편이 하는 한 가지가 성가신 게 있었다. 화장실에 걸려있는 수건이다. 그는 수건을 사용한 후  확~던져놓듯이 걸레처럼 걸쳐놓는다. 내 생각엔 사용한 수건은 반듯하게  걸어둬야 한다. 그게 항상 눈에 거슬렸다.


나도 궁시렁~ 잔소리를 몇 번 했다. '제발~수건 좀 바로 걸어 둬!'라고. 남편도 그 옛날 아버지처럼 질색팔색이다. 그때서야 퍼뜩 알아차렸다. 남자는 경상도 출신이든, 뭐든 잔소리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고, 이건 승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급기야는  '어? 뭐야! 나도 엄마처럼 무모한 기싸움을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소리 몇 번에 일찌감치 무승부에 도장을 찍었다.


매번 되풀이되는 그의 수건걸이 뒤치닥을 한다. 게다가, 아무렇게나 널 부러져 있는 이부자리며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전용 화장실까지 청소를 하고 있다. 잘하기로 약속한 일인데 잘 안 되는 것 들이다. 내가 하는 것이 마음에 드니, 아예 도맡아서 하고 있다.


둘 다 맞벌이다. 나는 쉬는 주말에도 시어머니의 가사 도우미로 몇 시간씩 일을 한다.(내가 자처한 일이지만) 남편도 주말에 일을 한다. 대신 그는 주중에 쉰다. 아무튼 바쁘다. 그의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니. 뭔가, 그 일에 대한 위안거리가 필요했다. ^


그래서 평일에 쉬는 그에게 나의 일거리(?)를 좀 부탁했다. 평소에 집안의 소소한 일들을 하는 남편이지만 이건 순전히 나의 잔심부름이다.


장보기, 세탁물 픽업, 월마트에서 내가 필요한 것 사 오기, 은행 들르기, 차 오일체인지 등등.. 각종 다양한 일들이다. 이런 일들이라면 그가 잘하는 것들이다. 군소리가 있을 수가 없다. 


뭐 이런 식으로, 그의 뒷일들에 대한 짜증을 위안 삼는다. 한결 마음이 가볍다. 어차피 안 되는 기싸움, 미리 다른 방도(?)를 찾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부부의 기싸움은 엄마. 아버지처럼 무승부로 끝날게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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