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사회에서 친구를 만든다는 것
최근에 들어 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자주 한다.
이들은 지지고 볶고 하던 여고시절 때의 친구와 대학교 동창들과 후배 동생이다.
새삼 그들의 자리가 이전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이제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그들과 나누는 수다는 무척 재미있다.
태평양을 건너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함께 넋두리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가끔
" 미국에 살면서 친구들은 어떻게 사귀니? 그리고 친구는 많아?" 하며 미국 생활에서
나의 친구 사귀는 일에 대해 궁금해할 때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포사회(나를 포함한 이민 1세에 기준)의 소셜 라이프(Social Life-사교모임)는
직장에서보다 대부분 거의 "교회"(또는 다른 종교모임)를 통해 이루어진다.
주로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직장"을 통해서 "친구"를 만나는 게 일반이다.
이민자들의 대다수가 처음 미국 땅에 발을 딛게 되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신앙생활의 터전이지만 이민사회에서는 "이민자들을 위한
하나의 작은 지역사회의 모임"이기도 한 곳이다.
또한 각종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심지어 사람들을
만나려면 "교회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왜냐면 이민사회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인간관계의 틀이란 한계가 있다.
그 사회는 극소수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그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교포들의 직업은 직장인이거나 개인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사실 일터에서 매일 일로 만나는 사람은 몇 사람에서부터 몇십 명 정도의 선이다.
이렇듯 거대한 미국의 한 도시에 살고 있는 교포들로서는 다양하고도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기엔 굉장히 좁고도 작은 한인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매일 눈 뜨면 직장으로 나가고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향하는 생활이 마치
시계초처럼 정확히 반복된다. 그저 바쁘고 피곤한 일상들이다.
심지어 부부끼리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가령, 세탁소 등) 한인들은 그야말로 일주일 내내
두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며 일해야 한다. 한국사람을 만나는 일도 거의 드물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 신앙생활도 할 겸 교회로 나가 사람들과 교제를 하는 게
사실, 이민사회에서 교포들에겐 참으로 소중한 즐거움이다.
또한 이민생활의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한 교회에서 맺은 친구들은 대개가 가족끼리 서로 친분을 유지한다.
이들은 이민생활에서의 힘겨움을 서로 격려하면서 이웃사촌보다 더 가까운
우정의 탑을 쌓아가면서 삶을 나눈다.
이렇게 한 교회에서 가족 위주로 형성된 "친구 그룹들은 "혹 그중에 한 가족이
다른 곳으로 교회를 옮기게 될 경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함께 떠나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만큼 힘겹게 쌓아 올린 친구의 정을 견고히 지켜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이민생활에서 다시 누군가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 맺기란 그다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나와 남편) 또한 이민자로 살면서 "교회"는 주일 예배를 드리는 곳인 동시에
유일하게 "친구 맺기"를 하는 곳이다.
이해관계가 더 중요시되는 직장에서 보다 교회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더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회에서는 또래끼리 또는 환경이나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친구 그룹을 만든다.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맺은 친구들은 딱히 또래의 나이는 아니지만,
싱글맘과, 싱글 남. 녀 (소위 노총각, 처녀)들이 우리의 친구 그룹이다.
친구 그룹이란 게 (거창하게 쾌 많은 멤버들이 아니다) 손꼽아서 몇 명 정도다..
난 성격적으로 선뜻 먼저 다가가 이 사람 저 사람 등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사람과 친해지는데도 다소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다행히도, 나와는 달리 붙임성이 많고 별 어려움 없이 사람들에게 잘 다가서는
남편 덕에 친구 만드는 일이 좀 수월하다.
그래서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 그룹들은 "한 교회-오래머물기 주의"를 지향하는 듯싶다.
이런 친구 그룹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 한 교회를 섬기면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
싶은 일종의 소박한 소망들을 품고 있기에.
물론 늘 친구 맺기가 매끄럽게 이어갔으면 좋으련만 그러한 과정에는
항상 예기치 않은 일도 일어난다.
서로 취향이나 꿍짝이 잘 맞아 마음에 드는 친구가 되었더라도 끝까지 인연으로
남지 못할 때가 있다. 그중에 혹 한가족이라도 다른 주(State)로 이사를 간다든가
또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든지 해서 아예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경우에도 그렇게 해서 잃은 친구들이 지금까지 꽤 많이 있다.
미국에서 교포들의 친구 맺기란,
마치 밀물과 썰물같다.
어디선가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만남"과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이별처럼
"잃어버리는 인연"의 연속같다.
올해 들어서, 우리도 친구 맺기에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남편 가족이 이민 초창기에 다녔던 교회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이다.
친구 따라 교회를 옮긴 것은 아니고.. 그동안 다녔던 교회 친구 그룹이 함께 간 것도 아니다.
"한 교회 오래 머물자 주의"를 어쩔 수 없이 깨버렸다.
사실, 우리가 친정 교회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그곳에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당시에 함께 했던 분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마치 한동안 떨어져 있었던 가족을 만나듯 우리는 서로 "반가워!” 하면서 얼싸안았다.
그저 친정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기분이 들면서 마음속 깊은 곳까지
차 오르는 따스한 온기.
그것이 미국 생활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친구가 필요한 이유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인교포들은 사실 많이 외롭다.
그래서 더욱 정감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의 친구들이 그립다.
완전한 미국인으로 살기엔 언어적. 문화적인 차이가 있고 매일의 삶이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살기보단 "자녀들을 위해" 미국 땅에서 정말 몸 바쳐
헌신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본다.
친구들을 만들 시간적 여유도, 그들과 한가하게 차 마실 시간도 많지 않다.
이들이,
주일날 예배후 가지는 한 가지 행복이란,
한 주간, 노동의 힘겨움을 내려놓고 마음껏 너스레를 떨기도 하면서,
서로 마주 보며 짓는 부담 없는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친구들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