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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Jan 19. 2024

미국 촌뜨기냐, 멋쟁이냐

미국에 살면서 좋은 것 하나는 '내 멋에 사는 것'이다.


여기서 내 멋'이란 세련된 옷차림이나 명품 브랜드에 개의치 않고 자기 멋대로, 개성대로 산다는 뜻이다.

모두가 유행을 따르지도 않는다. 패션 잡지를 들쳐 보기 전에는 '트렌드'가 무엇인지 알기도 힘들다.


하지만 눈여겨보면 '유행'이 있다. 한때는 (아마, 지금도) 십 대들 사이에는 컨버스 신발을 신는 것이 트렌드였고, 끝이  좁은 바지며, 레깅스에 나이키양말을 신고, 구멍이 난 슬리퍼를 신는다든지, 스니커에 허리가 꼭 끼는 폭넓은 청바지나 앵클까지 오는 블루진을 입는 것 등이다. 남성들은 정장에, 여성들은 스커트에 편안한 스니커를 신는 것들이다.


트렌드 열풍은 있지만, 너도 나도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 '음, 요즘 저게 트렌드야?' 하지만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좋으면 걸치고, 아니면 그냥 '내 멋에 살 뿐이야'라는 것도 미국 사람들의 트렌드다. 이래서 미국살이에서 유행을 따르는 건 옵션이다.


편안한 티에 청바지를 입는 것처럼 실용적인 패션을 선호한다. 정확히 말하면, 일상과 특별한 날의 패션은 상당히 다르다. 이를테면, 평일(일할 때나 가벼운 외출 등)에는 편한 차림인 운동화에 청바지나 홈패션 (운동복에 후드티)을 입는다. 모임과 파티나 행사 때는 한껏 차려입는다. 평소때와 달리 ‘특별한 멋'을 연출한다. 유행에 맞추는 멋이라기보다  '나.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자신을 드러내는 멋'이다.


특이한 건, 후줄근한 차림에도 유행을 볼 수 있고, 근사하게 차려입었지만 유행하는 브랜드나 명품백은 들지 않기도 한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누구 신경 쓸 것도 없이 '내 멋에 사는 것'이 패션이다. 유행은 유행이고 나'는 나', 이런 식의 흐름이 전반적이다.   



나는 유행을 따르지 않지만 패션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옷 욕심이 많았다. 사춘기 때는 내가 원하는 예쁜 옷을 손에 넣기까지는 엄마에게 마구마구 떼를 썼던 아이였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도 (예쁜 옷을 좋아하는 것) 엄마를 닮지 않았나 싶다. 엄마는 나름 옷을 잘 걸치는 멋쟁이였다. 적어도 어린 나의 눈에는 엄마는 센스쟁이, 세련쟁이였다.


 엄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나도 한껏 내 멋에 살았다. 중요한 건, 돈을 들이지 않고,  내 폼에 걸맞게 뭐든지 입고, 들고 다녔다. 심지어는 대학생 때는 아버지의 옷들을 걸치고 다녔다.


그것도 순전히 교회의 한 미대생 언니를 보고 패션 영감(?)을 받았다. 어느 날, 그녀는 큼지막한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나타났다. 오빠 옷이라고 했다. 빈티지한 낡은 코트였는데 너무 멋스러웠다!  


나의 옷스타일에 대한 미래는 아마 그때부터 시작되었지 싶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의 옷장을 샅샅이 뒤졌다. 운 좋게, 옷장 구석에서 오랫동안 입지 않은 듯 한 옷 두 벌을 찾아냈다. 회색 재킷 하나와 트렌치코트였다. 조금 컸지만 뭐, 그럴싸~하게 잘 어울렸다. 굳이 갖다 붙이면 그 옷들은 '빈티지 그 자체'였지만 후줄근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런 패션이었다.^


그런 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 좋으면 입는 거지!' 했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남자 옷(아버지의 것)을 입고 다녔다. 아무도 내가 걸친 옷을 보고  '그거, 남자 옷이지?'라고 묻지 않았다. ^ 지금 생각하면..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 같다. 어떤 친구는 야무지게 '너, 이거 남자 옷 아냐?"라고 캐묻기도 했다.^


아무튼, 난 너절한 옷 두 벌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애정 있게 입고 다녔다. 어째, 아버지는 그 옷들의 행방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본 적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이런 내 멋에 살던 내가 오래전, 미국에 왔을 때다. 그때 느낀 것은 '패션 충격' 이였다.^  아무렇게 걸친 아가씨와 여인들은 도무지 세련미가 없었다. 예쁜 그녀들의 외모와 옷차림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미국이 이렇게 촌스런 나라였단 말이야? 하며 실망감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 좀 살다 보니 어지간히 미국의 패션에 익숙해졌다. 내가 보기에 좀 촌스런 것은 지극히 미국적인 것이고, 내추럴한 멋이 아닌가 싶다.


패션니스타와 촌뜨기, 빈티지와 힙합 스타일 등등 다양한 멋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 미국이다. 유행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지 않아도, 명품을 들지 않아도 그들만의 '멋'이 있는 건 분명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사람들이다. 신발이나 핸드백, 액세서리까지 훌륭하게 매치하는 멋쟁이들이다.  


나는 그런 류의 사람들을 '내 멋에 치중하는 멋쟁이'들이라고 부른다. 30불짜리 백도 명품처럼 멋지게 들고 다닌다. 나도 그렇다. 헐렁한 티셔츠에 펑퍼짐한 블루진도 내 멋에 입는다. 유행은 촌스런 옷차림에도 슬그머니 포개져있고, 세련쟁이에게도 유행은 볼 수 없는 때가 있다.


이래서 미국이 편하다.

'내 멋에 사니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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