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가 어때서?

마이 오울드 카

by Blue Moon

“지나! 똥차 그만 타지 , 차 바꿀 때 훨씬 지났잖아?!”


같은 부서의 선배 언니가 그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불쑥 던졌다. 다른 부서의 모 여사님께서 BMW SUV를 구입했다고 시끌 벅적 주차장으로 뛰어나갔다.


한바탕 차 구경을 하고 들어오더니 자기 차를 산 것처럼 흥분하여 난리 친 날이 생각난다. 내 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나도 반격을 했다.


“무슨 소리예요?, 똥차라뇨? 10년은 더 거뜬히 탈 수 있는데요!”


이 소리는 억지가 아니다. 지난해 봄까지 하얀색의 도요다 프리우스(Toyota- Prius)를 11년째 타고 다녔다. 대개 이쯤이면 사람들은 거의 똥차 취급을 한다. 단골 오토샵의 사장님 말로는 곧 소모될 배터리만 바꾸면 앞으로 거뜬히 10년은 더 탈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에 횡재한 듯이 기분이 좋았다.


차에 관한 한 상당한 전문가라 그의 말은 꽤 신뢰할만했다. 미국 내 권위 있는 소비자를 위한 매거진인 컨슈머 리포터 (Consumer Report)에서도 입증이 된 바 있다. 수명이 20년 이상이나 되는 자동차 중에 도요다 프리우스도 단연코 장수 자동차에 포함되어 있었다.


남편은 그래도 잔 고장에 대한 우려로 굳이 새 차를 사야 된다고 우겼다. 사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벌써 새 차를 샀어야 했다. 차를 바꿀 때가 되면(보통, 한 사람의 차 페이먼트가 끝나면 새 차를 산다) 그가 알아서 새 차를 사 온다. 내 차를 산다고 여기저기 다니며 차 쇼핑이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다.


정기적인 관리에서부터 차 담당은 무조건 남편이고, 그는 무척 이 일을 즐긴다. 그에게 차는 보물 1호 같은 물건과도 같다. 정기적인 차 관리는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마치 아이가 아픈 듯 애석해하고 곧장 오토샵으로 모셔간다. 만사를 제쳐놓고.


반면에 나는 차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한마디로 차에 대해서 너무 무식하다는 말을 대놓고 듣는다. 언뜻 차 모양만 보아서는 도대체 무슨 차인지 금방 알아채지 못한다.


소위 Benz나 BMW 같은 명품차의 마크를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때만, "아~ 바로 그 차야?" 하는 정도다. 자랑하듯 내 앞으로 번듯하게 주차를 해도 명품차인지 금방 알아채지도 못한다.


누군가 내 앞에서 명품차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한다면 아마 하품이나 할 정도로 나에겐 이러한 이슈가 솔직히 재미없는 일이다. 미안하지만 도대체 명품차가 나에게 무슨 상관이람? 이런 식이다. 억지 같은 소리라 할지 모르지만 브랜드마다 성능만 다를 뿐 나에겐 차는 모두 같아 보인다. 회사 파킹장에 즐비하게 늘어선 차들의 주인이 대충 누구고, 명품차를 누가 타고 다니는 지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


신기한 게도 다른 직원들은 누가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지 잘도 안다. 특히 한국 직원들은 차에 대해 무지 박식하다. 그 수준을 절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무슨 추리소설 탐정처럼 다른 사람들의 차에 대한 정보도 아주 상세히 가지고 있다. 음, 상무님은 검은색 Lexus의 SUV, 인사과에 해나 씨는 하얀색의 BMW , 게다가 무슨 레벨인지, 차 기능이 어떤지, 이런 식으로.


차에 대한 무관심만큼 운전 솜씨도 형편없다. 차 하고는 인연이랄까, 왠지 잘 맞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근 20년이 넘게 운전을 해오고 있는데도 구글맵을 보고서도 좀 낯선 길이다 싶으면 가끔 길을 잃고 헤맨다. 기본적으로 길치에다 수시로 우회전을 잘못해서 블록을 인정사정없이 치고 돈다.


이것으로 플랫 타이어(flat tire-타이어 펑크)가 되는 일도 아주 흔하다. 매번 “꽝" 하는 소리에 내가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뒤에 오는 차들이 "저런~ 무슨 회전을 저렇게 무식하게 하지?" 하며 비웃을 정도다. 운전하는 솜씨가 기가 막히게 어눌할 때가 많다. "음, 제대로 굴러가기만 하면 돼" 늘 이렇게 무덤덤히 넘어간다.


아무튼 이번에는 남편이 새 차를 덜렁 사 오게 하지 않았다. 새 차로 바꾸기엔 도무지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겉과 안의 상태가 여전히 훌륭했다. 차 관리를 너무 잘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10년이 넘어섰는데도 미끄럼틀에서 쑤~욱 하고 거침없이 내려오듯 너무 잘 나간다.


나의 프리우스는 "당신이 여전히 나의 주인이요~"하며 내 앞에서 새 차처럼 반짝거렸다. 떨어질 수 없는 내 삶의 단짝이 되어있었다. 난 이래저래 오래된 프리우스가 좋았다. 후에 배터리를 바꾸고 탈 수 있는 데까지 타야겠다고 밀어붙였다. 멀쩡한 차를 바꿀 이유가 없었다. 나에게는 똥차가 아니라 멋진 오울드 카였다!


차의 상태도 양호했지만 사실, 오래된 프리우스를 계속 타고 싶어 했던 이유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가정이 집과 자동차 페이먼트 부담액을 거의 평생 동안 가지고 산다.(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평생에 몇 번을 갈아치워야만 하는 차는 가족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출금의 부담은 커진다. 대개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도 한 사람의 월부금이 끝나면 새 차를 구입했다. 이런 일의 반복으로 월부금을 항상 떠안고 살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최선이다. 더 이상 월부금이 싫었다.


우리는 (남편과 나) 보통 월급쟁이고, 미국 생활에서 차는 나에게 단순히 교통수단일 뿐이다. 나는 뭐든지 "내 수준대로" 스타일이다. 매달 월부금이 없어지면 저축을 좀 더 할 수 있다. 여행을 더 많이 즐길 수 있고, 취미생활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식사 한 끼에도 내가 좀 더 지갑을 열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되지 않겠는가.


현실에 맞게 살고, 욕심부리지 않기는 미국에서 살면서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나의 생활철학이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누릴 수 있는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집과 자동차의 부피는 작게 , 대신 생활은 여유 있게 살자는 주의다.


이런 실용주의는 미국인들의 삶 속에서도 많이 엿볼 수 있다. 내가 보는 미국 서민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대개가 자기 형편에 맞는 생활을 하고 무난한 차들을 굴리며 살아간다. 큰집과 비싼 차를 소유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휴가를 멋지게 즐기고 주말을 좀 더 근사하게 보내려는 실속파들도 많다.


이웃집 은퇴한 할머니도 "내 나이가 몇인데?" 하고 은퇴연금으로 살만한 비싼 차를 굳이 고집하지 않는다. 회사 사장님도 명품차가 아닌 평범한 미국차를 타고 다닌다. 나의 20년 단골 치과 닥터도 고작해야 중류급인 혼다(Honda)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정도다.


간혹 부유촌 빌리지로 운전을 하고 지나갈 때가 있다. 세워진 차들을 자세히 보면 의외로 중급 정도의 차가 많다. 오래전 은행에서 일하던 때였다. 돈 많은 미국인 은퇴 노인 고객들 중에 항상 낡은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적쟎이 놀란적이 있었다.


무엇이 유행이든, 누가 무엇을 번쩍거리고 타고 다니든 상관없다. 이것이 자기 방식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 서민들의 고집 같은 자부심 (Pride)이 아닐까 싶다.


차 문화도 나라마다 다른 것 같다. 속된 말로 알부자인 미국인들이라고 해서 자동차가 반드시 명품은 아니다. 이들은 그저 자기 철학대로, 남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산다.


이민사회에서 일부 한인들의 명품차 사랑은 유별나다. 특히 한국에서 갓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자기 형편에 상관없이 명품차를 사들이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가정경제가 당장 휘청거리는데 타는 차만은 근사한 것으로, 미국인데 이 정도는 타고 다녀야지 하며 기분 낸다. 내 돈 가지고 비싼 차 타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교회에서도 웬만큼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중. 장년들을 보면, 무조건 차는 점점 더 무거운 것으로 (비싼 차) 타야 한다고! 하면서 모두들 경쟁하듯이 중후한(?) 차를 타고 다닌다. 아무렴, 나이가 있는데 이 정도는 타야지 한다.


차에 관한 한, 미국 토박이처럼 오랜 세월을 미국에서 살아온 한인들(1.5세들:영어와 한국어가 유창한 한인들)은 오히려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산다. 이들은 직업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한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여행을 즐기고, 가족들과의 멋진 오락을 가지는 일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 나이가 들어도 오래된 똥차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몰고 다닌다. 누가 명품차를 타든, 무엇이 유행이든 상관없이 자기만의 방식대로 산다.


나 또한 경제적인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서 프리우스와 확실한 똥차 대열에 서기로 진작부터 작정했다. 탈 수 있는 한 향후 10년을 더 버틸 거라고 자신하면서.


이상하게 정작 마음을 먹고 나선 일은 보란 듯이 어긋날 때가 있다. 똥차 대열에 끼는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프리우스를 배신한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내 곁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함께 살고 있는 조카, 레베카에게 뜻하지 않은 차 사고가 일어났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마련한 첫 자동차였다. 타고 다닌 지 9개월 만에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갑자기 앞차가 간격도 두지 않고 끼어들어 사고가 발생했다. 상대방 과실이었다. 에어백이 사방에서 터져 기적적으로 몸은 한 곳도 상하지 않았다. 앞쪽으로 범프가 완전히 박살 났고 차는 고칠 수 없는(total loss) 지경이 되었다.


내 생일을 함께 보내고 직장이 있는 샴페인 시티로 돌아가던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 차를 잃고 동시에 사고로 충격을 다스리고 있는 그녀에게 당장 필요한 건 역시 자동차였다. 다시 새 차는 사지 않기로 했다.


단번에 결심했다. 나의 프리우스를 그녀에게 고스란히 도네이션 하기로. 10년 지기 오랜 친구 같은 오울드 카를. 똥차지만(사람들이 말하는) 고장이라고는 한 번도 없었던 나에겐 명품카를 흔쾌히 넘겨주었다.


똥차를 타는 대신 월부금을 아껴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했다. 그 여유를 내가 누리는 대신 레베카에게 선사했다. 무슨 낡아빠진 차를 주면서 큰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누가 뭐라든 나에겐 훌륭한 차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의 오울드 카를 타고 다니는 동안 월부금이 저축되듯 마음의 여유를 더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몇 개월 동안은 야간 근무를 하는 남편의 차를 교대로 타고 다니다가 결국 새 차를 샀다. 이번에도 같은 도요다-프리우스다.(붉은색의) 새 차라 기능이 많이 달라졌다. 몇 개월을 타고 다니는데도 여전히 낯선 친구처럼 어색하다. 마치 맞선을 보고 서로 잘 맞는지 이것저것 재고 있는 것처럼.


나와 함께 편안한 벗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낡아져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삶의 추억들이 쌓이면서. 그렇게 나도 나이 들어갈 것이다. 20년은 거뜬히 이 친구와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이 든 여사와 늙은 똥차,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카메라 매고 여유 있게 여행하는 할머니로 살려면 새 차 역시 똥차가 될 때까지 밀어붙여야겠다. 지금부터라도 애인처럼 눈여겨보고 잘 다독거려주어야 할 것 같다.


명품이 별건가? 오래된 친구, 물건이면 모두 명품이다. 그만큼 깊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내 식의 해석이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똥차란 기능면에서 좀 떨어지긴 해도, 오래된 것으로 따지자면 명품차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도 내 철학대로 산다.


그러니, 똥차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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