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강아지, 달봉이
달봉이는 나와 같이 사는 강아지다. 사람을 무척 좋아해서 산책을 나가면,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을 꼭 아는 체를 한다. 나무 밑둥 냄새를 맡고, 찔끔 오줌을 갈기고 잘 가다가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가가 ‘나 좀 봐요.’한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반기며 예뻐하지만,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기겁을 하니, 나로서도 산책 줄을 꼭 잡고 상대방의 반응을 자세히 살펴야한다.
게다가 집에 손님이 오는 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추석 연휴에는 하루 종일 나하고만 집에 있어서 지루했는가보다. 문 밖에서 무슨 소리만 나면, ‘밖에 누가 왔는데 왜 문을 안 열어보냐.’는 듯이 깨갱 깨갱 울어가며 현관을 왔다 갔다 했다. 성화에 못 이겨 문을 열어 보여주면 머쓱하게 들어와서는 작은 소리로 깽깽거리던 녀석. 문 밖에서 소리를 내면, 수상한 사람이라 여겨 짖지만, 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곧 몇 년 전에 만났다 헤어진 가족처럼 반긴다. 집에 처음 놀러 온 사람은 그런 달봉이를 보고 놀라워한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냐고. 나도 모르겠다. 얘는 왜 이럴까.
달봉이는 2016년 8월에 태어나서 아마 두 달이 지났을 즈음 강아지를 사고 파는 가게에 왔다. 정확하게 언제 우리 집에 데려왔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8월 초에 태어났다는 건 기억한다. 데려오면서 가져 온 서류에 8월 8일이 생일이고, 값은 50만원을 치렀고, 파보 같은 병이면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지만, 반려인의 잘못으로 교환, 환불을 요구하면 해주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동물을 사고 파는 것을 반대하고, 전에 기르던 강아지를 5월에 보내고 다시는 기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동생의 간절함에 졌다. 전에 기르던 강아지는 말티즈로 이름은 ‘자갈’이었다. 무려 11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보내고 숨을 거두었다. 펫로스 증후군. 영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가족처럼 11년을 같이 살았던 강아지가 죽었는데, 마음을 금세 다잡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다시는 키우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산책을 하다가 강아지와 반려인이 함께 걷는 걸 보면 그대로 눈물이 펑펑 흘렀다. 환한 낮이라 우는 걸 들키기 싫어서 고개를 들고 걸으며 울었다. 집에 들어가려 엘리베이터를 타면, 목 둘레에 둥그렇게 눈물 자국이 남아 있곤 했다. 목걸이처럼.
첫 만남을 기억한다. 동생이 다니는 은행에서 가까운 가게 유리 진열대에 갈색 푸들이 있다고, 한 번만 보러가자고 했다. 가면 뭐해, 데리고 오겠지. 안 간다고 버텼다. ‘우리 둘 다 하루 종일 나가서 일한다, 강아지를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두는 건 학대다, 나는 싫다.’했지만, 간곡한 부탁에 결국 보러갔다. 보러 간 것은, 데려오겠다는 마음이었다. 꼬리를 자른-푸들은 본디 꼬리가 길다. 귀여워 보이려고 아기 강아지 때 꼬리를 잘라버린다-갈색 푸들이 뽈뽈뽈 돌아다녔다. 작은 유리 상자 안에서. 그 길로 데려왔다. 가게에서는 태어난 지 석 달이 지났다고 했지만, 내 손바닥 위에 달랑 올라올 정도로 작은 아이가 석 달일 리가 없었다. 두 달이 채 지났을까? 그렇게 작은 강아지를 사고 파는 사람들이 싫었다. 다시 정을 주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달봉이를 데려와서 석 달은 마음을 주지 않았다. 무심하려고 애썼다. 입으로는 ‘귀엽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갈이를 잊지 못했다.
달봉이는 자갈이와는 성격이 너무나 달랐다. 자갈이는 몸무게가 2.5킬로그램을 넘지 않았다. 마지막에 노환으로 살이 찌면서 겨우 2.7킬로그램이었다. 달봉이는 손바닥에 올라올 정도로 작던 녀석이 석 달이 채 되기 전에 몸이 길쭉해지면서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이제는 7.5킬로그램이 넘는다. 자갈이는 팔베개 하고 자는 걸 좋아했다. 워낙 작은 녀석이라 겨드랑이에 고개를 폭 파묻고 잤다. 만지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빗질이나 눈꼽 떼기 같은 돌봄은 그럭저럭 참아주는 녀석이었다. 달봉이는 아니다. 발을 만지면 불같이 화를 낸다. 안고 자는 건 꿈과 같은 일이다. 도통 안겨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옆에 와서 끊임없이 자기를 만지라고 한다. 공을 던지라고 한다. 간식을 달라고 한다. 진짜 이상한 녀석이다.
‘언젠가는 이 녀석도 죽는다. 나보다 빨리 죽겠지.’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처음부터 정을 주지 않으면 마음이 덜 아플 거라는 속셈이었다. 게다가 동생이 결혼하면서 달봉이를 데려갔다. 동생이 조카를 낳기까지 몇 달 동안은, 현관 문을 열면 텅 빈 것 같은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그때 또 한 번, 달봉이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걸 되새기게되었다. 그러나, 조카가 태어나고 잠시만 맡아달라던 달봉이는 영영 나랑 같이 지내게 되었다. 워낙 처음부터 동생과 나랑 같이 살던 강아지라 동생이 없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나도 혼자보다는 달봉이가 함께하는 생활이 좋았다. 퇴근하자마자 산책을 나간다.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달봉이를 끌어당기며 아파트 둘레를 크게 한 바퀴 걷는다. 돌아와서 집에 머무를 때도 있지만, 몇 년 전까지는 거의 다시 밖으로 나와서 이런 저런 일에 바빴다. 몇년 전 너무 바쁠때에는 산책도 잘 못 해주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가다보니, 달봉이가 침대 밑에 들어가서 안 나오기도 했다. 워낙 똑똑한 견종이라, 우울증도 쉽게 앓는다고 들었다. 1년 만에 바깥일을 그만두었다. 내 개가 아픈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싶었다. 잘 때는 절대로 안기지 않는다. 발 밑에 웅크리고 자다가 곧 이불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기세로 침대 매트리스를 긁는다. 야생에서 잘 때, 흙을 파고 그 속에 몸을 숨기고 자는 습성이 남아 있어서라는데, 격하게 땅을 파는 모습은 언제나 웃음이 난다. 나는 모로 누워서 자는 편인데, 땅을 열심히 파던 달봉이가 슬그머니 등 뒤에 달라붙어서 잔다. 어느날은 자고 일어나면, 베개를 달봉이가 다 차지하고, 나는 구석에 박혀 있기 일쑤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드렁드렁 코를 고는 날도 많아졌다. 등에 와 닿는 녀석의 뜨끈한 등. (개는 사람보다 체온이 높다.) 등과 등이 연결된 밤. 그렇게 어느덧 9년이 흘렀다.
가슴에 혹이 툭 튀어나왔다. 병원에 물어보니 지방 덩어리란다. 그러려니 했다. 세 살 무렵부터 간질 발작을 해서, 약도 먹여보고 했지만,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병이라고 여겨서 그만 두었다. 지금도 종종 발작을 하긴 하는데, 그럴 때마다 꼭 다리를 비틀거리며 내 곁으로 와야 안심을 한다. 아직까지는 오줌을 지리거나, 내 손을 물지는 않지만, 발작이 심해지면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단다. 가슴 혹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어느날 옆구리를 만져보니 느낌이 이상하다. 그동안은 원래 그런 몸이라고 여겼는데, 주물주물 만지는데 덩어리가 진 느낌이었다. 병원에 데려가 주사기로 세포를 떼어내 슬라이드로 만들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암인 것 같다고 한다. 지방종은 아니고, 백혈구가 하나도 안 보인다고, 이런 경우는 암이라고 해서 바로 제거 수술을 하기로 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하루라도 빨리 해야 겠다 생각해서 9월 24일 수요일 아침에 하기로 했다.
23일 화요일 밤. 나이 들면서 부쩍 애교가 늘어난 달봉이가, 누워 있는 내 오른쪽 팔 사이로 엉덩이를 쑥 들이밀고, 등을 만지란다. 두 손으로 등도 쓸어주고, 얼굴 밑도 만져주었다. 담담하려고 했는데, 당장 내일이 수술이라니 눈물이 차올랐다. 수술은 간단하지만, 잘못될 수도 있지. 어쩌면 오늘이 달봉이랑 함께하는 마지막 밤일 수도 있지.
“달봉아. 달봉이 죽으면 이모가 꼬리를 묻어 줄테니 사람으로 태어날래?” 몽골에서는 개가 죽으면,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꼬리를 잘라 묻어준단다. 그런데 사람으로 태어나는게 좋은 건가? 달봉아, 너는 그걸 원하니? 워낙 먹는 걸 좋아하니, 강아지는 못 먹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을 수는 있겠다. 이런 저런 생각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정을 안 주기는 무슨. 그동안 무심하게 대하려고 애썼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
다음날 아침 서둘러 목욕을 시키고-수술하고 나면 한참을 목욕을 못할테니-동물병원에 달봉이를 맡겼다. 출근해서 수업을 하고 오후 1시가 넘어서 달봉이를 데리러 갔다. 수의사가 혹을 보여줬는데, 가슴에 톡 튀어 나온 건 하얀색 지방덩어리였고, 옆구리에 튀어나온 혹은 넓적한 닭가슴살처럼 생겼는데, 수의사 손바닥만했다. 제거는 하지만 이미 몸에 다 퍼졌을테니 언제라도 다시 혹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다음에 다시 생기면 수술은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병원 가는 걸 좋아하진 않았지만, 수술하고 나서는 무서워서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싫어했다. 수술한 다음날 압박붕대를 갈러 병원에 갔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명을 질러서 눈물을 꾹 참았다. 그렇지. 생살을 찢었는데 안 아플 리가. 그렇지만 식탐은 여전해서, 간식을 너무 먹고 싶어하고 밥도 잘 먹었다. 가슴팍에 수술 자국은 하루 만에 아물어서 수의사도 놀랐고, 옆구리도 잘 붙었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아직은 나이가 엄청 많지 않아서 회복이 빨랐나보다.
여전히 사람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하는 달봉이. 너는 알까. 왜 병원에 가서 아프게 했는지. 뭘 했던 건지. 그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좋은 강아지. 그 누군가가 나일 때 가장 행복한 강아지. 수술한 뒤로 식탐이 더 늘어서 사료보다는 간식을 달라고 자꾸만 떼를 쓴다. 마음이 약해져서, 떼를 쓰면 적당히 더 준다. 아침마다 사과를 나누어 먹고, 출근을 하고, 돌아와서 산책부터 간다. 너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어떨지 알 수 없지.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지내자.
그런데, 죽으면 꼬리를 묻어줄까, 달봉아? (2025.10.23)
슬픈 환생
이운진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 본다
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얻었나
거짓말할 때의 표정 같은 거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 같은 거
개였을 때 나는 이것을 원했을까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하다
지평선 아래로 지는 붉은 태양과
그 자리에 떠오르는 은하수
양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잊고
또 고비사막의 밤을 잊고
그 밤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정말 바랐을까
꼬리가 있던 흔적을 더듬으며
모래언덕에 뒹굴고 있을 나의 꼬리를 생각한다
꼬리를 자른 주인의 슬픈 축복으로
나는 적어도 허무를 얻었으나
내 개의 꼬리는 어떡할까 생각한다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이운진, 소월책방(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