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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호에 맞는 Dec 16. 2018

기획자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기획자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많이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과거에는 많이 알고 있는 기획자가 인정을 받았다. 기획을 하려 할 때 어디선가 레퍼런스가 될 서비스나 제품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성공과 실패 사례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여러 경영, 심리학 이론을 많이 알고 있어 그것을 어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많이 알고 있던 사람들의 지식은 인터넷에서 1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더 정확하고 더 간결하게 정돈된 내용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와 관련된 지식들도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대단한 건 이 글을 읽고 있을 정도의 사람들, 여러분들이라면 이미 그런 지식들을 머릿속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대학을 다닌 세대의 지식의 양은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혹자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공부를 덜 해서 지식이 적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고급 지식은 젊은 세대에게는 뻔 한 얘기, 이미 알고 있는 얘기로 치부된다. 그만큼 그동안 접해온 지식의 양에서 차이가 난다. 


접해온 지식의 양이 많은 것 좋았지만 그 결과 치명적인 반작용이 발생했다. 바로 ‘생각하는 습관’이 적어진 것이다. 대학 시절까지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정도의 내용은 다 인터넷에 있었다. 한 번은 경영전략 관련된 수업에서 해당 기업의 전략을 짜오라고 했는데 그와 비슷한 사례들만 인터넷에서 찾아도 리포트 수십 장을 쓰고 남을 정도였다. 결국 리포트는 각종 사례 분석과 가장 밑에 자그마하게 ‘시사점’ 정도만 쓰고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꽤나 많은 다른 경우에도 인터넷에 거의 답이 있었다. 스스로 생각했던 것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나마 스스로 생각해서 만든 기획안들은 창업 관련 공모전들을 할 때였다. 이때 처음으로 그동안 내 뇌가 얼마나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았는지 느꼈다.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외우는 것에는 특화가 잘 되었는데 스스로 생각해서 논리를 만들고 그에 맞는 근거 자료들을 정리하는 훈련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쥐어짜서 머리로 생각한 내용을 글로 옮기려는 데에서 왔다. 문제는 머리가 그 생각들의 구조를 잡고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데에 어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머리에서 나온 기획안은 통과가 되지 않았다. 


그 뒤로 몇 개월 동안 하나의 기획안을 놓고 고민을 했다. 논리의 흐름도 바꿔보고 아예 콘셉트를 바꾸면서 기획서의 분위기를 바꿔보려고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일’을 몇 달을 한 뒤에야 비로소 기획안이 공모전에서 입상하기 시작했다. 찾은 자료의 질이나 내용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바뀐 것은 기획안을 풀어가는 논리들을 잘 풀어낼 수 있고 그에 맞는 근거들을 처음 기획안을 보는 사람들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한 것뿐이었다. 이때 처음 생각을 중요시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Think First, then make


앞서 말한 사례 뒤로 기획안 혹은 어떤 자료를 만들기 전에 무조건 먼저 백지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 분배 따위는 하지 않았다. 생각이 정리되면 자료를 시작하는 것이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자료를 시작하지 않았다. 자료의 경우 막상 데드라인이 보이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설사 자료의 디자인이나 외형에서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생각하는 활동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결국 기획안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를 얼마나 근거 있게 푸는지, 그것으로 읽는 사람, 아마도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여부이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예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우리 부서와 옆 부서는 하나의 기획안을 완성하는 과정을 둘로 나누어 분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같이 야근을 하지만 옆 부서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그쪽 팀장님은 평소에 준비하는 기획안 주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는 스타일이었고 우리 팀장님 스타일은 자료를 많이 보고 외우고 그것들을 조합하는 스타일이지 본인이 고민해서 전략 안을 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 우리는 매일 같은 야근을 하는 동안 다른 팀에서 만든 자료를 누더기 마냥 얼기설기 이어 붙여 높은 분께 가져갔다. 결과는 당연히 혼나는 것이었다. 반면 옆 팀의 경우 우리보다 짧은 시간 동안 짧은 자료를 만들었다. 높은 분은 마음에 들어하셨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그쪽은 설령 틀리다 할지라도 본인들의 전략이 들어 있었고 우리의 경우는 이미 높은 분은 다 한 번 씩 자료들이 얼기설기 붙어 있었다. 누가 봐도 결과는 자명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식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생각하는 습관이 없어져서 그렇다. 우리 팀장님의 경우 미국 명문대에서 MBA를 할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공부도 암기가 더 중요시되고 사고력을 키우는 것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그 결과 현재 본인 생각을 가져오라는 높은 분의 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다른 팀 자료를 짜집는 데에 머문다. 


우리 기획자들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우리 머릿속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필요하면 더 엄청난 정보들을 순식간에 찾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경쟁력 있는 기획자가 되려면 생각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능력이 아니다. 하나의 작은 주제라도 스스로 여러 번 생각해보고 또 기회가 되면 글로 정리해 보는 훈련을 해보자. 처음에는 별 거 아닌 귀찮은 일이지만 그것이 쌓이면 어느 순간, 주변의 다른 기획자들이 얼마나 단순 정보와 지식, 그리고 그동안 해오던 관성에 의해서만 일하는지 보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터넷 기사가 아니라 5분의 명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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