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계 퇴고법 - 1
글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퇴고를 해야 한다 만다가 아니라, 학생이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입니다.
왜 퇴고가 싫을까요? 어렵고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면, 보통 어렵고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퇴고는 어떻게 하는지, 하면 뭐가 얼마나 좋은지 배운 적이 없어서 퇴고가 싫어진 것이죠.
자신이 쓴 글을 마주하는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부감도 한 몫합니다.
퇴고에 거부감이 있는데 '그래도 퇴고는 해야 합니다'는 도움 되는 답이 아닙니다. 퇴고를 하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어떻게 쉽게 하는지 알려드려야 좋은 답변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퇴고하면 좋은 이유와, 4단계로 쉽게 퇴고하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일단 퇴고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죠? 퇴고라는 말은 짧은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이야기 안에 퇴고의 본질이 담겨있습니다.
당나라 시인 가도가 말을 타고 가다, 문득 영감을 받아 시를 하나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글자 하나를 민다(推)로 할지, 두드리다(敲)로 할지 고민이 되었다네요.
가도는 길에서 계속 고민하다가, 높은 관리이자 당나라 최고 문장가인 한유의 마차에 부딪히고 맙니다. 가도는 사과하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를 들은 한유는 그를 용서하고는, 두드리다(敲)가 좋겠다고 말해주며 시를 완성합니다.
이 짧은 이야기 안에 퇴고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퇴고는 가도처럼 고민하는 과정입니다. 둘째, 답은 한유 같은 독자가 알고 있습니다.
즉, 독자 입장에서 읽고 고민하는 과정이 퇴고입니다. 퇴고가 막막하다면, 작가가 자기 입장에서만 글을 읽어서 그렇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고민하면, 글을 어떻게 고칠지는 명확해집니다.
그럼 퇴고를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힘들게 초고(first draft)를 완성하면 후련하고 뿌듯합니다.
기껏 쓴 글을 다시 보려고 하면 귀찮고 싫습니다. 기껏 썼는데! 또 쓰자니 귀찮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퇴고를 해야 글쓰기가 오히려 쉽습니다. 퇴고 없이 초안을 잘 쓰기가 10배 더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잘 쓰기는 어렵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거든요.
특히 우리가 글을 쓸 때는, 보통 그 주제로 글을 써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이 글로 풀어내면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릅니다.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과 그 생각을 풀어낸 글은 다릅니다. 머릿속에서는 그럴듯한 생각도 막상 글로 써놓고 나면 모순되고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생각은 우리 혼자서 하지만, 글은 내가 타인을 설득하는 과정(목적문)입니다. 내 머릿속 생각을 남도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안은 도박입니다. 써보기 전까지는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도박이 대부분 지듯이, 초안도 대부분 나쁩니다.
그래도 우리는 초안을 잘 쓰고 싶어 합니다. 초안을 잘 쓰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막막해집니다. 문장 하나 쓰기도 망설여져서 초안을 완성하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글을 잘 쓰려면 두 가지 활동을 해야 합니다. 글을 만드는 창작활동과 고치는 판단활동입니다. 초안부터 잘 쓰려면 이 둘을 한 번에 다 잘해야 하는데, 사람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단 쓰고, 그다음에 고쳐야 합니다. 훨씬 편하고 빠릅니다.
초안은 버리는 글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씁시다. 글은 퇴고로 완성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편합니다.
쓸 때에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퇴고할 때에는 다양한 시도 중에서 가장 좋은 것만 남기면 됩니다.
이렇게 초안과 퇴고를 분리하면 글쓰기가 쉽고 빨라집니다.
초안을 쓸 때에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합시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일단 쓰면서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내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느껴보는 게 중요합니다.
메시지와 설득력, 이 둘이 글의 핵심입니다. 대부분 이 둘을 모른 채로 글을 쓰기 때문에 아리송한 글을 쓰고 맙니다. 이 둘을 확인하는 과정이 퇴고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생각부터 퇴고합시다.
글은 내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즉, 글의 재료는 생각입니다. 생각이 부족하거나 모순이 있다면, 당연히 글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글을 퇴고할 때에는 생각부터 퇴고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표현하기 전에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메시지), 그 생각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설득력)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개요를 짜고 초안을 씁니다. 퇴고 또한 메시지와 설득력부터 해야 합니다.
그래서 퇴고는 메시지(목적문)가 명확한지, 설득력이 충분한 지부터 살핍니다.
초안을 쓰기 전에도 살피지 않았냐고요? 그때 관점과 지금 관점은 다릅니다.
초안을 쓰면서 목적문과 개요를 깊이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고민해 보면서 목적문이나 개요를 바꿀 필요가 없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그리고 큰 구조를 살피며 아래 내용을 고민해 봅시다.
- 목적문(메시지)이 명확한가요?
- 글에 모순이 있나요?
- 주장에 근거가 충분한가요?
논리에 모순이나 반복이 없는지, 독자의 동력이 다 떨어지는 지점은 없는지 찾아봅시다. 세세한 부분(글이 이해하기 쉬운지, 문장이 꼬였는지, 표현이 정확한지)까지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세세한 부분을 고치는 단계가 따로 있습니다. 지금은 핵심 메시지를 고쳐야 하지는 않을지, 글의 개요나 전개를 고쳐야 하지는 않을지만 확인하면 됩니다. 글의 흐름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글의 주제와 개요에 문제가 없다면, 이제 문장과 표현을 고칠 차례입니다.
문장과 표현은 어떻게 퇴고할까요? 역시 독자 입장에서 읽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단계별로 설명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