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파도 위에서 서핑하기
스타트업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 가운데 가설과 시장의 괴리를 메꾸어 가기 위한 방법으로 피봇을 하게 됩니다. 필연적인 실패를 반복하면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찾아가는 과정은 괴롭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제시카는 철학과 학생에서 IT 회사 창업가로 삶의 피봇을 했고 창업을 한 이후에는 프로덕트를 피봇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제시카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봇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도전할 힘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 1인 CEO로 일하고 있어요.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하루 일상은 어떤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논스 오피스’ 근처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요. 사무실을 옮긴 이후에는 딱히 일하는 시간, 쉬는 시간 구분이 없어요. 일이 끝나면 잠에 들고, 일어나자마자 일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그런 일상에서도 제가 꼭 지키는 게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0분 유산소 운동을 하고, 또 저녁 10시쯤에 본 운동을 하는 거예요.
열심히 일하면서 하루에 두 번이나 운동을 한다니, 정말 의지가 대단해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서 운동하는 제시카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예전에는 불면증을 심하게 앓았어요. 어떤 주제든 한 번 생각을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서 잠을 못 잤거든요. 운동을 빡세게 하면서 잡생각이 정리되고,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운동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꼭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 중 하나예요. 그래서 더 중요하고요. 요즘에는 옵트(OPCT)라는, Web3 운동 커뮤니티에서 운동하고 있어요.
옵트(OPCT)를 Web3 운동 커뮤니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신선하면서 낯선 개념인데, 정확히 어떤 커뮤니티인가요?
옵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옵트를 '소림사'라고 생각해요. 옵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운동하는 건 아니에요. 포기하고 싶을 때 동작 10번을 더 하고, 옆 사람이 어떻게든 해내는 걸 보며 자극을 받는 경험을 위해 운동을 하죠. 저도 옵트에서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못할 것 같은 걸 해냈구나', '남들이 쉴 때 노력한 만큼 에게 돌아오는 게 있구나' 같은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그게 일할 때나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한계를 극복하는 경험을 운동을 통해 함께 배우는 커뮤니티네요!
제시카는 이렇게 열정적인 철학과를 선택한 계기가 있을까요?
‘사람은 왜,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였어요.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고등학교 때 사건이 계기가 됐어요. 해병대 캠프를 갔다가 친구들이 실종된 일이 있었어요. 존경하던 선생님들도, 무서워 보이던 교관들도 하나같이 재앙 앞에 무력한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어요.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성공, 사회적 지위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허무한지 생각하게 됐어요. 슬픔과 분노의 폭풍이 지나간 이후엔, 도대체 사람은 왜 사는지 알고 싶어졌어요. 이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살면서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삶의 모든 걸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성취 지향적인 삶이 정말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고, 그 고민을 해결하고 싶어서 철학을 선택했어요.
삶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철학을 선택했네요.
대학교에서는 제시카가 원하는 답을 찾았나요?
아직도 답을 찾고 있어요. 하지만 대학교에서 니체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법'은 배운 것 같아요. 니체는 인간의 정신 발달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세 단계로 구별했어요. 타인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낙타는 주체적이고 강한 사자로 변화하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순수한 즐거움, 태초의 기쁨을 아는 어린아이가 되는 거죠. 아이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진 않잖아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고요. 저도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어요. 행복을 붙잡으려 하지 않기. 불행을 애써 피하지 않기. 그게 참된 인간의 모습이라는 나름의 철학이 생겼어요.
철학과 학생에서 IT 창업하게 된 여정이 궁금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학교 복도에 코딩 동아리를 모집한다고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처음 배웠던 건 html로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처음엔 못 따라가는 학생이었지만, 처음 페이지를 만드는 과제를 달성했을 때 너무 기뻤어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이 세상에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거든요. 어떤 엔지니어는 알고리즘을 만들 수도 혹은 해킹을 할 수도 있는데, 저는 그저 창조하는 것에 순수한 재미를 느껴요.
코딩 동아리에서 IT 회사 창업은 큰 도약인 것 같은데,
그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처음에는 코딩 동아리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아이디어톤과 해커톤에서 상을 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으로 팀이 만들어졌고, 소 주제별로 사람이 모였어요. 그중 교육이라는 주제를 가진 팀에서 4명을 구하고 있었고, 딱 4명이 손을 들었어요 (웃음). 정말 우연한 계기였죠. 공모전에 나가기 위해서는 계획서를 쓰고 발표를 해야하는데, 저는 그 부분을 상대적으로 잘했기 때문에 주로 맡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전략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죠.
일을 하면서 챌린지를 깨가는 것이 너무 재밌었어요. 특히 교육이라는 섹터에서 일하다 보니 이전에 있었던 일방향적인 교육에 대한 불만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현재도 일을 할때마다 한이 풀린다는 마음이 들어요.
처음에는 우연한 기회로 교육을 선택하셨는데,
계속해서 교육산업에서 도전하신 이유가 있나요?
아직도 성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평생직업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직업 자체도 빠르게 변화하면서 더 이상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에요. 사람들이 원하는 교육은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지겠죠. 그래서 시장성, 미래 전망을 생각했을 때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초인)의 개념에 빠져있기 때문에 발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즐거워요. 새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의 주기가 빠르고 성장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개발자들이 일하는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총 세 번의 피봇을 거쳤다고 알고 있어요.
처음에 생각했던 사업과 달라진 게 있을까요?
만약 달라졌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프로덕트를 만들게 되었나요?
사업하고 한 6개월 동안은 ‘일방향적이고 권위적인 교육을 혁신하겠다.’ 라는 꿈으로 밤낮없이 일했어요. 처음 했던 아이템은 인비저블(Invisible)이라는 아이템이었어요. 인터넷 강의를 듣는 고객별로 가장 적합한 강사를 매칭시켜주는 프로덕트였죠. 현재 성인 인강 시장은 수능, 공무원 시험 스타강사들 위주로 구성돼 있어요. 그래서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별 학습 스타일로 알맞은 강사를 연결해주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놓쳤던 건, '그 서비스를 정말 사람들이 원할까?'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인강 시장은 이름값이 중요하고, 사람들은 강의를 선택할 때 리스크 테이킹을 하기 싫어하죠. '개인별 맞춤 강사 연결 시스템'은 제 관점에선 좋았을지 몰라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아니었어요.
두 번째로 만든 프로덕트는 초코에요. '초'보 '코'더들을 위한 코딩 강의 플랫폼이었죠. 처음엔 시장의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코딩 강의가 다양하고 쉽다고 해도 컴퓨터 과학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겐 어렵고, 일반인과 전공자 사이의 괴리도 컸거든요. 보다 대중 친화적인 강의를 과외 형식으로 제공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 프로덕트도 잘 되진 않았어요. 정부에서 제공하는 KDT(K-Digital Training) 처럼 비슷한 콘텐츠들이 이미 많았고, 스케일업도 어려웠거든요. 그리고 스스로가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좋은 프로덕트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사줄 사람이 없다면 프로덕트는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돈이 벌린다는 자체가 많은 사람이 의미를 찾고 돈을 지불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은 코렉팅(corecting)을 준비하고 있어요. 코렉팅은 개발자들을 위해 코드리뷰를 매칭해주는 플랫폼이에요. 코드리뷰는 말 그대로 코드를 검토하는 행위를 말해요. 코드를 개발자들이 내면 이게 잘 돌아가는 코드인지, 효율적인 코드이지, 실제 상황에 투입됐을 때 에러는 없을지 등을 평가하는 거죠. 현재는 이 플랫폼이 어떻게 하면 잘 돌아갈 수 있을지 매일매일 고안하고 있어요.
제시카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일단은 *트랙션을 쌓아서 늦어도 3월 이전에는 투자금을 받고 싶어요 (웃음). 그리고 실력 있는 팀원을 만나고 싶어요. 요즘은 혼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트랙션 : 미래에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주는 지표
평소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자기 삶을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외쳤던 문장이 인상 깊었어요. 하지만 저를 포함해 다수의 사람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법조차 모르는 것 같아요. 누군가 나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냐고 질문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저는 선택의 순간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요. ‘네가 내일 죽는다면 무얼 할 거냐’. 저는 이 질문 앞에서야말로 인간이 스스로 온전히 솔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수의 진을 치는 질문이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네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세상은 너한테 관심이 없다’고. 저는 모든 사람들이 본인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길 원해요.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해본 사람이라면 계획처럼 흘러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도 있고, 때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제시카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때 계속 나아갈 힘을 가질 수 있다고 그녀의 인생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발행처: <2022 프로덕트 세계 리포트>
Editor: Yuni
Interviewer : Yu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