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성우 Oct 13. 2017

<편의점 인간> - 무라야 사야타

편의점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들

'띵동댕동 띵동댕동'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자 온몸이 긴장됐다.  대부분의 학생이라면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반가웠을 테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면 펼쳐지는 완전한 자유의 세계, 어떠한 역할도 부여받지 않은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나에게 벅찼다. 스스로가 온전하게 서있지 못할 그때는 나를 마주하는 건 나조차도 힘겨웠다. 누군가는 힘자랑을 하고 누군가는 재미난 얘기를 하고 누군가는 엎드려 자는 완전한 자유 속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당황했다. 수업시간이라면 선생님의 수업을 잘 듣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질문을 하는 '학생'의 역할을 했다. 그 역할에서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다. 공부, 질문, 필기, 아이 컨텍 정도의 행동 리스트가 있다. 사춘기가 지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에게 룰을 정해주는 형식이 좋았고 온전한 나로 돌아가는 자유의 시간은 버거웠다.



자유라는 부자유

'편의점에서는 누구나 인간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모자란 사람, 잘난 사람 상관없이 편의점 점원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한다면 누구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편의점이 되레 편했습니다.'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가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다 나는 이 구절에 꽂혔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4/2017071402060.html) 학생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수업 시간이 편했던 나는 편의점 점원으로 존재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별종 같았던 나의 마음이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마음에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실은 모두가 역할 놀이가 편하지만 자유라는 가치가 너무도 중요하기에 선뜻 말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컨베이어 벨트와 태엽으로 상징되는 산업화는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을 부품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하지만 오히려 그쪽에서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 수도 있다. 어떻게든 부품이라도 되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품조차 되기 힘든 것이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 현재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사회화의 폭력

우리는 모두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규칙을 따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화는 가정부터 시작해 학교, 또래 관계 등의 집단을 거치며 개인의 의식에 자리 잡는다. 하지만 사회화만으로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 될 수는 없다. 하면 안 되는 것을 규정하고 어떤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한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사회화 과정은 끝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느 때는 맞는 것 같다가도 어느 때는 틀린 것이 돼버리기도 한다. 기준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에 편의점은 확실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폐기하고 손님에게 즉석식품을 내어줄 땐 클리너로 손을 세척하고 음식을 집어야 한다. 확실한 가이드라인만 따르면 그곳에서는 누구나 인간이 될 수 있다.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마저 편의점에서는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인간다운 '인간'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편의점 점원같이 간단한 역할 놀이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이 될 수 없다. 편의점 점원만 18년째 하고 있는 주인공이 친구들에게서 받는 불편한 시선은 사회적으로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 상당함을 말한다. 물론 이들도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더 복잡하고 답이 없는 역할을 담당한다. 가정을 이뤄서 부모가 돼 자식을 양육하는 사회가 원하는 인류 재생산을 해내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에게 그 이상으로 요구하는 것이 결혼과 종족 번식으로 표현됐다. 가정을 이루지 못하면 낯선 이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친구나 편의점의 직원들 모두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엄마의 역할, 직장인의 역할 등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어떻게든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화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의 도리를 갖추는 것이었다면 진짜 사회에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역할 놀이를 수행해야 한다. 실업률 10%, 출산율 최하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불과 몇 년 전까지 긴 불황을 겪었던 일본에서는 '인간' 역할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인간의 역할을 규정하는 폭력적인 사회의 시선에 대한 비판을 <편의점 인간>은 말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편의점에서 18년 동안 점원을 한다고 해서 사회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주위의 사람들은 주인공을 가만히 두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들이 규정하는 사회적 역할 속에 편입시키려 한다. 어떻게든 시도하려고 노력하지만 주인공은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편의점이라는 작은 사회 속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극단적으로 돌출돼있는 주인공을 어떻게든 사회 속으로 넣으려고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고통을 겪는다. 주인공이 겪는 차별적인 시선을 통해 사회화의 역할 놀이가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을 생각하게 해준다. 지금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역시 사회화의 강압으로 만들어진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역할 놀이를 충실하게 할 뿐이다. 그 지점을 해학적으로 풀어놓은 책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니트족이 될 줄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