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살면 차가 필요하다
나는 걸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걸어 다니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얘기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리고 스마트폰을 자주 보는지 책을 보는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나는 걸으면서 얻었다. 수도권에서 서울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는 통학도 그래서 괜찮게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피곤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회를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그런 내가 차를 살 줄은 몰랐다.
여수에 오자마자 '차를 사라'는 말을 들었다. 다양한 선배들과 식사를 하며 알아가는 수습기간 동안 선배들은 빠지지 않고 '차를 사라'는 이야기를 했다.
선배들과의 대화는 거의 이런 식으로 끝났다. '어차피 살 거야'라는 말을 들으니 괜히 선배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었다. 평소 걷기와 대중교통의 신봉자였기에 자신이 있었다.
입사 초기에는 퇴근하고 도서관에 자주 갔다. 동네 도서관은 아이들이 많아 시끄러워 조금 떨어진 대학 도서관을 갔다. 대학교에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집에서 5분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배차 간격을 잘 맞추면 운이 좋아 바로 탈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면 15분은 기본이고 25분까지도 기다려야 했다. 어플로 버스 시간을 맞춰 움직이지만 조금만 늦어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가 너무 늦게 오는 게 문제였다. 어쨌든 버스를 타고 대학까지 도착했다. 한국 대학의 특징은 산을 깎아 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서관까지 가려면 동네 뒷산 가는 마음으로 올라야 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서관에 들어갔다. 심장을 진정시키고 공부를 할만하다 싶으면 도서관 끝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럼 다시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야 했다. 2시간 공부하기 위해 이 정도 고생을 하나 싶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대학 도서관은 가지 않았다. 그러다 그냥 공부를 안 하게 됐다.
대중교통은 집적 효과에 영향을 받는 산업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사람이 많아야 많은 노선의 버스를 자주 다니게 할 수 있다. 서울에는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라면 작은 마을버스까지 노선이 있다. 내가 다녔던 서울의 학교는 지하철 역에서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까지 마을버스가 운행했다. 그곳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다수의 서울 주민들도 있었기에 마을버스가 자주 다녔다.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서울에서는 대중교통만으로도 편하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지방엔 대중교통으로 집적 효과를 누릴 수가 없다. 지방엔 사람이 적다. 사람이 없는 빈 버스가 다닐 수 없으니 버스 배차간격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버스 한 대가 커버하는 지역도 넓다. 버스는 도심을 중심으로 농어촌 마을을 사방팔방 다닌다. 시골로 들어간 버스는 한 번 가면 좀체 나오지 않는다. 지방의 대중교통은 배차간격이 길고 원하는 곳까지 가기 어렵다. 지방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중교통을 포기한 후 나는 선배들의 예언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아직 나에게는 몸뚱이가 남았다. 부족한 인프라는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두 번째로 선택한 이동수단은 공공자전거다. 서울에는 따릉이가 있고 광주에는 타랑께가 있듯이 여수에는 u바이크라는 심플한 이름의 공공자전거가 있다. 퇴근하고 이마트를 자주 갔는데 공공자전거는 집에서 25분 떨어진 이마트를 가기에 최적화된 이동수단이었다. 5천 원을 내고 한 달 이용권을 끊었다. 공공자전거는 거점에 자전거를 세워두는 방식이라 집에서 이마트까지 door-to-door는 안돼서 불편했다. 그럼에도 한 달에 5천 원이라는 가격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공자전거를 포기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여느 때와 같이 퇴근하고 이마트에 갔다. 그날따라 장을 무리해서 봤다. 거기다 저녁으로 먹을 연어초밥까지 사서 짐을 꾸리기가 까다로웠다.'택시를 탈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택시를 타면 자전거 한 달 이용권을 끊은 의미가 없어졌다. 어떻게든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자전거 바구니에 조심스레 짐을 쌓았다. 등산가의 백팩처럼 무거운 건 아래로 가벼운 건 위로 올렸다. 그리고 저녁으로 먹을 소중한 연어초밥은 맨 위로 올려 초밥이 뭉개지는 것을 방지했다.
연어초밥을 먹겠다는 마음으로 신나게 달렸다. 짐이 무거워 자전거가 잘 안 나갔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공중에서 자전거를 굴렸다. 집에 도착해 짐을 정리했다. 들뜬 마음으로 연어초밥을 열었다. 그 순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신나게 흔들었던 자전거에서 연어초밥은 살과 밥이 분리돼 춤을 췄던 것이다. 연어초밥은 연어회덮밥으로 탈바꿈했다. 어차피 배로 들어가면 똑같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연어회덮밥을 먹었다.
자전거에 실패하고 나서 조금 더 선배들의 예언에 가까워졌다. 동료들의 차를 탈 때마다 "차 있으면 뭐가 좋아?"라며 묻는 빈도가 잦아졌다. 탈 것에 대한 욕망은 갈수록 커졌다. 그러던 중 새로운 탈 것이 나타났다. 바로 전동 킥보드였다. 킥보드는 킥보드인데 전동 모터 힘으로 가서 콘센트로 충전만 해주면 됐다. 속도는 30킬로까지 나간다고 하니까 이마트도 금방 다녀올 수 있다. 중고나라를 뒤져 적당한 물건을 찾았다. 서울에 갔다 오면서 거래를 하고 고속버스에 싣고 여수에 왔다. 여수터미널부터 집까지 전동 킥보드를 탔다. 전동 킥보드는 편안하게 나아갔다. 전동 킥보드는 성공적이었다. 새로운 탈 것을 찾았다.
월요일 출근길에 새로 산 킥보드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회사로 갔다. 막히는 차를 뒤로하고 잽싸게 회사까지 나아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동 킥보드는 경사를 힘겨워했다. 도움닫기를 해 최고속력으로 경사에 올랐지만 전동 킥보드는 금세 풀이 죽었다. 산에 가까운 회사 경사를 오르기에 30만 원짜리 킥보드는 무리였다. 킥보드를 끌고 회사에 올랐다. 그리고 전동 킥보드는 대리운전을 하시는 분에게 팔았다.
어렸을 때부터 스쿠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남미를 모험한 체 게바라처럼 스쿠터를 타고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고 싶었다. 서울에서도 스쿠터를 탄 적이 있지만 당시는 돈 없는 학생이라 50cc 작은 스쿠터밖에 타지 못했다. 직장인이 됐으니 크게 지르기로 마음먹었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베스파를 300만 원 주고 중고로 구매했다. 부산에서 스쿠터를 용달로 싣고 왔다. 그렇게 나의 스쿠터 라이프가 시작됐다.
스쿠터로 이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짐이 흔들리지 않아 좋았다. 봄에는 벚꽃이 흩날리는 도로를 달렸다. 여름에는 근처 섬으로 돗자리를 들고 가 피크닉을 했다. 헬멧을 써서 머리가 망가지고 날씨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스쿠터의 단점이었지만 이동수단으로써는 괜찮았다. 하지만 빗길에 커브를 돌다 미끄러져 오른쪽 쇄골이 부러졌다. 서울에 가서 수술을 했다. 연차는 열흘이 사라졌고 내 스쿠터 라이프는 끝났다.
입원을 끝내고 여수로 돌아와 바로 차를 알아봤다. 2010년식 중고 아반떼를 샀다. 차는 오래됐지만 사회초년생이 혼자 운전할 용도로는 딱 적당한 차였다. 내 차가 생기니 좋은 게 정말 많았다. 자동차의 넓은 공간에 책이며 옷이며 잔뜩 들고 다닐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집이 생긴 느낌이었다. 왜 이제야 샀을까 후회도 되면서도 차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으려 고생한 1년 반의 시간이 생각나 우스웠다. 어느덧 회사에는 후배가 들어왔고 나 역시 선배들처럼 후배들에게 넌지시 조언을 건넸다. "차 사세요."
지방에서 차가 필요한 이유는 삶에 필요한 요소들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일을 하고 문화를 즐기고 쇼핑을 하고 남은 시간에 여가를 즐긴다. 서울에는 이런 요소들이 번화가라는 명목으로 모여있다. 홍대, 건대, 강남 상권이 대표적이다. 거리가 있더라도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과 버스는 빠르고 정확하게 목표지점으로 데려다준다. 반면에 지방에서 일을 하고 문화를 즐기고 쇼핑을 하려면 버스로는 어렵다. 배차간격이 긴 버스는 10시면 끊긴다. 퇴근 후에 공연을 보고 나왔다면 이미 버스는 막차가 떠난 상황인 것이다. 차를 사고 나니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게 됐다. 서울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지방에서는 어려웠던 영화보기와 쇼핑하기가 차를 타고 다니니 쉬운 일이 됐다. 또한 작은 도시에 없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을 이용하려면 근처 광역시로 가야 한다. 차를 이용하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결국 지방에서 차가 필요한 이유는 지방의 부족한 인프라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지방에는 인프라가 부족하지만 그나마 대중교통의 제약으로 맘대로 이용하지 못하던 것을 차를 통해 마음만 먹으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지방에서의 삶에 효용성이 생기는 것이다. 지방은 서울에 비해 부족한 게 많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이런 현실을 차가 보완해준다. 지방에 살며 가끔씩 찾아오는 답답한 느낌을 차를 통해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선배들이 했던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당장은 차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방에 살고자 하면 차가 필요하다는 것,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려면 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방에서 살려면 차가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차를 사서 타고 다니면서 지방에서의 생활에 지치지 말고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차를 사면서 살이 조금 쪘다. 잘 걸어 다니지 않으니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를 때가 있다.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피디로서 아쉬운 점이다. 그렇지만 사는 데 있어 의식주가 가장 밑바탕이 되는 조건이라고 하면 지방에서 사는 기본적인 요건은 우선 차가 있어야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챙기고 세상을 파악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지방에서 차는 의식주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지방에 살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