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지방의 출퇴근 차이
만약 하루에 3시간이 더 생긴다면 어떨까? 3분도 아니고 무려 3시간.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하루에 3시간이라니. 평소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미뤄뒀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다. 평생의 숙원인 악기 배우기부터 시간 없다는 핑계로 안 했던 운동까지,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고 우리는 선택만 하면 된다. 그 정도로 하루에 3시간은 충분히 긴 시간이다. 물론 알람을 1시간 뒤로 바꾸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지만 그래도 잠을 푹 자면 건강해지기라도 하다!
여수로 오고 나서 나에게는 하루에 3시간이 더 생겼다. 집이 회사에서 5분 거리였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도 아니고 무려 걸어서 5분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나에게는 매일 3시간이라는 새로운 시간이 생겼다.
무엇보다 여수에서 출퇴근으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출근을 위한 아침 시간은 여유 그 자체였다. 출근 시간인 9시까지 가기 위해 아침 8시에 알람을 맞췄다. 8시에 일어나서 천천히 샤워를 했다.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면서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 8시 50분까지 준비를 마치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로 걸어가며 날씨를 온몸으로 느꼈다. 맑은 구름이 있는 날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고 바람이 좋은 날은 선선한 바람을 등에 엎고 걸었다. 짧은 거리를 힐링하며 걷다 보면 56분쯤 회사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58분쯤이 됐고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면 9시가 됐다. 일을 시작하기 적당한 컨디션이었다.
퇴근 후의 삶도 있었다. 6시 정시에 퇴근하면 저녁 시간은 온전히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나는 퇴근하고 나서 평소 배우고 싶었던 재즈피아노를 배우러 갔다. 피아노 학원 역시 회사 근처 시내에 있어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다. 취미라고 쓰고 연습 안 해와서 선생님한테 혼나는 시간이라고 읽는, 피아노를 치고 나면 7시 30분 즈음이 됐다. 이후에는 주로 카페에 공부를 하러 갔다.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공부할 때도 있었고 이직을 위해 필기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카페는 보통 10시까지 했기 때문에 10시에 공부를 마치고 집에 와서 쉬었다. 어떤 날은 컨디션이 좋아 계속 공부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피곤해서 영화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퇴근 후에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취미, 공부, 여가 어떤 것 하나 빼놓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도 이런 삶이 가능했다. 진정한 '워라벨'이었다.
지금의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출퇴근이 오래 걸리는 수도권에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았던 경기도 구리시는 서울 동쪽에 맞닿아있다. 서울에 있던 학교나 직장을 가려면 1시간 30분을 잡고 가야 했다. 버스 한 번을 타고 지하철역을 30개쯤 지나면 도착할 수 있다. 9시까지 도착하려면 6시 30분에 일어나서도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34분에라도 일어났다가는 버스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면 지하철도 놓치고 결국 지각하게 됐다. 아침에 여유는 사치였다. 잠도 안 깼는데 샤워를 했고 버스에서 다시 잠에 들었다. 꽉 찬 버스와 지하철에서 뭐든 해보려 책을 읽고 영어회화를 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게 만원 버스에서도 서서 공부를 할 수 있다. 그치만 역시 쉽지 않다. 출퇴근 시간을 버리기 아까워서 어떻게든 활용하려는 선택일 뿐이었다.
퇴근 후 삶도 여유롭지는 않았다. 6시 정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가 된다. 8시면 웬만한 학원들은 대부분 닫아있어서 취미는 회사 근처에서 해결해야 한다. 집에 와서는 운동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 정도로 시간을 보냈다. 만약 야근이라도 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음 날을 위해 적당한 시간에 자는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평일 퇴근 후에는 시간이 많이 없다는 생각이 컸다. 결국 퇴근 후의 시간은 그저 내일 출근을 위한 준비 정도였던 것 같다.
원래 나는 출퇴근 시간을 좋아했다. 여수에 와서 오히려 그 시간이 사라져 아쉬웠다. 출퇴근은 나에게 사회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짓고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보는지, 이런 것들이 내가 사회에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또 출퇴근은 사색의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매일 감내해야하는 출퇴근길을 흘러가는 생각들로 채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할까. 나는 잘 사아왔을까. 인생에 대한 깊은 생각을 했다. 물론 태반이 쓸 데 없는 생각이었지만 나는 출퇴근 버스 안에서 세상과 호흡했고 생각의 깊이를 키웠다. 출퇴근을 위해 일찍 일어나 오래 이동해야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고통이 적응되는 순간이 오자 출퇴근에서 얻는 즐거움도 분명 있었다. 스스로 출퇴근 시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 여수에 와서 5분만에 출퇴근하는 게 적응이 안됐다. 출퇴근 시간에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어떤 것도 못봤다. 집 근처 있는 학교에 가는 초등학생과 그 부모님 정도만 있었다. 변해가는 나뭇잎의 색깔을 매일 확인하는 정도였다. 출퇴근에서 느꼈던 사회를 느끼지 못하자 답답해졌다.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감각이 없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주변 사람들과는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나에겐 어쩔 수 없는 출퇴근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일부러 버스를 타고 목적없이 방랑하는 건 싫었다. 출퇴근에서 느꼈던 사회의 감각은 출퇴근이라는 1차적 목표를 향해가는 데 얻었던 부산물이다. 그것만을 1차적 목표로 다가가기에는 타산이 맞지 않았다.
상암에 있는 mbc 본사로 출장을 갔다. 다큐멘터리 특집에 필요한 영상들을 받기위해서였다. 나혼자산다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가게되니 괜히 설렜다.
하지만 너무 멀었다. 구리시에서 dmc까지는 거의 2시간 거리였다. 몸도 좋지 않아서 가는 길은 더 힘들게 느껴졌다. 앉을 자리가 없는 지하철이 미웠다. 사회는 무슨 얼어죽을 사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말든. 몸이 힘드니 당장 앉을 자리가 필요했다. 지하철 역은 또 왜이리 붐비는지. 사람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여수에서는 일부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쏟아져나왔다. 세상에는 왜 중간이 없을까. 27년동안 이 복잡한 서울에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다. 예전의 내가 갑자기 대단해보였다.
dmc는 예전에도 자주 와봤다. 채널a 면접보러, cjenm 실무자 인터뷰하러 스터디하러 등등. 일하러 오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나는 이곳에서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크고 높은 건물의 위압감에 괜히 위축됐다.
김영하의 <여행의 기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여행자는 여행지에서 노바디나 섬바디가 된다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노바디가 되는 것은 여행지에서는 자신을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다. 어떤 직업인지, 어떤 성격인지 그 사람은 그저 여행자일 뿐이다. 섬바디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것, 직업은 무엇이고 사는 곳은 어디고 학교는 또 어디를 나왔는지, 여행자는 자신의 정보를 열심히 알림으로써 여행자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여행자는 노바디와 섬바디가 되는 조건을 여행지마다 다르게 정한다고 했다. 만약 내가 여행자로, 노바디로 남고 싶은 상황은 대개 낙후된 국가에서다. 반면 유럽 같은 선진국에선 노바디가 아니라 그곳에서 사는 현지인처럼 섬바디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나는 dmc에서 섬바디가 되고 싶었다. 크고 높은 빌딩들 어딘가에서 일하는 누군가로 존재하고 싶었다. dmc에 잠시 출장 온 노바디가 아니라 이곳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누군가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건 dmc가 내가 근무하고 있는 여수보다 조건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만약 여수보다 더 열악한 조건으로 출장을 갔다면 나는 노바디로 존재했을 것이다. 잠시 출장을 온 사람으로 말이다. 나는 그 거대한 빌딩의 물결 속에 섬바디처럼 행동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사진을 찍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슬쩍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다시 원래로 돌아왔다.
이곳이 매년 적자를 천억씩 내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웅장했다. 건물이 주는 위세가 너무 대단해서 나는 잔뜩 긴장을 했다. 그래서 나는 또 섬바디가 되려 부단히 노력했다. 원래 일하던 직원처럼 손소독제를 바르고 입구를 통과했다. 하지만 나는 방문자였기에 방문증을 쓰고 표찰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노바디가 되는 시간이었다.
영상 자료를 받는 곳으로 왔다.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며 영상을 취합했다. 내 할일을 하는 와중에 주변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mbc 어느 조직이나 문제점은 있었다. 내가 잠깐 머문 곳도 유사한 문제가 있어 보였다. 구체적으로 적기엔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곳은 매년 천억의 적자를 내는 곳이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점심에는 sbs타워에서 일하는 경구형을 만났다. 네이버 검색으로 찾은 식당으로 갔다. 끼니를 대충때우는 스타일이었는데 이제 서울에 올 때는 대충 먹지 않으려 한다. 왠만하면 여수에서 못먹어볼 곳에 가서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려한다. 서울에 살 때는 먹을 수 있었지만 안먹은 곳을 이젠 먼 거리를 와야 먹을 수 있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보려 한다. 그래서 메뉴는 스키야키였다. 식당은 깔끔했고 음식도 만족스러웠다. 커피를 마시고 1시쯤에 경구형과 헤어졌다. 같은 업종에 있어서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다. 유익한 점심 시간이었다.
시간이 쫓겨 자료를 다 얻었다. 마무리하고 잠깐 숨을 돌렸다. 창문 밖으로 수색역이 보였다. 6시가 조금 넘어 퇴근했다. 이미 해는 저있었다. 많은 사람들 역시 퇴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이곳의 연령은 굉장히 어리구나 싶었다. 퇴근의 물결을 따라 지하철역으로 갔다. 큰 줄기 사이로 작은 줄기에서 사람들이 합류했다. 어느새 퇴근의 큰 줄기는 한강처럼 큰 폭으로 변했다. 마치 논술시험을 마친 수험생의 모습처럼 우르르 쏟아져 지하철로 가는 풍경같았다. 그 생경한 광경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 물결에서는 왠지 노바디가 되고 싶었다. 그들처럼 이곳에서 매일의 사이클을 도는 것이 그 순간은 자신이 없었다. 계속 유지해왔던 섬바디의 자아를 노바디로 바꿨다. 다시 여수로 가고 싶었다.
퇴근한 대학교 동기들을 만났다. 시청에서 일하는 현덕이를 위해 시청 앞 오향족발로 갔다. 양은 적지만 준수한 맛 오향족발은 항상 그랬다. 이차로 브롱스를 가서 맥주를 마셨다. 치즈 플레터 양이 너무 적었다. 배가 불러서 다행이었다.
9시 50분차로 서울을 빠져나왔다. 몸도 안좋고 피곤해서 기차에서는 뭘 제대로하지 못했다. 여수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피곤했지만 여수에 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곳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들이 많은 공간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큰 물결들로 움직이는 서울에서 벗어나 나만의 작은 물결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이 작은 도시였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은 사람에게 참 중요하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다. 포르쉐를 타도 퇴근길 강변북로에서는 시속 20키로로 갈 뿐이다. 서울에서 선택은 강제될 수밖에 없고 그 물결에 저항하는 방법은 헬기를 띄울만큼 돈이 많은 것밖에 없다. 다만 작은 도시에선 나의 선택이 나의 의지로 이뤄질 수 있다. 그 효능감이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존재한다. 심심할지라도 좀 더 행복할 수 있다.
회사와 5분 거리에 사는 건 나의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지역 사람들은 출퇴근에 수도권 사람들만큼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지역과 수도권은 출퇴근 시간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지역에서 1시간 단위의 출퇴근은 보통의 경우가 아니다. 대부분 출퇴근은 30분이 넘지 않는다. 출퇴근이 30분이 넘으면 다들 놀란다.
거주지는 선택의 영역이다. 회사 근처로 이사 오고 싶으면 이사 올 수 있다. 아파트가 너무 비싸서 회사 근처에 살지 못하는 게 아니다. 서민계층이 충분히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있다. 물론 신축은 지방도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그럼에도 구축일지라도 거주 가능한 주거지가 있다는 것은 거주가 선택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수도권은 다르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첫째,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오거나 둘째, 집 근처에 회사가 있는 것이다. 결국 회사와 집이 가까워야 한다. 이건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업무 지구인 종로, 강남, 마포 등은 서울에서도 주택 가격이 높은 곳이다. 구축도 20억이 넘는 강남을 우리는 '선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으로 이동하게 된다. 나도 그랬고 1500만 명 가까이 되는 수도권 사람들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3시간을 잃는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누리는 매일 3시간의 추가 시간을 우리는 길 위에서 보낸다. 하지만 수도권 사람들은 긴 출퇴근 시간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 역시 적응이라는 문제로 치부했다.
그렇게 오랜 출퇴근 시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가까운 거리에 출퇴근할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 나만 힘든 게 아니었으니까. 수도권에 사는 모두가 당연하지 않은 긴 출퇴근 시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수도권 사람들은 짧은 출퇴근이 주는 일상의 변화를, 그 가능성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추가적으로 얻는 3시간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기에 우리의 일상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생길 것이다. 3시간은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도 볼 수 있는 시간이고 3시간이 1주일 동안 쌓이면 웬만한 시험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처럼 매일 3시간이 쌓인다면 우리의 일상은 정말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이다. 수도권 사람들의 가능성이 길 위에서 소진되는 것이 안타깝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는 건 수도권에 사람이 많아진 결과이다. 서울에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서울의 집 값은 상승했다. 서울에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서울 근교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수도권마저도 집 값이 상승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계속 인구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계속 늘어가면서 서울이라는 장소는 계속 가치가 상승하게 됐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서울의 영향력은 이제 경기도와 인척 전역에 퍼져있다. 광역철도인 GTX 사업으로 앞으로 서울의 영향력은 더 늘어날 것이다. GTX로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서울의 힘을 키우는 GTX는 결국 또 다른 교통 인프라를 필요케 할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있는 인구가 지역에 분산될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서울은 인구가 줄어들면서 집값이 안정되고 회사와 가까운 곳에 살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곳이 된다. 더 이상 출퇴근 시간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지역 역시 인구가 더 늘면서 더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다. 다만 지역 분산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 꿈같은 말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서울 집중만 해소된다면, 지역에 분산이 된다면 우리는 아마 다른 상상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