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해피앤딩
차를 타면 생각 없이 틀어놓는 라디오에서 가끔 감정을 자극하는 한 단어가 들려올 때가 있다. 그 순간 나의 감각은 오토크루즈버튼이 눌린 자율주행차처럼 의식 없이 운전을 하게 된다. 대신 여유를 얻은 다른 모든 감정은 라디오로 향한다. 그날도 나를 자극하는 한 단어가 라디오에서 들려왔다. 장거리 연애였다. 사연을 보낸 여자는 남자 친구와 대구에서 5년을 만났다. 편안하고 자상한 성격의 남자 친구와 잔잔하고 평화로운 연애를 하던 어느 날 남자 친구가 서울로 발령을 받게 됐다. 하지만 여자는 대구에 있어야 했다.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이대로 장거리 연애를 하면 관계가 변함없을까 걱정됐다. 남자 친구는 여자가 원하면 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서울에서의 삶에 욕심이 있다. 더 큰 일도 해보고 싶다. 여자는 그런 남자 친구를 주저앉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장거리가 되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라디오 진행자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라디오 진행자는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이쯤에서 노래 한 곡 듣고 오겠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생각을 열심히 해볼게요’라는 멘트를 뱉었다. 노래가 나가는 동안 나는 마치 라디오 진행자가 돼 대답을 해줘야 하는 사람처럼 고민했다. 남자 친구를 서울에 가게 할 것인지, 아니면 대구에 남게 할 것인지 하나를 선택해서 그에 맞는 이유를 제시하고 싶었다. 노래가 끝나면서 광고가 시작됐다. 나는 약속시간에 맞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라디오를 더 듣고 약속에 조금 늦을까. 결국 나는 라디오를 듣지 않기로 했다. 나만의 답을 내리고 싶었다. 그 답을 통해 실패로 끝났던 나의 장거리 연애의 기억을 다시 정리하고 싶었다.
2018년 10월의 마지막 주말, 1년의 장거리 연애는 끝이 났다. 여수에 산 지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많은 것들이 익숙해졌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장거리 연애를 하는 것도. 여느 주말과 같이 출근 때보다 일찍 일어나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준비하느라 버스에서는 기진맥진이었다. 이 순간은 항상 정신이 반쯤은 나가 있었다. 평일에 일한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다. 버스를 타면서 읽을 책을 챙기지만 버스가 출발하면 이내 잠을 잤다. 그런데 충남 공주부터 신호가 왔다. 처음에는 참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갈수록 감당이 안 될 고통이 느껴졌다. 휴게소는 이미 지났다. 이제 꼼짝없이 서울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성난 녀석을 어르고 달래서 서울까지 안전하게 운반해야 했다. 천안부터는 식은땀이 났다. 너무 아파서 몸이 배배 꼬였다. 음악을 들어도 음악 소리가 짜증 났다. 뭘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경지가 됐다. 버스 기사님에게 말하기는 이미 늦었다. 맨 뒤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사님에게 다가갈 자신이 없었다. 일어서는 순간 녀석이 집을 나갈 것 같았다. 아니면 자리에서 소리라도 질러야 했다. 그럴 용기가 나는 없다. 맨뒤 자리여서 더 그랬다. 차라리 너무 아파서 기절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내 입으로 ‘화장실 좀 가주세요’라고 외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참았다. 만삭의 임산부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그 녀석을 안전하게 보관했다.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다. 그 순간은 내가 왜 서울에 온지도 잊었다. 데이트를 하러 온 건지 녀석을 안전하게 전달하는 게 목표인지. 일단 그 녀석을 합법적인 장소에 두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런 다음에야 데이트도 있다. 버스가 정차하기도 전에 맨 앞줄로 갔다. 다들 이상하게 쳐다볼 것을 알지만 그 정도의 시선은 충분히 감당할 만큼은 참았다. 어차피 버스를 내리면 볼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끝까지 소심한 생각이었다. 버스에서 튀어나가 녀석을 안전하게 놓아줬다. 스스로 대견했다. 힘들었지만 좋은 승부였다. 모든 진을 빼고 나오니 이제 여자 친구를 만나 데이트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전에 소원이 있었다. 딱 30분만 누워서 쉬고 싶었다. 번잡한 고속터미널을 벗어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에서 가만히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자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데이트를 위해 1주일을 기다렸다. 나처럼 4시간 30분을 버스 타고 오진 않았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경기도를 지나 고속터미널로 오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데이트를 할 에너지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에너지가 없었다. 그냥 와도 힘든 길을 성난 녀석과 한 바탕 싸움을 한 탓에 더 지쳤다. 여자 친구를 만나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다. 과연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 에너지가 없었다. 원래 데이트할 때 피곤하다고 잘 말하는데 오늘은 피곤하다는 말도 안 나올 정도로 지쳤다.
여자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나도 피곤한 기색을 내지 않으려 한 것 텐션을 끌어올려 인사를 했다. 아직 데이트 코스를 정하지 않았던 우리는 점심은 고속터미널 안에서 먹기로 했다. 고속터미널 안에도 괜찮은 음식점들이 많았다. 연남동에서 시작한 유명한 태국 음식점은 이미 웨이팅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식당 대부분이 웨이팅이 있었다. 그중에 조금 여유로웠던 복고풍의 한식당에 갔다. 낙지볶음 덮밥 정식과 새우장 정식을 시켜놓고 이야기를 했다. 성난 녀석과 싸웠던 자세한 이야기를 했다. 충청도부터 산통이 왔고 경기도부터는 양수가 터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탈진 상태라고 했다. 데이트 초반부터 참 초치는 이야기였다. 서울에서 나를 반겼을 여자 친구 입장에서는 그랬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자주 보지 못하는 남자 친군데 보자마자 힘들다는 이야기나 하고 말이다. 나였다면 애정이 많이 떨어졌을 것 같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하는 감정을 느끼기 어려울 거니까. 한 번 있는 데이트조차 처음부터 이렇게 삐걱대면 순간적으로 기운이 빠질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이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나는 내가 그렇게 만드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우리 관계를 그렇게 만드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먼 거리를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있었다. 이동의 피로는 아무리 말해도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운전은 기사님이 했는데 내가 기운이 빠진 느낌을. 여수와 서울이 시차가 날 리가 없는데 왠지 시차가 나서 시차 적응을 해야 할 것 같은 그 느낌을. 너무 먼 거리에 있는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순간 여수에 있는 내가 또 싫어졌다. 만약 서울에 있었으면 이런 일로 에너지 소모할 일도 없을 텐데. 싸울 일도 없을 텐데. 더 좋은 관계가 됐을 텐데. 그런 복잡한 생각들이 들면서 스스로 기분을 안 좋게 했다.
여자 친구가 갑자기 선물을 건넸다. 무슨 선물이냐며 머쓱하다는 듯이 선물을 받았다. 나는 빈손이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데이트를 마칠 수 있기만을 목표로 했던 나 자신과는 달랐다. 여자 친구는 우리 관계를 더 행복하게 만들려 노력했다. 데이트를 과제해나가듯 해치우는 게 아니었다. 나도 노력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에너지가 부족하다. 이 표현밖에는 할 게 없었다. 초라한 자신을 감추며 선물을 받아 들었다.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점심을 먹고 고속터미널 안에 있는 카페에 갔다. 그런데 카페에서 여자 친구의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잘 웃지 않았고 기분이 많이 다운돼보였다. 그때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까지 처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말을 많이 했다. 평소 말이 많지 않은데 회사 이야기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를 잡다하게 늘어놓았다. 그럴 때 돌아온 건 머쓱한 미소였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끊겼다. 그땐 정말 이유를 몰랐다. 나도 기운이 빠졌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괜히 서러웠다. 주말의 달콤한 아침잠을 포기하고 4시간 30분을 달려 서울에 왔다. 이렇게 냉랭한 태도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도 입을 닫았다. 카페를 나와 주말이라 더 북적거리는 고속터미널을 거닐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더 이상 걸어갈 곳도 없었다. 더 가면 지하철 입구였다. 뒤에 있던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왜 그러는 거야."
"몰라서 그래? 생각해봐."
"아니 모르겠어 나도 아침부터 서울 오느라 너무 힘들어. 기운 빼지 말고 서운한 거 있으면 이야기하자."
"오빠가 선물 받을 때 너무 건성으로 받았잖아. 그게 기분이 나빴어."
그녀는 선물을 준비할 때 기대한 것에 비해 반응이 서운한 것이었다. 선물을 받고 좋아할 나의 모습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자신을 상상하며 기대를 했겠지. 하지만 선물을 건네고 나니 돌아오는 건 미적지근한 반응이었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그녀는 뭔가 엇나간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는 나의 반응이 모든 뒤틀림을 만든 것이다. 나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만 생각했다. 순간 기분이 나빠졌었다.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겨우 그 태도 때문에 그러는 거야? 진짜 너무한다. 나도 힘들어. 이렇게 멀리서 오는 내 입장은 왜 한 번도 생각 안 하는 거야. 오랫동안 버스 타는 것도 너무 힘들어. 너까지 이러니까 나도 너무 힘들다. 이대로 계속 만날 수 있을까. 더 이상 장거리 나는 자신이 없다. 이제 그만하자."
그녀가 준 선물을 다시 건넸다. 그녀는 선물을 다시 받아 들고 뒤돌아갔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녀가 떠나는 걸 바라봤다.
인파 속으로 그녀가 사라지고 더 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나는 고속터미널에서 나갔다. 앉아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3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리가 필요했다. 흡연실이 마주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생각이 정리가 안됐다. 너무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 관계는 꼬여있었다.
우리는 경기도 커플이었다. 처음 만난 장소는 서울의 한가운데인 학교였지만 서로는 경기도의 양쪽 끝에 살고 있었다. 나는 서울의 동쪽인 구리에 그녀는 서울의 서쪽인 김포에 살고 있었다. 마치 정부의 신도시 정책의 지점처럼 우리는 수도권 도시 하나마다 점으로 찍혀있었다. 만나는 장소는 주로 신촌 주변이었다. 그녀가 사는 김포에서 직행버스로 오는 노선이 있었고 나도 구리에서 올 때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였다. 주말이면 주로 데이트할 겸 점심을 신촌에서 먹었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다. 4학년이었던 우리는 취업 전형이 하나 끝나면 즐길 거리 많던 신촌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저녁이 되면 또 식당에 가고 다시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10시가 되면 서로 각자의 도시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10시 30분은 편하게 집에 갈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이 아직 여유 있게 다녔고 집에 도착해 씻고 정리하면 12시가 됐다. 주말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데이트는 주로 이런 식이었다. 무리 없이 어디 멀리 가지 않고 서로 생활을 지켰다. 누군가 무리해서 김포로 오거나 구리로 오는 일은 없었다. 김포나 구리가 서울보다 특별한 게 없었기 때문에 더욱 갈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신촌은 서로 무리하지 않는 최적의 데이트 장소였다.
장거리 연애가 되자 상황이 변했다. 우리가 무리를 하지 않으려면 대전에서 만나야 한다. 여수와 김포의 물리적인 중간은 대전이었다. 내가 4시간 30분 걸리던 것에서 1시간 30분을 덜어서 그녀에게 주면 그녀가 1시간 30분을 더 이동하면 된다. 하지만 대전에서 만나도 할 게 없다. 맛집에 가고 카페에 가는 것은 대전이나 서울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대전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항상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고생스러운 데이트다. 대전에는 잘 곳도 없다. 금요일에 서울을 가면 구리에 있는 본가에서 지낸다. 하지만 대전은 당일로 다녀와야 한다. 3시간을 걸려 반나절을 보내고 저녁을 먹고 3시간을 걸려 돌아와야 한다. 7시에 출발해도 10시가 된다. 내일이 없는 데이트 코스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 중간 지점은 없다. 마치 대한민국의 중위소득이 3천만 원인데 1500만 원을 버는 하위 계층과 1억을 버는 상위 계층이 중위소득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대전이라는 중간 지점은 중간 지점이면서 중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결국 상대방이 사는 서울이나 여수로 한 사람이 가야 한다. 한쪽은 기진맥진한 채로 데이트를 치르는 에너지의 균형이 맞지 않은 데이트가 된다. 그건 모두에게 피해가 간다. 한쪽은 에너지가 없어서 한쪽은 에너지가 많아서 문제다. 에너지가 없는 사람은 힘들면서 상대에게 미안하고 에너지가 많은 사람은 답답하면서도 상대가 안쓰럽다. 늘어난 거리만큼 균형의 추는 맞추기 어렵고 균형의 추가 한쪽으로 쏠릴수록 관계는 어느 한 방향으로 급격하게 쏠리게 된다. 파멸하거나 결합하거나. 도저히 힘들어서 이별을 맞이하거나 도저히 보고 싶어 못 참겠어 한쪽이 생활을 정리를 하고 상대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이다. 대부분 이별을 맞이하지만 후자의 경우도 가끔 보고 들었다. 회사의 한 선배는 서울과 여수를 6년 동안 장거리 연애한 끝에 결혼을 했다. 결국 아내분이 결혼하면서 서울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여수로 왔다. 6년의 연애 동안 위태로운 균형의 추를 맞춰왔던 것에 두 분 모두에게 경외를 느꼈다. 선배도 자신이 장거리를 6년 했다는 것에 상당히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다른 경우는 대전에 있던 PD분이 여자 친구를 잡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서울로 갔다는 이야기다. 정규직이었던 대전의 방송국을 퇴사하고 종편 채널의 계약직으로 갔다고 했다. 불안한 신분을 감수하면서까지 상대방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단한 결단이다. 이 정도로 노력을 하거나 한 사람의 결단이 있어야 장거리 연애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고속터미널에는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는 사람들로 나뉜다. 버스가 도착하면 사람들은 만나고 버스가 떠나가면 사람들은 떨어진다. 무수한 만남과 이별의 공간에서 모두가 익숙한 듯 만나고 헤어졌다. 붙고 떨어짐이 자연스러운 이 공간에서 나는 그 당연한 행동들이 낯설어졌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다들 척척해내는 것 같았다. 저 많은 사람들은 다 어떻게 먼 거리를 이동해서 사람을 만나러 올까. 서울에 놀러 올까. 피곤하지는 않을까. 지역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서울로 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구나. 잠을 줄여가며 피곤함을 달래 가며 나의 나태를 눈 감아주며 더 상위의 목적을 위해 서울로 오는구나. 장거리 연애도 마찬가지다. 삶에서 많은 걸 덜어내야 가능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움켜쥐고 가려했다. 주말 아침잠은 빼앗기고 싶지 않으면서 평일에 술 약속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한 부분에서 충격을 받아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장거리 연애를 위해선 기존 삶과는 다른 궤도로 수정이 필요했다. 장거리 연애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존 삶과 다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태도이다. 그게 연애 당사자 모두에게 필요하다.
구리로 갈까 아니면 여수로 돌아갈까. 서울까지 왔는데 부모님이라도 보고 돌아갈까. 하지만 누굴 만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가능하면 헤어진 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이 정리가 안됐다. 누군가 왜 헤어졌냐고 물으면 그냥 장거리 힘들어서라는 뻔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바에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여수로 돌아가는 버스를 끊었다. 탈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으로 잡았다. 여수에서 8시 30분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와서 3시 30분 버스를 타고 여수로 돌아갔다. 서울에 최단 시간으로 체류한 기록이었다. 서울에 남아있지 않고 여수로 가기로 한 건 다짐이었다. 그래야 균형추가 무너져버린 장거리 연애를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로를 힘들게 하는 위태로운 관계를 여수와 서울의 물리적 거리가 주는 힘에 다시 한번 맡기기로 했다. 나는 관계의 끝을 선택할 자신이 없었지만 내가 여수행 버스에 오르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었다. 나는 그 흐름에 소극적으로 몸을 실었다. 여수행 버스는 고속터미널을 떠났다. 차창밖으로 익숙한 반포동의 아파트들이 흘러갔다. 그렇게 내 생의 첫 번째 장거리 연애가 끝났다. 서울과 연결돼있던 줄 하나가 끊어졌다. 나는 원래 있던 나의 세상과 더 단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