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워커힐 호텔에서
일본어를 잘하는 아빠는 가끔 집에 일본인 거래처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이 사람들에게 잘 보여서 성과를 내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단지 한국을 잘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빠라면 일본인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해주고 싶은 단순한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아빠는 이해타산보다는 의리가 먼저인 사람이니까. 뒷바라지는 엄마가 했다. 불고기에 잡채에 식혜까지, 한정식 식당에 가야 볼 수 있는 한식 한 상을 내어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를 들으며 엄마는 특유의 가식적인 콧소리를 내며 웃었고 아빠는 호탕하게 웃으며 일본어로 아저씨들에게 술을 권했다. 외국이라곤 나가본 적이 없는 우리 형제는 외국인이 우리 집에서 머무는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대접을 받기만 한 게 미안했던지 일본인 거래처 직원들이 우리 가족에게 저녁을 산다고 했다. 장소는 광진구에 있는 워커힐 호텔 갈빗집이었다. 무려 5성급 호텔에서의 저녁 식사였다. 우리 가족은 르망을 타고 워커힐 고개를 굽이굽이 올라 워커힐 호텔에 도착했다. 워커힐 호텔 식당은 주차장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도 고급스러웠다. 대나무 숲 사이로 놓인 길을 따라갔다. ‘솨아솨아’ 대나무 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식당으로 들어가니 일본인 직원들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갈한 한식 한 상에 고급 갈비가 구워지고 있었다. 대나무 소리를 들으며 ‘촤악촤악' 갈비가 익는 소리를 들으니 어린 내가 봐도 참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듯이 장난치기 좋아하던 우리도 얌전히 분위기를 맞추며 갈비를 먹었다. 마치 한국 가정을 대표해 나온 국가대표 아이처럼 예의를 차렸다.
그래서 저 사진에 나온 것처럼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형과 내가 하나씩 들고 있는 상자에 닌텐도 게임보이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닌텐도 게임보이는 당시 돈으로 6천 엔 정도로 선물로 하기에는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엄마가 차려준 한국 가정식에 감동을 받아 우리에게도 신경을 쓴 것이었다. 상자 안에는 게임 팩이 하나씩 들어있었는데 포켓몬스터 레드, 그린 버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포켓몬스터 세상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포켓몬이 전투에서 지면 속이 상하기도 하고 왕과 싸우러 가는 길에는 새삼 비장해졌다. 9살 인생에 무엇에 그렇게 빠져본 적이 없었는데 잠도 안 자가며 포켓몬스터를 했다. 부모님이 “잠은 좀 자라"고 했지만 이불을 뒤집어쓰고 닌텐도를 붙잡고 있었다. 게임을 위해 산 건전지는 쌓여갔고 나의 포켓몬 과몰입은 심해져 갔다. 지나가는 참새를 볼 때 “넌 내 거야 피존!”이라고 외치면서 몬스터볼을 던지는 시늉을 했다.
포켓몬스터를 하며 설레었던 이유는 주인공 지우와 함께 모험을 떠났기 때문이다. 9살의 내가 아는 세상은 아파트 주변의 놀 것들과 학교가 전부였다. 반면에 포켓몬 세상에는 다녀야 할 공간과 닥쳐오는 미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두운 동굴을 헤쳐 나가고 얼음길을 미끄러져 가고 바다를 건넜다. 모험의 과정은 험난하지만 그걸 이겨내고 통과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정말 짜릿했다. 포켓몬스터를 하며 힘든 상황 뒤에는 짜릿한 성취가 따라온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10대와 20대를 모험으로 가득 채웠다. 중학생 때부터 자전거를 끌고 구리 인근을 탐험했다. 처음에는 강변 테크노마트였고 그다음은 삼성역, 남양주, 의정부를 모험했다. 20대 때는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여러 번 했고 대학교 3학년 때는 서울에서 해남까지 무전여행을 했다. 포켓몬스터를 하며 느꼈던 모험의 짜릿함이 성인이 된 나를 세상으로 내보냈다.
‘さびしい (사비시이)'
‘외롭다’
닌텐도 게임보이를 선물해줬던 일본인 거래처 직원 중 한 명이 최근 아빠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에는 ‘외롭다’는 말이 담겼다. 사진에서 이미 흰머리가 풍성한 일본인, 아빠와도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아마미야 아저씨였다. 아빠보다 10살이 많은 아마미야 아저씨는 은퇴도 더 빨랐기에 일을 하지 않은 세월이 오래됐다. 먹고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겠지만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계속 사라지는 삶을 걸어왔을 것이다. 그런 세월이 그를 ‘외롭게’ 만들었을 테다.
아빠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은퇴 후 당구장을 차렸다가 코로나 영업 제한으로 당구장 영업을 못 하고 여수 공사 현장에 일당직을 하러 왔을 때였다. 두 건설업자는 화려한 시절이 지난 후 비슷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포켓몬스터에서 주인공 지우는 모험을 마치고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고향 뒷산에서 다음 도전자를 기다리며 자신만의 수행해나간다. 우리의 모험도 마치 지우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우리에게 거대한 세상이 펼쳐진다. 세상과 사회를 모험하던 우리에게 정년과 노화가 찾아오고 젊은 후배들이 우리의 자리를 차지한다. 자연스레 무대의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고 무대 뒤로, 조연으로 역할을 바꾸게 된다. 우리에게 펼쳐졌던 거대한 세상이 아주 작은 세상으로 좁아질 때, 드디어 모험을 멈추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 인생을 정리할 시기가 찾아온다. 그 당연한 삶의 과정을 대우해드리는 것이 젊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우리도 언젠가 똑같이 무대의 뒤편으로 갈 테니까.
언젠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아빠와 같이 일본으로 갈 생각이다. 아마미야 아저씨를 만나 아저씨가 열어줬던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그 세상은 거대했고 재밌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