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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꿈꾸는회계사 Feb 09. 2023

5년차 전문직의 자영업 도전기

그게 되겠나?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서에 서명하기 직전까지도, 주변에서는 ‘그게 되겠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뇌에서 ‘어머, 이건 해야돼’ 라는 명령이 떨어진 다음부터는 멈추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휘몰아친 일정 끝에 영업을 개시했고, 그때부터는 현실이었다. 인건비와 임차료, 개인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월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영업만이 살길이다.




 계획했던 대로 블로그를 본진으로 삼아 차곡차곡 컨텐츠를 쌓아갔고 출퇴근길에 지식인 답변을 달았다. 점차 장기요양제도 전문가가 되어갔다. 네이버 광고관리시스템을 배워 키워드 광고도 태우기 시작했다.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를 고려하면 회계사 본업에 소홀할 수는 없었다. 여유 있는 팀도 아니었기 때문에 평일에는 퇴근 후 밤에 온라인 컨텐츠를 쌓는 데에 집중했다. 함께 창업한 다른 점주들은 우리 블로그를 복붙하기 급급했다.




 어찌 됐든 본사의 가이드라인은 오프라인 홍보가 효과가 좋다는 것이었는데,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최악의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한번은 해봐야 그들이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있으므로 시도는 해보기로 했다. 일단 지하철역 입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원에 가 전단을 배포했다. 그리고 주변 병원, 약국에 들러 협업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면서도 최악의 효율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일단 3개월은 해보기로 했다.




 그 3개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전봇대에 홍보물을 부착했다가 신고당하기도 하고, 불법 가판대를 설치하여 철거당한 적도 많았다. 목표로 하는 연령대가 많이 모일 것 같아 등산로 초입에 무인 가판을 설치해두고 다음 날 가봤더니 산산조각이 나 있기도 했다. 가스 검침원 및 정수기 점검원에게 긴밀히 접근하여 대상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새벽에 경비원이 조는 틈을 타 아파트 우편함에 전단을 배포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의료기기업체에 들러 홍보하려 했다가 잡상인 취급을 받고 쫓겨났던 적이 있다. MBTI 성격 분류상 전형적인 I형 인간으로서, 평소라면 학을 떼고 기겁을 할 만한 일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회계법인 사무실이 그립기도 했던 것 같다. 여러 감정이 섞여 복잡한 기분이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날만큼은 진짜 자영업자가 된 기분이었다.




 온라인 마케팅이 효과가 나타나면서 슬슬 매출이 발생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직원들이 듣는다면 서운해할 수도 있겠지만, 순전히 전략적으로 인건비를 시장 대비 높게 책정했다. 업종 특성상 결국 사람이 핵심인데, 가장 강력한 유인은 역시 돈일 수밖에 없다. 여긴 돈을 좀 더 준다더라 하는 소문이 주변에 퍼지면서 성장에 가속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모든 선택과 행동들이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다. 중2 게임 폐인 시절에 ‘인생에도 저장과 불러오기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했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자격증만 있다면 혹여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언제든 불러오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늘 돌아갈 곳은 있었다. 약간의 시간과 비용을 잃겠지만 막혀 있는 하단에 비해 상방은 끝없이 열려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장기요양기관을 창업하고 1년 정도 고생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 세팅만 잘 해두면 위임이 가능하고 기대수익률도 훌륭하면서 개업 시장보다 성공 확률도 훨씬 높다고 생각했다. 비지 시즌에 아무리 바빠도 나지 않던 코피가 종종 났다. 하지만 그 시간이 고통스러웠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반대다. 처음으로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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