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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꿈꾸는회계사 Dec 28. 2022

전문직, 실은 이렇게 삽니다.

전문직 생활 8년차가 느낀 전문직의 삶

 몇 년 전 대형회계법인에 근무하던 시절,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아마 새벽 3시, 4시 무렵이었는데 건물 1층으로 내려와 보니 택시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몇 번을 봐도 기괴한 그 광경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마치 늦은 시간 강남역에서 취객들을 태우려고 줄 서 있는 택시들처럼, 수많은 택시가 새벽 퇴근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새벽 퇴근 중 택시 기사님이 동료와 통화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웃어 버리고 말았다. “용산 XX빌딩으로 와, 여기 노다지야 껄껄” 



 주52시간 근무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전문직들은 그거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말 근무를 하지 않더라도 하루 네시간씩 사흘만 야근해도 52시간인데, 그 당시 주말 근무도 종종 했고 평일에는 오히려 야근하지 않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52시간 근무제도가 도입되고 야근을 금지하는 패밀리데이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52시간 초과 근무분에 대해 추가로 급여를 더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일반적인 전문직 종사자들이 일과 삶의 균형, 소위 말하는 워라밸을 추구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직업적으로 그 부분이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고 평생 이 삶을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평일에 집중해서 일하고 주말에는 온전히 일로부터 분리되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그나마 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 전문직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주말에 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맑은 정신으로 휴식을 취하기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주말이 의미가 없고, 주변 변호사들만 봐도 주말에 회의가 꽤 잦다. 주로 매트릭스 팀 체제로 근무하는 회계사의 경우 아무리 주말에 신경을 끄고 싶어도 이메일을 통해 팀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 역시 법인에 소속되어 있든 개업해 사무실을 운영 중이든 가족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주말은 흔치 않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그래도 너는 돈 잘 벌지 않느냐부터 시작해서 어차피 다 힘든데 배부른 소리 좀 그만해라 까지 상당히 정형화된 반응들이 나온다. 그러나 이쯤 되면 돈도 돈인데 일단 좀 살고보자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절대적인 근무 시간이 많더라도 만약 그 시간이 즐겁다면 오히려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끝없는 스트레스이다. 



 추후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결국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클라이언트는 늘 갑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우리의 서비스를 돈 주고 구매한 고객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우리를 활용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를 활용하는 클라이언트가 한두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낮 동안에는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거나 전화를 통해 그들에게 궁금증을 해결하고 도움을 줘야 한다. 안 그래도 일이 쌓여 미칠 지경인데 클라이언트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진정 멘탈이 가출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엔 클라이언트가 우리의 고객이고 돈줄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영업 마인드를 가지고 나이스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낮에 고군분투하고 나면 이제야 온전히 페이퍼 워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야근이다. 법인카드로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도무지 보이지 않는 퇴근 시간에 기운이 빠진다. 어찌어찌 페이퍼를 작성하고 리뷰어에게  올리고 나면 두려운 리뷰가 남아있다. 리뷰어의 맘에 들면 무사히 지나가겠지만 혹여라도 그게 아닐 경우 페이퍼를 다시 갈아엎어야 한다. 그렇게 또 하나의 결과물이 완성되고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왠지 머리가 더 휑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일했는데 보상은 어떨까? 물론 절대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와중에도 성과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모두 열심히 했고 모두 고생했지만 늘 상대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조직은 더 열심히 하고, 더 야근하고, 더 충성심을 보이기를 원한다. 다방면의 성과평가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성과급은 차등으로 결정된다. 조직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성과급을 받아보면 조직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대충 알게 되고 만약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받았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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