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A VIDA_012
집에서 3분쯤 걸어가면 스타벅스가 있다. 여기도 역시 Plaza Real Alajuela(쁠라싸 레알 알라후엘라)에 있는 곳이다. 스타벅스를 포함해 편의점, 은행, 옷 가게, 음식점, 영화관, 통신사, 아이샵, 아이스크림 가게 등 정말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데 딱 하나, 빵집이 없다. 뭐 상관없다. 여기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이미 빵에 질려가는 중이고, 최근에 박 선생님이 알려 주신 빵집의 빵을 먹어 봤는데 꽤 맛있었다. 빵은 앞으로 거기에서만 살 듯하다. 여기에서 먹은 빵들 중에 제일 괜찮았다. 박 선생님 말로는 주말에는 거의 문을 안 열고, 평일에도 빵이 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줄 지어 있을 때도 있다고 했는데 나름대로 이곳 맛집인 건가. 아무튼 학교나 집 근처에 스타벅스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여기 오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어 반가웠다. 그렇지만 커피 원두 생산지라 가격은 훨씬 쌀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여기 스타벅스는 2층짜리이고, 건물 안의 좌석 수보다 테라스의 좌석 수가 더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주문을 하는데도 정작 안에는 사람이 얼마 없다. 이렇게 2층 자리에 앉아 이따금씩 1층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코스타리카에서 에어컨을 항상 트는 곳은 스타벅스와 은행, 마트 정도인 것 같다. 학교에도 에어컨이 없는 판국이니 뭐....항상 여름인 나라인데 집에도, 학교에도 에어컨이 없다. 처음에 와서 굉장히 놀랐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에어컨을 추울 정도로 틀어 놓는다. 엄청 더워서 못 견딜 것 같은 날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한 잔 하면 될 듯. 사실 이 날 집에서 인터넷이 갑자기 안 돼서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에 간 거였다. 추울 것 같아서 겉옷을 가져갔는데 역시나 추웠다.
분명히 처음에 2층으로 올라갔을 때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30분도 채 안 되어 자리가 거의 꽉 찼다. 한국에서도 늘 내가 가는 곳에는 사람이 따라오는데, 여기에서도 똑같다니. 이럴 수가.
나는 분명히 '카페모카 아이스'를 주문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모카 프라푸치노'처럼 생긴 음료가 나와서 의아해하며 영수증을 다시 확인했더니 역시나 모카 프라푸치노였다. 하......조금 화가 났다. 주문받은 알바생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여기에 온 지 2주나 됐는데 주문 하나를 제대로 못 하다니. 더군다나 스페인어를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맛은 있더라. 한국에서도 모카 프라푸치노는 안 먹어 봤는데 여기에 와서 먹어 보다니. 참, 그리고 여기에서는 웬만하면 사이즈를 안 물어보거나 큰 사이즈로 준다. 주문할 때 직원이 그냥 컵을 가리켰는데 나는 아이스를 물어보는 줄 알고 그렇다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사이즈를 물어보는 거였다. 나 역시도 주문할 때 사이즈 말하는 걸 잊어버렸었는데 이제는 작은 사이즈로 달라고 얘기해야겠다.
유심히 관찰해 보니 이 나라 사람들은 웬만하면 모든 음료를 grande 사이즈로 마신다. 그리고 차가운 음료를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집에서도 뜨거운 커피만 마신다. 한국에 있을 때 언어 교환을 했던 에콰도르 여자애가 항상 한 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었는데 여기에 와서 보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갈 때도 늘 들었던 생각이지만, 왜 톨 사이즈의 tall은 영어인데 grande는 왜 그란데, 스페인어일까. 의문이다.
스타벅스를 나와 펀의점인 AMPM에서 핸드폰 요금을 충전하고 나오는 길에 새들을 봤다. 저렇게 생긴 새가 세 마리나 잔디밭을 돌아 다니고 있었다. 코스타리카의 새들은 크기부터가 남다르다. 한국의 참새처럼 작은 새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긴 심지어 학교에는 앵무새처럼 생긴 새들도 산다. 그리고 비둘기는 어느 나라를 가나 많은 것 같다. 이곳 비둘기들도 더럽고, 뚱뚱하다.
집에 오는 길에 있는 큰 나무인데, 처음에 왔을 때보다 꽃이 많이 시들고, 떨어졌다. 언제쯤 또 다시 꽃이 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