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 서평 #7.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얼마 전 물회 먹으러 삼천포에 다녀왔다. 인생 물회 집이라고나 할까.... 옆옆 테이블에는 어르신들 네 분이서 진수성찬으로 시켜 놓고 낮술 중이셨다. 그 테이블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의 카테고리는 뻔하다.
더군다나 경상도라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갈 지는 충분히 예상이 된다. 현 정부에 대한 서슴없는 비판이 오갔지만 그래도 이전 정권에 대해 많이 실망하신 것 같았다. 그나마 타협점을 찾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법의 심판을 받은 최근 두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만 대통령이 되었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신다. 나도 모르게 소리내서 웃어버렸다.
만약에 그 어르신들과 토론을 했다면 대화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 없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것이겠지만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서로 마음을 열지 않는다. 서로 얼굴만 붉히며 한 쪽은 언성이 높아지고 한 쪽은 마음을 닫고 한 귀로 흘려 버릴지도 모르겠다. 이게 우리나라의 정치가 발전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정치인들의 행태,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과 같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세대간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가족 간에는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정치=싸움'이라는 인식이 너무 뿌리 깊이 자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적 소통이 힘든 시스템과 문화를 갖췄다.
매해 스웨덴의 고틀란드에서 열리는 정치 축제는 특정 세대가 아닌 모두를 아우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에게 정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히 아이들의 정치 참여를 유심하게 살펴본다. 정치 축제에 참가한 어린이 기자단은 프레데릭 라인펠트 총리와의 즉석 기자 회견을 진행했는데, 그 질문의 수준에서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이 나쁜데도 경제적인 이유로 안경을 쓰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린 나이에 이렇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그 문제를 발견할 줄 아는 눈을 지닌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라웠다.
스웨덴의 정치인들은 대부분이 어렸을 때 정치에 입문한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한 자리를 해야 정치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여려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소통이 원활한 문화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스웨덴의 FIKA라는 문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별 거 없다. 그냥 커피와 집에서 직접 준비한 쿠키 같은 것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문화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 커피 한 잔 하거나 단순한 커피 브레이크와는 그 결이 전혀 다르다. FIKA는 매일 이루어지는 하나의 일상이자 문화이고 소통을 위한 시간이다. 볼보 공장에서 일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공장의 한 쪽 구석에 모여 FIKA를 한다고 한다. 이케아도 마찬가지다. 잉바르 캄프라드 전 이케아 회장도 FIKA 문화가 기업 문화와 비즈니스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즉 FIKA를 매개체로 소통의 문화가 일상 깊숙히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정치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소통이 원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충분히 정치가 일상이 될 만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과 정치를 이야기 하는 가족의 모습이 일상으로 받아들여 진다면 그 나라의 정치 문화는 분명 건강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게 가능하려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정치에 대한 인식도 변해야 한다. 물론 정치인들이 바뀌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도 우리들의 의무다.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투표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투표율은 현상일 뿐이다.
선거 철이 다가오니 소셜 미디어 상에서 투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이 소셜미디어의 순기능이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소셜미디어는 매개체일 뿐 주체가 아니다. 지난 18대 대선을 통해 나는 소셜미디어의 한계를 경험했다. 그 당시에는 페이스북에서 오가는 이야기만 믿고 순진하게도 당연히 문재인 후보가 당선 될 줄 알았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20대의 투표율은 최저를 기록했다. 우리 세대에 대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소셜미디어가 비즈니스 플랫폼일 뿐이라는 것을 깜빡했던 모양이다.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미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고 경험했다. 시민에게는 조금 더 정치에 대한 의도적인 관심이 필요하고 정치권은 정치를 다가가기 쉬운 문화임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