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놈놈
낯선 사람들과 낯선 잠을 자고 아침도 같이 먹는다.
앞으로 이 사람들과 긴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마치 훈련소의 동기들처럼 어색하지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친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사이가 된다.
나는 3명의 동기들과 함께 출발했다.
알베니아 출신이지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고 있는 알딧,
미국 예술 대학교 교수이며 텐션이 좋은 멜러니 그리고 스페인 사람으로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러 번 왔다는 아마데우스까지, 우리는 꽤 괜찮은 팀이 되었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영상을 기록하고 편집까지 하겠다는 욕심을 끌고 왔다.
그래서 배낭에 침낭 대신 노트북을 챙겼다.
유럽의 겨울을 무시했던 것일까, 아무리 한국보다 덜 춥다고 해도
알베르게의 난방시설을 간과했다.
다행히(?) 멜러니는 걱정병이 있어서 투머치 배낭을 메고 왔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의 '침낭 커버'가 필요 없겠다며 나에게 선뜻 주었다.
자기는 짐을 줄여서 서로 좋다고 했지만 내가 확실히 도움 받은 것을 알고 있다.
덕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끝내는 그 순간까지 그 침낭 커버와 함께했다.
여러 사람이 쓰는 침대로부터 위생적으로 보호했고 나름 보온의 효과도 있었다.
혹시 겨울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다면 침낭은 꼭 필수로 챙기기 바란다.
내가 겪은 알베르게들은 저녁 7시~12시 정도 라디에이터를 켰다가 새벽에 끈다.
새벽이 가장 추운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또 한 명의 멤버가 추가되었다.
스페인의 천진난만한 아저씨 마눌로. 서로 언어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눈길로 걷다가 등산 스틱이 휘어버린 모습,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말하는 스페인어,
내가 따라 하면 서로 웃었다ㅋㅋㅋ그렇게 코믹한 모습이 귀여운(?) 아저씨였다.
알딧은 93년생으로 나와 친구를 먹었다.
비트코인, 읽었던 책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으로 외국인과 공통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퇴사를 하고 순례길을 걷고 있고 우리 나이대에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알딧은 며칠 동안 나의 걷기 메이트가 되었다.
아마데우스를 처음 봤을 때, 혹시 마눌로의 아버지냐고 물었다.
그때 삐졌는지 하루종일 나를 '나쁜 놈'으로 불렀다ㅋㅋㅋ
하지만 그 말투에서 장난스러움이 느껴져 그룹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었다.
그가 나를 나쁜 놈으로 부르면 나는 받아쳤다.
"맞아~"
순례길을 걷다 보면 정글같이 우거진 숲을 지나기도 하는데
최근 큰 바람으로 나무들이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만 나갈 뿐이다.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지! 기어가자..
걷고 쉬고를 반복하는 일정.
알딧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아직 어색했나 보다.
그래도 고맙게도 알딧이 자주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 그룹은 재결합해야 돼!"
두 번째 목적지인 '수비리'에 도착했다.
역시 단 하나의 식당이 열었고 우리는 순례자의 메뉴를 주문했다.
나의 첫 접시는 치킨 빠에야, 근데 기대한 빠에야는 아니고 냉동을 전자레인지에 데운 느낌?ㅋㅋ
두 번째 접시는 송아지 커틀렛, 돼지고기보다 부드럽긴 했지만 역시 두께가 너무 얇았다.
순례자 메뉴는 여러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성비가 좋진 않았다.
내일은 뭐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