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간 퇴준생 Apr 27. 2023

공짜 와인을 마시려다 CCTV에 찍혔다

세상에 다 보고 있었다니..

모닝 와인 때리는 중

에스텔라에서 로그로뇨로 가는 길에는 공짜로 와인을 담을 수 있는 수도꼭지가 있다.

단, 출발한 지 얼마 안돼서 나오기 때문에 모닝 와인을 때리게 되는데

많이 마시면 취해서 힘들 것이고, 병에 담아 가자니 가방이 무거워져서 힘들 것이다.

공짜에 욕심부리지 말라는 지혜가 담긴 것이 아닐까? 허허


이 와인 수도꼭지는 'Bodegas Irache'라는 와인 농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와알못이 마셨을 때는 나름 진하고 맛있었는데

같이 있던 현지인 조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통 순례자의 길, 오른쪽

와인농장을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림길이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 '로스 아르코스'까지 오른쪽으로 가면 18km, 왼쪽으로 가면 16.8km이다.

약 1km의 차이가 나는데 거리가 짧으면 고도가 높기 때문에 속으면 안 된다.

나는 전통적인 순례자들의 길이라는 18km 코스로 향했다.


이 길은 그늘이 하나도 없어서 스페인의 태양과 계속 따라온다.

아무리 겨울이라도 스페인의 쏠(Sol)은 강력하다.

가끔 순례자들을 보면 한쪽 얼굴만 탄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쪽 얼굴이 더 이쁘다거나 그딴 이유는 아니고 해가 그쪽만 계속 때렸기 때문이다.


내 순례길 npc '알딧'

알딧은 내 순례길에서 npc 같은 존재였다.

속도가 빠른 알딧이 먼저 출발하면 나는 그를 따라가는 퀘스트(?)를 수행한다.

열심히 걷다 보면 쉼터에 먼저 자리 잡은 이 놈을 만날 수 있다.

이 날은 보상으로 샌드위치를 받았다.


햇살이 쨍쨍한 길 위의 벤치는 언제나 최고의 식당이 된다.

우리의 식단 매일 햄치즈 샌드위치와 귤, 오렌지주스 그리고 후식으로 피스타치오.

매우 만족스럽다. (마을에 도착하면 비싼 거 먹자는 보상심리가 발동하지만)


로스 아르코스의 '정신나간 방'

오늘은 로스아르코스의 한 민간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유일하게 오픈한 숙소에 도착한 순간 우리는 모두 얼어버렸다.

예상보다 시설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ㅋㅋㅋ

침구류는 찝찝한 느낌이었고 색감은 또 왜 이렇게 화려해..

가격까지 비쌌지만 다음 마을까지 가기엔 너무 멀어서 우리는 선택권이 없었다.


국가별 GDP순위를 찾아보면 스페인은 15위로 검색된다.

한국이 12위 인 것을 보면 유럽에서 스페인은 잘 사는 나라라고 볼순 없다.

그런 와중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스페인의 굉장히 큰 손님이다.

(순례자 등록 2순위 '한국인'을 반기는 이유지 않을까)

국가에서도 마을에 지원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특히 공립 알베르게는 관리인도 따로 있고 매너도 좋다.

다음 마을에서는 공립을 찾아야 해 공립..


스페인의 감자탕과 꼬치구이

우리는 '정신 나간 방'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덜 보내자며 이른 시간 식당으로 향했다.

이 날은 레이싱카 전시 축제 같은 것을 하고 있어서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근처 식당은 꽉 차서 우리는 조금 더 걸었다.


내가 시킨 메뉴는 감자탕과 돼지고기 꼬치구이다.

우리나라의 돼지 등뼈 감자탕은 아니고 포테이토 수프다.

그래도 소시지와 빨간 국물이 한식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꼬치구이는 편의점에서 파는 숯불구이맛 핫바의 고급버전 느낌?

스페인 식사에서는 와인이 빠질 수 없지.

순례길을 걷게 된다면 각종 언어의 '건배'를 배울 수 있다.

살루떼, 친친, 스콜, 프로스트 그리고 건배~!


도슈코 in 스페인

새벽 5시, 알딧과 나는 먼저 길에 나섰다.

더 이상 그 방의 공기조차 마시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사용할 일이 없을 줄 알았던 헤드랜턴을 썼다.

내가 가져간 헤드랜턴은 '크레모아 캡온'이라는 제품인데

모자나 가방에 쉽게 매달 수 있어서 편리했다.

아웃도어 용품 덕후인 알딧이 탐낼 정도였다.


새벽 공기는 새로웠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걸었다.

아무 카페도 열지 않은 것은 흠이지만

이것 또한 여정인 것을 #윤여정


아름다운 세상을 느낀 순간

두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우리는 '산솔'에서 알베르게 밑 카페를 만날 수 있었다.

투숙객들이 조식을 먹는 시간이었는데 한쪽 구석에서 커피만 마시겠다니 허락해 줬다.

이때부터 되도 않는 스페인어에 자신감이 붙어서 주문을 하고 싶었다.


"우노 아메리까노 그란데, 도스 쪼꼬레또 그라시아스"

나름 뿌듯했는데 옆에서 알딧이 낄낄댔다.

굴하지 않고 인사도 잊지 않는다.

"아디오스 아미고"


길을 걷다 보면 나무 가판대나 의자를 만날 수 있는데

기부로 음식을 주는 휴식처라고 한다.

근데 지금은 비수기라 운영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곳에서 생각지 못한 응원을 받았다.

여러 언어로 적혀있는 응원 글들

그중에 내 눈에 들어온 글자는 한글로 적힌 '부엔 까미노'


Buen은 '좋은' Camino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좋은 길 되세요', '걷는 동안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순례자군요 미쳤습니까?'

정도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


가는날이 장날

우리는 '비아나'를 지나는데 마침 장이 열렸습니다.

신발, 옷 같은 공산품과 과일을 팔고 있었어요.

귤 4개, 자두 2개를 샀는데 1.6유로 밖에 안 하더라고요.

여기서 먹은 귤이 인생 통틀어서 제일 맛있었습니다.


시내에서 빵도 사고 돌아다니니까 시민이 먹기 좋은 장소를 알려줬습니다.

비아나 성 위로 올라가면 훌륭한 정원이 있다네요.

홀린 듯 따라간 우리는 가장 높고 시야가 뻥 뚫린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았게요?

성벽에서는 명상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비틀즈 노래더라고요!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아하아아아


"그라시아스, 부따마레"

오늘은 조셉의 마지막 날입니다.

휴가를 길게 쓰지 못해서 스페인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네요.

우리가 올레길을 한 번에 다 걷지 않는 것처럼 스페인 사람들도 순례길을 

긴 기간에 다닌다고 합니다.


조셉과는 이틀정도 같이 걸었는데 금세 친해졌습니다.

계속 같이 걷고 3끼를 같이 먹다 보면 사실 24시간 붙어있게 됩니다.

순례길에서 한국어를 너무 많이 들었는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답니다.

그래도 듣기 좋았어서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하네요. 아마 다음생쯤에..?


저에게 스페인어도 알려줬는데 '부따마레'라는 말이 강력하게 기억납니다.

사실 심한 욕이라고 하는데 역시 언어는 욕부터 배워가는 거죠.

한국어로 치면 'ㅈㄴ좋아'정도가 될 것 같은데..

아무한테나 쓰면 안 되고 친한 사람끼리는 써도 된다고 합니다.


친구가 없다면 "무이비엔(매우 좋아)"을 기억하기 바란다.


"헤이 조셉, 부따마레?"


https://youtu.be/atpeabQt-5Y

매거진의 이전글 자판기가 오아시스로 변하는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