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스쿨 윤정현 Nov 20. 2023

우리는 인간 언어의 발달 과정을 보고 있습니다​

네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

아이는 처음에 울기만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옹알거리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지나면 반응적 소리로 바뀝니다.
그리고 다시 욕구와 불만도 표현하며,
가끔은 주고받는 의미적 소통도 할 줄 알게 됩니다.

울음에서 옹알이로
옹알이에서 반응으로
반응에서 욕구로
욕구에서 긴가민가로
긴가민가에서 의미로
의미에서 소통으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소리는 의미로 나아갑니다.

소리에 점차 의미를 담아내는 과정.
소리에 의미가 담기면 드디어 소통이 됩니다.

이렇게 언어란 의미를 담아내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의미 없는 대화가 무의미하고,
공허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장성한 많은 성인들이 
말은 하는데
의미는 사라지고 소리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말은 하는데
의미보다는 감정을 더 많이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격한 부정적 분노와 짜증적 감정을요.

그때 전달되는 것은 의미가 아닙니다.
상대에게는 오직 분노와 짜증만 전달됩니다.
의미는 사라지고 감정의 소리만 전달되죠.
소통이 아닌 단절감만 커집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화를 내고
짜증과 분노하는 이유는
아이가 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소통할 줄 모르기에 
울음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표현합니다.
소통의 언어를 상실한 어른들은 의미를 전달할 줄 몰라
부정적인 감정과 분노의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그 소리 이면에 전달하려는 의미를 찾아냅니다.
마치 아이의 울음과 옹알이에서도 
아이가 요구하는 의도를 알아차리는 엄마처럼요.
이것이 소통할 줄 아는 자의 방식입니다. 
대화를 성숙하게 해내는 단계에 이르면, 
청자의 입장이든 화자의 입장이든 상관없이 
그것을 의미 있게 해석해 내어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소통하는 법을 상실했습니다.
단절감만 커졌습니다.
그래서 소외감이 들며, 외롭습니다.
이는 삶에 의욕을 잃고 상실감을 키웁니다.
그것이 우울감입니다.

현대인은 그 우울감의 증폭으로 인해
고립되었습니다.
고립은 혼자라는 고독감의 감옥에 가둡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 고독과 우울감, 혼자라는 소외감
상실과 단절의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소통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이는 전달하는 언어에 의미를 담아야 합니다.

몸짓이 아닌 의미 있는 이름을 담아서 불러줄 때
상대는 행복해하며 살아납니다.
그때 나도 함께 살아납니다.
우리는 그때 함께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며
삶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것이 언어가 가진 의미이며 진정한 소통입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너는 하나의 몸짓이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고독이라는 
외로운 몸짓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이때 의미를 부여해 상대를 불러주세요.
그는 나에게로 와서 미소가 될 것입니다.
그와 나는 하나 된 소통의 기쁨을 누리며
행복의 꽃을 피울 것입니다.

오래된 기억은
당신이 이 꽃을 피우도록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소리가 아닌 언어에 의미를 담는 글 ]

감동 전달하기


따뜻한 나눔을 위하여


타인의 마음 읽어주기 1


타인의 마음 읽어주기 2


매번 진심과 리스펙 받는 법


어케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연구하는 사람


언어의 예술가로 살아가기


읽기만 해도 힐링하는 글 보내기


오해될 수 있는 글 재해석 해주기


지지와 응원의 격려 보내기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