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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스쿨 윤정현 May 27. 2024

아서 플렉의 눈물

고뇌하는 시간을 향하여


아프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소수자이거나 약자일 때

항상 을의 위치에서 살아갈 때

소외된 자들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

직업으로서 누구를 위해서 즐겁게 해야 할 때


이러한 상태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괴로움의 상태에서

견디어 내야 하는 상태가 된다.


영화 조커에서 아서가 그랬다.

그는 직업으로서 광대였다.

실수를 하게끔 유도당하고,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놀림을 받고,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해도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 고통을

그는 계단에서 춤추는 미친 연기로

자신의 고통을 노래한다.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웃게 만드는 그들을 향해

울면서 웃어준다.


누구의 고통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누구의 아픔으로 희희덕거리는 사람들

누구의 눈물로 삶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에게 조커는 말한다.


'우리들의 삶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너희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 아느냐고'


그러면서 그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내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


가면 뒤 아픔이 있다.

너희의 비웃음과 무시 뒤에서

마음으로 울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누가 당신을 판단하는 위치에 세웠는가?


소리치지 못해 소리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픔으로만 소리치도록 만든

죽음으로만 알아듣도록 만든

너희로 인해 소리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소리치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저 심연의 밑바닥에서

저 침묵의 기다림에서

너를 향해 소리치기 위해

가장 큰 외침을 준비하고 있다.



윤 정 현



침묵의 아침에

나는 너를 향해 달려간다.

지금은 고뇌하지만 눈물 없는 날들을 향해

너도 한번 다른 이를 위해 고뇌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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