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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스쿨 윤정현 Feb 24. 2023

참된 본성과 가면 쓴 겉자아

삶은 자기 발견을 위한 존재의 여행

이렇게 해도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한 존재는 또 다른 존재를 향해 질문한다.

누가 누구에게 질문할까?


내가 나에게 질문한다.

왜? 모르니까.

전 존재가 후 존재와 같다면 질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그이며

그가 그라는 것은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의미이며

같다면 서로를 알기에 질문할 이유가 없다.


비슷한 질문을 쏟아내거나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는 존재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변형된 같은 자아다.

그것은 하나의 물체를 전후좌우에서 보는 모습과 같다.

같은 대상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뿐이다.


그럼 다른 존재는 누구인가?

다른 존재는 심해(深海)다.

깊고 높으며 광대하지만 움직임이 미세하다.

침묵 속에서 귀기울일 때 들리기 시작하며

분주한 자아를 내려놓고 고요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그 존재는 이성적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감각적, 양심적, 직관적 느낌의 영역이다.

곧 깊은 관찰을 통해 감지되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그 존재는 침묵하지만

진정한 나의 행복을 위해 시그널을 보내준다.

불행을 선택하려 할 때 No라고 말하며

올바른 일을 선택할 때 Yes라고 말해준다.


무언가를 선택하려 할 때

'그것은 하지마!'

또는 '그것은 좋아!'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릴 때

그것이 다른 존재의 소리다.

그 소리를 따를 때 삶의 선물이 무엇임을 안다.


평상시 우리는 이성적 의식에 따라 행동한다.

이기적 선택의 상황이 발생하면

두 존재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건 옳지 않아! 그러지마! 서로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해봐!'

'그래 잘 하고 있어. 너도 욕심을 챙겨. 다른 사람은 더 해!'

자아의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은

살아가는 날 동안 이 딜레마는 멈추지 않는다.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쪽으로 강화된다.


두 존재가 우리 안에 거한다.


이기적 자아는

오로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기를 포장하고 타인을 향해 가면을 쓴다.

크기만 다를 뿐 모두 다 그렇게 사는 줄 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참된 존재의 소리를 따른다.

가끔은 그들을 유혹하지만

내면에서 그들에게 말하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 소리를 따를 때 그들는 행복임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 소리를 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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