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잠시라도 공들일 줄 아는 것
“조건 없는 사랑이 정말로 존재할까요?”
2020년 2월 29일 첫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했던 블로그 이웃님의 질문이다. 그 만남은 내 블로그에 올렸던 ‘조건 없는 사랑’의 글을 구독하던 이웃님의 댓글에서 이루어졌다. 그 댓글은 24번의 주고받음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길게 소통한 사람도 없었다. 불신하던 그분이 마지막에는 자신을 위해 응원해 달라고 부탁한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데, 인공심박동기로 지탱하며 사신다고 한다. 배터리 수명이 있기에 7년마다 한 번씩 교체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수술이 큰 수술이라는 거다. 불안하고 걱정되어서 부탁한다고 하였다. 댓글로 응원을 해드렸다.
지금도 카톡으로 가끔씩 소통한다. 그런데 심장 이외에도 중도장애가 발생하여, 한때는 죽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분이 내 블로그를 구독하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한 번은 “교수님이 노하실까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용인즉슨 철학과 나온 이웃님이 경제학과 교수님의 글을 카톡으로 짧게 문맥의 오류를 언급했는데, 무언가 이상해서 나에게 교수님의 메시지 내용과 의도를 파악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오역이 어디인지 도서관에서 원문 찾아서 본인의 이해가 잘못은 아닌지 확인해 줘.”라는 메시지였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 된다.”고 하면서. 교수님께 위 메시지를 받으니 쎄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내용을 보니 이것은 언급이 아니라 틀렸다고 교수님을 지적하는 수준이었다. 제대로 확인도 없이 철학과 나온 일반인이 경제학 교수님의 경제학 논평을 지적한다? 이건 무례에 해당되는 일이다. 교수님의 메시지는 오히려 최대한 자제를 하면서 보낸 뉘앙스다. 본인도 그 메시지의 분위기는 느낌이 좋지는 않았는데, 어디가 무엇이 문제인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문의한 것이다.
내용은 ‘사회적 자본의 상품화 효과와 밀어내기 효과로 사회 공공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글이었다. 이런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고, 인터넷을 서치 해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수많은 곳을 찾아서 경제 용어 이해와 그 연관성에 따른 해석을 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A4 용지 2페이지를 가득 채워 보내주었다. 글쓰기와 상담을 하는 사람으로 경제학이나 경영학은 문외한인데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상품화 효과는 ‘비상품을 상품’으로 개발할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한 해석이다. 그런데 지적은 ‘사회적 자본을 상품화, 곧 돈으로 하면 좋다는 의미인가요? 아닌가요?’ 이렇게 질문했다. 개념 자체를 잘못 집은 것이다. ‘돈’의 개념이 아닌 ‘비상품을 상품화’ 하는 내용에 따른 문제에 대해 글을 쓴 것이다. 내용을 읽는 것도 전부 경제 용어여서 이해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 몇 번을 다시 읽어보았는지 모른다. 지금도 이것 쓰면서 다시 앞뒤로 몇 번을 읽으면서 쓴다. 모르는 분야는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 경제학 교수님이 이런 기초 개념도 모르면서 언급하는 제자를 보면 얼마나 황당할까? 그래서 위의 대화 내용을 마음에 확 다가오도록 속마음의 말투로 재해석을 해주었다.
“사실 같은 걸 설명하려는데 오류가 난 건 아닌지, 문맥상으로는 같은 걸 설명해야 맞는 듯해서요.” 교수님께 보낸 철학과 나온 이웃님의 메시지다.
이웃님의 위 질문은 조금 세게 말하면, 이런 말투로 들릴 수 있다.
“사실 같은 걸 설명하려는데 그걸 교수란 사람이 감수까지 책임 맡으신 교수로서 그런 것도 모르냐? 그러려면 무료로 해주지, 그러면 선한 동기나 인정받지? 돈 받고 하면서 책임감도 없게 그따위로 오번역하냐?”
조금 심하게 표현하였지만, 사람들이 기분 나쁜 것은, 이런 감정이나 평가적인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가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평가할 만한 수준이 아닌 사람이 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상대방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밀어낸다. 이것을 좀 더 존중의 언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교수님! 책에 ‘상품화 효과란 비공식적 교환, 상호의무, 이타주의나 사랑, 봉사 정신이나 의무감 같은 기준보다는 대부분 상업적 조건에만 의존해서 제품의 성질이나 제품의 공급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다’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이게 사회적 자본 요소를 상품화 곧 돈으로 환산하면 좋다는 의미인가요? 아닌가요? 해석이 어려워서 교수님께 질문합니다.”
위와 같이 질문하였다면 같은 말이어도 교수님을 존중하면서 뉘앙스가 훨씬 부드러워진다. 이웃님에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주었더니 이렇게 말한다.
“매번 진심이세요. 정말 감동입니다. 리스펙 받아 마땅하심요. 아무도 지적을 안 해주니 모르지요. 정현님 같은 벗이 내게 존재하다니!!”
바쁘고 할 수 없을 때는 누구도 어렵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진심을 주는 법을 알아야 한다. 비판하고, 지적질하고, 평가하기에 앞서 자신이 가진 역량으로 도움을 주면 된다. 경제학 관련이 아니고 모르지만 찾아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다 할 수는 없다. 상담이나 코칭을 많이 해주기에 친구가 가끔 비즈니스 관련 조언도 구한다. 그런데 모르는 것은 노코멘트한다. 모르면서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시간이 있고, 알면서도 가까운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상대방도 안다. 언젠가는 그도 나를 외면한다.
사랑은 줄 때 조건 없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주고받을 줄은 알아야 한다.
항상 받기만 하는 사람은 줄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곁에 좋은 사람이 없다. 있더라도 결국 다 떠나간다. 항상 주기만 하는 사람은 영혼이 배고프다. 무시받는다. 받을 줄 모르기 때문에, 주변에서 그 사람은 안 주어도 되는 줄 안다. 이것은 상대방보다 받아야 할 때 받지 않은 본인 책임이 크다. 스스로 복을 차는 사람이다. 나는 학생들에게도 가끔은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게 한다. 그것이 본인이 사회에 나가서도 사랑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블로그 이웃님은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책 출판을 독려하였다. 결국 책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책이 생각같이 팔리지 않아 절필하겠다고 하였다. 잘하는 분야가 글쓰기인데 왜 끊느냐고 하면서 다시 푸시를 하였다. 지금은 책을 2권 출판하고, 또 여러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다. 사람이 한 번에 쉽게 되지는 않는다. 그때 옆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걷는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기에 우리는 사랑이 고프다. 그때 밀고 당기면서 또 사랑을 서로 채워주면서 동반자로 걷는다면 그 길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여행길이 짧은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길고, 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