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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Nov 19. 2021

오늘 하루도 열심히 노동에 임한 나와 당신을 위해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기지개를 켤 때 즈음 밖을 보면 해가 다 졌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 한 날은 나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나?" 바쁘다 바빠 현대인 모두가 가지고 있는 질문일 거다.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산다고 답했다가, 이내 먹고사는 게 이리도 힘들어서야...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질문이 삶을 비집고 들어올 때면 아주 난감해진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저 난감해 할 수만은 없다. 다시 제대로 된 질문을 해본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가?" 일단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너무 당연한 걸 이렇게 각 잡고 쓰는 게 유난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오늘 이 질문에 납득할 만한 답을 제대로 얻어야지만, 오늘 하루 종일 일에 치여서 산 자신에게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유난을 떨어본다.


돈을 벌어야 한다. 당장의 월세와 전기세, 그리고 가스비까지 내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삼시 세끼를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매달 나가는 통신요금과 보험료를 내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지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숨 쉬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 비용은 그렇게까지 많은 노동이 필요하지 않다. 방금 언급한 정도의 삶은 최저 시급으로도 충분히 채워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직장인 시절보다 더 많이, 저녁 시간, 주말, 공휴일을 모두 반납하고 일에 매달린다. 적당히 거절할 수 있는 일도 거절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꼬치꼬치 캐물어가며 스스로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더 질문해야 한다. 왜 돈을 버는가? 아니, 왜 더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하는가? 가장 쉬운 답변부터 찾아본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돈을 버는 행위에 더 집착하게 만든다.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확실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많이 벌어서 넉넉하게 모아두는 것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데 돈만큼 확실한 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열심히 일한다.


방금 적어낸 답변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막연한 미래 때문에 자신을 혹사하면서까지 일하는 건 그닥 아름다운 모습도 아니고, 추구하는 바도 아니다. 그럼 이번에는 다른 답변을 찾아본다. 아주 단순하게 접근하자면, 나는 돈이 좋다. 돈 보다 더 좋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돈은 늘 좋아하는 것 목록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돈을 모으는 것도 좋아하고 돈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돈을 좋아하니 돈 되는 걸 따를 수밖엔, 주변에서는 나보고 왜 전시를 안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 돈이 안 된다. 나 같은 무명의 작가에게 무료로 대관을 해주면서까지 전시를 열어줄 큐레이터는 당연히 없고, 전시를 하려면 대관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액자 렌탈에, 이것저것 들어가는 게 엄청 많다. 전시를 한다고 해도 여전히 무명이니 그림을 사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 멋 내기 용으로 하기엔 너무 지출이 크다. 그걸 할 바에는 그 시간에 작업 하나라도 더 받아서 일다운 일을 하는 게 낫지... 우아하게 전시를 할 수 있는 것도 경제적인 여유에서 나오는 것 같다. 뭐 어쩌면 먼 미래에 있을 우아한 그림 작가 수수진을 상상하면서 지금은 더 열심히 돈을 버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 잠시, 중간 점검의 차원에서 결론을 내려보자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돈을 좋아하기 때문임과 동시에, 아름다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의 의미도 담겨있다. 이렇게 적고 나니 나쁘지 않은데? 갑자기 오늘 하루 열심히 일 한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것(돈)을 열심히 좋아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기꺼이 투자하는 나. 그래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동에 임하는 나. 뭘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사냐면, 나를 위해 열심히 산다. 나를 가장 존중하는 방법으로서의 노동, 단순한 밥 벌이가 아닌 나를 사랑하는 행위. 내게 있어서 열심히 한 노동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기지개를 켤 때 즈음 밖을 보면 해가 다 졌다. 어두워진 바깥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나를 있는 힘껏 사랑했구나를 느낀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지 말고, 지금 그 자리를 지키며 지금처럼 열심히 자신을 위해 일하라.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을 가득 담아 일하라. 그러면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도 그저 감사하게 느껴지고, 마감일이 기다려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게 될 일을 상상하면 더욱 기대감이 커진다. "노동은 나를 향한 적극적인 사랑이다." 이것이 오늘 내가 내린 열심히 일하는 이유이자 결론이다. 꽤 만족스럽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큰 사랑과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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