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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Dec 03. 2021

아무것도 쓸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뭘 해도 써지지가 않는다. 분명 글감이 여러 개 있어서 몇 개의 문단을 쓰기 시작했지만,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간다. 마무리를 지을 수가 없다.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글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삶이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뭔가를 계속하고 있기는 한데, 시원치가 않다. 이런 찝찝한 기분으로 매일을 사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공감할 거다. 최근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통해 여성 댄서들의 열정과 실력을 통해 큰 영감을 얻었고, 거기에 이어 '쇼미더머니10'에서도 많은 래퍼들의 열망을 통해 자극을 받았다. 무대 예술은 피나는 연습, 오직 연습뿐이다. 되지 않는 동작을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 되지 않는 발음을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 꾸준한 노력이 그들을 최고의 자리에 있게 했다. 글쟁이에게 있어 연습은 무엇일까? 많은 작가들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답이라고 한다. 매우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늘 읽고 쓰려고 하는데도 도저히 아무것도 써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이 잘 써지는 날은 굉장히 흥분한 상태일 때가 많다. 비교 의식, 자책, 분노... 이런 종류의 감정이 나를 굉장히 화나게 만들고, 그 흥분으로 키보드를 힘껏 두드리고 나면 뜨거운 것이 줄줄 나온다. 그런 글은 사람들도 재밌게 읽어주고, 공감도 많이 해준다. 내가 20대 초반에 쓴 글을 보면, 하나같이 뜨끈뜨끈하다. 날 것이고, 극단적이다. 뜨거운 글에는 갈등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흥분 상태에 빠질 일이 잘 없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심심하기까지 하다. 한 마디로 지루하다. 내가 읽어도 지루한 것을 계속해서 쓰다 보니 뭘 해도 잘 안 써진다. 예전에는 아주 작은 말 한마디에도 크게 흥분하고 동요했는데, 서른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은 그 무엇도 크게 자극이 안 된다. 이미 다 경험했고, 이미 다 아는 것, 그 누가 나에게 뭐라 해도 대부분의 상황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흥분하지 않는다는 건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까. 성숙해간다는 의미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위드 코로나로 심야 영업 제한이 풀려서 친구와 함께 이태원의 클럽에 다녀왔다. 최근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아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될 것 같은 분위기인데, 어쨌든 잠깐의 좋은 시절에 밤 문화를 잠시나마 누렸다. 클럽에서 만난 잘생긴 외국인이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네 번 정도 데이트를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이것조차 나에게 아무 자극이 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처음 외국인 남자 친구를 만났을 때는 그의 파란 눈도, 갈색 머리도, 훤칠한 다리도 참 자극적이었다. 참 아름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도 내게 큰 자극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고장 난 건 아닌지, 진지한 걱정과 고민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아무런 자극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인 건가? 적어도 글쟁이로 평생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인간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자극과 흥분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아무런 자극과 흥분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오늘은 정말 질문만 한 무더기다. 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정말로 모르겠기에 질문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런 식의 글은 정말 최악인데다 글이라고 칭할 수도 없고, 그냥 투덜거림을 장황하게 적은 기록 정도라고 여겨지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울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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