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 카미노] 삶은 가끔 뒤통수를 때린다

카미노로 가는 길

by 비아루나 Via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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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푹푹 찌는 공기가 폐로 밀려들었다. RER을 타고 파리 오스트렐리츠 역으로 향했다. 역 근처 맥도널드에서 프랑스 도착 이후 첫 끼니를 때운다. 지하철에서 이미 등은 땀범벅이 되어서 마치 사우나에 들어간 것처럼 푹 젖었다. 창 밖에는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분주하다. 내가 지금 파리에 있다는 것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카미노를 걷는 것은 나에게는 먼 미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올 초만 해도 내가 늦여름에 순례길에 있을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여름 초입에 건강 검진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내원이 필요합니다” 의사는 갑상선 암이 의심된다고 했다. 대학 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2주가 마치 1년 같았다. 컨설팅 회사에 입사 후 프로젝트 기간 동안 자정에 퇴근하고 아침 8시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30대 중반인 나에게 남은 것은 얼마 안 되는 예금 통장과 허울 좋은 이력서 한 장뿐이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살아온 게 맞는 걸까?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도 될까?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북적거렸다.


회사에는 신규 프로젝트 참여 대신 무급 휴가를 받았다. 암센터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차트를 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직검사는 음성이지만, 세 번은 해야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6개월 후 재검을 받으세요” 집으로 돌아와 계획 없이 생긴 휴가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 막연히 언젠가 가리라 했던 순례길이 떠올랐다. 무엇에 홀린 듯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표를 샀다.


자정, 오스트렐리츠역에서 순례길의 시작지인 생장드포르로 출발하는 기차에 올랐다. 열차 안은 이미 후끈했다. 8월의 찜통더위에도 프랑스의 일반 열차에는 낡은 팬을 제외한 냉방 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2층 침대의 아랫칸에는 프랑스 아줌마가 취침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푹푹 찌는 2층 침대와 덜커덩 거리는 기차를 타니, 대학 시절 배낭여행할 때 경비를 아낀다고 타던 야간열차 생각이 났다.


그 시절 야간열차는 의자에 앉아서 새우잠을 자야 했지만 열차가 도착하는 도시에 무엇이 기다릴지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마트에서 산 식빵에 잼을 발라 먹으며 끼니를 때우던 여행이 그렇게 신났던 건 왜일까. 젊다는 것 빼고는 내세울 것이 없던 시절, 넘치는 호기심과 열정 덕에 불편하고 낡은 것들도 궁색하기보다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경력이 쌓이며 나는 가끔은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출장을 가고 더 이상 배낭을 메지 않았고 네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행에 익숙해져 있었다. 오랜만의 불편한 여행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기차는 이제 시골길을 달린다. 프랑스에서의 첫날 밤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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