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선잠이 깼다. 일찍 출발하는 사람들이 어두운 실내에서 짐을 꾸리고 있었다. 헤드랜턴을 켜고 나도 배낭을 챙겼다. 창 너머 새벽 별이 군청색 하늘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문 앞에는 순례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나도 신발끈을 매고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어서 카미노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았다. 도로의 끝에서 길은 옆 쪽 숲으로 이어져 있다. 앞서 가는 사람들이 헤드랜턴을 켜고 걷는다. 한참 걸어 숲길이 끝날 무렵 부르게타라는 마을 표지판이 보였다.
부르게타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었다. 마을 곳곳에는 헤밍웨이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헤밍웨이가 이곳에 송어 낚시를 하며 머물렀다고 한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졸음을 쫓는다. 다시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하자 숲길은 자갈길로 이어진다. 내리막의 자갈길에서는 부상을 입기 쉬워서 나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내려갔다.
다음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벌써 도착한 순례객들이 마을 입구 카페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미국인 행크는 연신 괜찮은지 내 상태를 묻는다. 캐나다에서 온 자넷과 수지 아줌마가 스페인식 오믈렛인 토르티야 프랑세사를 주문했고 나는 샌드위치를 시켰다.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데 옆 테이블에 어제저녁 식사를 함께 한 다니엘이 앉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벤치에 앉아 발의 물집 상태를 확인했다. 물집이 생기지 않게 풋크림을 바르는데 다니엘이 지나가며 괜찮냐고 묻는다. 온 동네 사람들이 내 안부를 물으며 지나가는 듯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스페인의 태양이 위용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길은 여전히 자갈길과 숲길이 반복되는데 파리처럼 생긴 벌레들이 나를 계속 따라왔다. 배낭을 내려놓고 벌레 기피 스프레이를 뿌리는데 다니엘이 지나가면 말을 건넨다.
“괜찮아?”
“모기인지, 파리인지 삼십 분째 나를 따라오고 있어”
다니엘이 내가 배낭을 고쳐 메는 것을 도와주었다. 카미노에서는 혼자 걷다가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니엘과 걸으며 카미노를 걷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7년 차 변호사인데 일상이 지루하고 변화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한국과 스페인의 문화와 각자의 관심사들을 나누다 보니 나는 어느새 발의 통증도 잊은 채 걷고 있었다.
다니엘은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다가, 속도를 좀 내 보겠다며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쥐빌리에서 보자며 그는 성큼성큼 멀어져 갔다. 나도 모르게 그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찰나, 그가 뒤돌아서 나를 보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얼른 아무렇지 않은 척 여행 기록을 하느라 사진을 찍는다고 얼버무렸다. 잠시 후 그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마치 무언가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행히 우리는 서로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내 표정을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다니엘과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돌아서서 각자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 나는 잡화점에서 생수를 사고 천천히 내 속도로 걸었다. 땡볕 아래 한참을 걷다가 발 상태가 걱정이 돼서 양말을 벗고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물집이 생겼다. 날은 점점 더워진다. 쥐빌리에 도착하자, 발바닥 통증이 너무 심해져 샌들로 갈아 신을 수밖에 없었다. 약을 바르고 있는데 옆에 앉아 쉬던 세명의 스페인 일행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선탠이 된 건강한 얼굴의 스페인 남자는 내 발 상태가 괜찮은지, 혹시 약이 필요한지 물었다. 이렇게 하루 동안 많은 사람이 나에게 안부를 물어본 적이 있었나 싶다.
이 작은 마을에는 바가 두 개뿐인데 다니엘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에서 콜라를 마시며 쉬다가 사설 알베르게에 갔다. 알베르게는 순례객으로 가득했고 빈 침대가 하나도 없었다. 이곳 공립 알베르게 시설이 형편없다는 말을 듣고 나는 다음 마을인 라라소나로 걷기로 했다.
이미 나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라라소나로 가는 길은 멀고도 먼 길처럼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 지 오래지만 한 발자국 앞만 보고 걸었다. 한참을 걸어 라라소나에 도착했다. 집들은 아기자기했고 집마다 문 앞에 꽃 화분이 늘어서 있고 빨랫줄에는 각양각색의 빨래들이 순도 백 프로의 스페인 햇살 아래 마르고 있었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을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방전된 배터리 마냥 풀린 다리를 끌며 침대로 갔다.
샤워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시원한 것을 마시러 근처 카페에 갔다. 카페 문을 여니 순례객들 사이에 다니엘이 있었다. 그는 다른 순례객과 스페인어로 정신없이 떠들고 있었다. 얼음을 가득 넣은 콜라를 마시며 길에서 보았던 스페인에서 온 순례객들과 이야기를 했다. 대화하는 중에 자꾸만 저절로 눈길이 갔다. 다니엘은 아이처럼 웃고 있다.
왠지 그곳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먼저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샤워 부스는 두 개뿐, 문도 없이 샤워커튼 하나로 가려져 있었다. 서울이었다면 기겁했을 수준이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나도 5분 만에 샤워를 마치고 옷들을 빨아서 햇볕이 잘 비치는 자리에 널었다.
2층 침대는 생각보다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내 침대 아래층 침대에는 일흔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묶는데 친구와 순례 여행 중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바에 가는 길에 미국인 행크 아저씨를 만났다. 12유로의 저녁 식사에는 샐러드, 소고기와 감자 스튜가 나왔다. 행크 아저씨가 맥주를 샀다.
그는 브라질에 18년을 살았고 얼마 전 이혼을 했다고 한다. 신기한 게 여기서는 아무도 묻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꺼낸다. 어쩌면 길에서 만난 타인이기에, 아마 앞으로 다시 볼 가능성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기에, 인생의 비밀들을 더 쉽게 나눌 수 있는 것도 같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 보니 방이 너무 더웠다. 아직 아홉 시도 안 되었는데 아래층 할아버지는 취침을 위해 창문을 닫아버렸다. 완전 찜통이 따로 없었다. 나는 2층 침대의 내 침낭 속에 들어가서 잘 준비를 했다. 너무 더운데 어제 벼룩에 대한 공포 때문에 침낭 안에 들어가야 마음이 놓였다.
창밖에서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자정까지 이어졌다. 그 활기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와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더위에 시달리며 나는 두 시간 넘게 같은 자세로 뒤척이고 있다. 잠은 오지 않고 갑자기 너무나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뒤척거리다 짜증이 치밀다가 마음속에서 질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무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고 한 적 없는데 왜 난 여기 있는 걸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잠을 자든, 배낭을 메고 한밤중에 대시 길을 나서든,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누구도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내 선택의 결과였다. 여전히 나는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짜증이 점차 가라앉았다.
안팎의 불협화음 속에 잠을 청하며 잊을 수 없는 라라소나의 밤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