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푸렌타 라 레이나
5시 50분, 익숙한 알람 소리가 울린다. 며칠간 밤잠을 설친 탓에 눈뜨는 것 조차 힘들었다. 침대에서 조금 더 뒤척거리고 싶었지만 알리아스와 오늘 일찍 출발하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다. 지난 밤에 2인실을 혼자 쓴 덕에 아침에 여유있게 샤워를 하고 배낭을 다시 정리했다. 에너지 바와 사과 하나로 아침을 때웠다. 알리아스는 이미 문 앞에 나와 있었다. 우리는 호스텔 앞에 공용 수도에서 물통에 물을 채웠다.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거의 없었다. 가로등이 켜진 팜플로나의 새벽 거리는 오래된 도시만의 멋스러움이 묻어났다.
알리아스와 이야기하며 걷는데, 조깅을 하던 스페인 남자가 우리를 향해 스페인어로 무엇가를 말하며 내 등 뒤 방향을 가리킨다. 다행히 알리아스가 스페인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그 남자는 우리가 반대편으로 걷고 있다고 했다. 하마트면 순례길을 반대 방향으로 걸을 뻔 했다. 뒤를 돌아서 걷다가 조금 지나서 길 건너 벽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카미노 표시를 발견했다. 도시에는 카미노 표식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고 특히 어두울 때는 찾기가 더 어려웠다. 불안이 마음을 엄습할 때 어디로 가야할지 더 헤매게 되는 것처럼.
내리막길에 다다르자 촘촘히 켜진 가로등 불빛 아래, 색색의 배낭을 맨 순례자들이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이 도시에는 공원마다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빼곡하다. 내리막길이 끝날 무렵 우리는 팜플로나를 완전히 벗어났다.
잠시 후 본격적인 오르막 산길이 시작되었다. 길 양 쪽으로 밀밭이 가없이 펼쳐져 있고 멀리 교회탑과 작은 마을이 보인다. 고도가 높아지자 산 아래서는 보지 못했던 식물들이 보였다. 처음 보는 식물 사진을 찍으며 알리아스가 물었다.
“식물들마다 살기에 적절한 고도가 있는 걸까. 아니면 고도에 따른 다른 환경에 적응하느라 식물들이 다르게 진화한걸까?”
“글쎄, 둘 다 아닐까? “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알리아스의 질문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나는 한국 사회에 외적으로는 잘 적응한 사람인데 마음 한 구석에는 뭔가 획일적인 삶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식물들이 다른 고도에서 잘 살듯이 사람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다른 삶의 방식이 있는게 아닐까? 그런데 항상 다음 무엇을 해야 하나에 급급하게 살다보면 정말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규정지어버리는 듯하다.
이런 생각도 잠시, 숨이 차오르고 우리는 말없이 길을 걸었다. 카미노를 걸을 때 특히 이런 오르막길에서는 온전히 순간에 몰입하게 된다. 경사진 길이나 자갈길을 걸을 때는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고 한 발 한 발에 집중하게 된다. 앞서 걷던 알리아스가 멈춰섰다. 한 벨기에 순례자의 사진이 붙어 있는 십자가 표식이 길 옆에 있었다. 알리아스와 나는 잠시 멈춰섰다. 순례길에서 순례자의 무덤을 만날 때마다 왠지 숙연해진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절실한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페르돈 고개를 앞두고 알리아스는 지쳤는지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조금 쉬었다가 천천히 따라오겠다고고 했다.
나는 중간 중간 그녀를 기다리며 속도를 맞췄는데 어느 지점부터는 알리아스가 보이지 않았다. 길은 점점 폭이 좁아지고 경사가 가팔라졌다. 숨이 턱까지 올랐다. 숨이 차기 시작하면 주변을 둘러보기가 어렵다. 배낭을 메고 길에서 늦게 가더라고 멈추지 않고 걷는데만 집중했다. 중간에 쉬면 더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쯤 지나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다. 좁은 산길과 달리 확 트인 정경이 펼쳐지고 카미노 책에서 보았던 거대한 순례자 철제 모형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배낭을 풀고 숨을 고르는데 산 위쪽은 꽤 추었다. 손이 꽁꽁 얼고 세찬 바람 때문에 몸이 휩쓸려 갈 것 같았다.
철제 모형 근처 빨간 미니밴에서 커피를 팔고 있었다. 얇은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받아들고 언 손을 녹이며 알리아스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계속 올라오는데 알리아스는 보이지 않는다. 혼자라도 내려가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오르막길 끝에 그녀의 배낭이 보였다. 화장실을 찾아서 먼 곳까지 다녀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사방이 밀밭 뿐인 벌판에서 화장실이 급해지면 곤혹스럽다.
산 정상에서 보이는 세상은 온통 연초록이다. 알리아스가 커피를 마시기를 기다린 후 우리는 계속 걷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은 흙길과 자갈길이 이어지고, 순례객들이 쌓아놓은 돌탑들이 여러군데 보였다. 그런데 하늘이 영 심상치 않다. 회색 구름들이 몰려들어 금새라도 비를 쏟아낼 태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우가 쏟아졌다. 마치 동남아 스콜처럼 쏟아지는 비 앞에 순례객들 우비를 꺼내느라 분주했다. 앞에 걷던 순례자가 우비를 입는데 우비가 배낭에 걸려 애를 먹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우비를 입는 것들 도와주고 나도 배낭 위에 커다란 우비를 뒤집어 쓰고 걸었다. 우비가 무거워서 괜히 들고 왔나 생각했었는데 우비가 없었다면 정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뻔했다. 비는 한동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더니 금세 가늘어졌다.
밀밭 근처에 다다르니 바닥에 물이 고여서 신발이 젖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폭우가 지나간 하늘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너무나 청명했다. 비가 스콜처럼 쏟아진 탓에 방수 점퍼도 이미 다 젖었다. 그런데 축축한 이 상태가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비가 갠 산 허리의 풍경을 보며 잠시 그대로 섰다. 길가의 풀들은 더 싱그러워진 느낌이었고 예상치 않은 비가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씻어간 느낌이었다.
산 길을 내려와 걷다 우테가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있는 바 앞에 순례객들이 옷을 말리며 쉬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온 수지와 자넷 아줌마도 보였다. 나도 우의와 점퍼를 벗고 젖은 등산화 대신 샌달로 갈아 신었다. 카페에서 핫초콜릿을 마시며 몸을 녹이며 체코 순례객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문을 열고 반가운 얼굴이 들어온다.
뒤에서 걷던 알리아스가 드디어 도착했다. 나는 옆자리 의자를 끌어 알리아스에게 앉으라고 하고 그녀가 우비를 정리하는 동안 핫쵸콜릿을 한 잔 더 주문했다. 빨랫줄에 걸린 우비에 고양이가 매달려 놀고 있었다. 왠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노곤노곤해졌다. 그냥 그 순간이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푸렌타 라 레이나로 가는 길목에 카미노 길과 2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 교회가 하나 있었다. 알리아스는 그 교회가 8각형의 돌기둥으로 만들어졌는데 중세 시대 기사들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즐겨 읽었던 아더왕과 기사류의 이야기가 떠올라 호기심에 나도 함께 가기로 했다. 에우나테 교회는 12세기 로마네스트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팔각형의 양식은 스페인의 코르도바 지역의 영향을 받았다.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성소이며 전통적인 순례 행진인 로메리아가 개최되는 곳이었다.
포르투갈의 토마르 성전 기사단 수도원이나 런던의 템플 교회와 같은 중앙집중식 성당들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성전 기사단과 연관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잠시 순례길에서 빠져 나와 중세 기사단에 얽힌 이야기 속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교회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카미노 순례길로 이어지는 숲길을 걸었다. 오후 네 시가 넘어서 평소보다 늦게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사설 알베르게는 새로 지어졌는지 지금까지 묵었던 곳보다 훨씬 깨끗했다. 이층 침대들 사이에 칸막이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자넷과 수지 아줌마와 함께 저녁을 함께 먹었다. 오랫만에 순례길에서 만나기 어려운 신선한 메뉴와 야채들이 많았다. 순례길에서 이런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저녁 식사 중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눴다.
자넷 아줌마는 키가 꽤 컸는데 스튜디어스를 하다 몇 달 전에 퇴직했고.지난 해에 심장 수술을 해서 카미노에 오기 전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수지 아줌마와는 하이킹 클럽에서 만나서 8년째 친구 사이였다. 수지 아줌마는 덴마크에서 태어났는데 젊은 시절에 캐나다로 이민가서 캐나다에 수십년째 살고 있었다. 미용사인 수지 아줌마는 에너지가 엄청 넘치는 스타일인데 카미노 순례길을 걸은 후 킬리만자로 등산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너무나 멋진 여자 둘을 보니 나도 저렇게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늙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들어 나이드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삼십대 초반까지도 이십대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직 젊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삼십대 중반을 넘어가니, 앞으로 십년, 이십년 동안 주어진 삶을 생생하고 충만하게 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기분에 종종 사로잡혔다. 이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는데 오늘 캐나다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이 드는 것이 조금은 덜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