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엔타 라 레이나에서 에스테야
새벽에 푸엔타 라 레이나를 떠나는 길에 카페에 들렀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보니 행크였다. 인사를 하는데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다니엘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는 빚쟁이를 만난 사람처럼 그의 안부 인사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서둘러 카페를 떠났다. 우리는 이름만 알고 이메일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다. 새벽의 어스름한 다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던걸까? 그 사람과 이야기할수록 묘한 끌림을 느꼈다. 두려웠다. 순례길에서 나는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내 인생을 하나씩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길 기대했다. 이 곳에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 앉아 ‘이 사람을 만나서 삶이 조금 더 풍요로와 졌으니 충분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엇갈린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누군가와 헤어지는 과정은 씽크홀이 생긴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푸엔타 라 레이나의 끝에서 돌아본 마을은 가로등 불빛 아래 평화로웠다. 나는 고요한 마을과 그를 뒤로하고 혼자 걷기 시작했다.
십여분쯤 지나자 멀리 앞서 걷는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 단체 순례객들이 보였다. 단체 순례객의 뒤를 따라 걷는 데 오른편 길 가에 작은 성당이 보였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몇 개의 나무 의자가 있고 가운데 성상이 있는 성당은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작은 성당에 앉아 기도 했다. 성당을 나오자 순례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아스팔트 길은 다시 숲길로 이어졌다. 숲길을 지나자 밀밭 길이 가없이 펼쳐진다. 온통 옅은 황금색 밀밭 길을 걸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의 불안이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항상 너무 앞서가서 타인에게 벽을 쌓아 버리는 나의 고질병이 여기까지 나를 따라온 것 같았다.
멜랑꼴리한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깨운 것은 꼬르륵 꼬르륵 연달아 배에서 나오는 생체 알림이었다. 오늘 아무 것도 안 먹고 몇 시간을 걸은 탓에 배가 고팠다. 밀밭 길을 걸어 오늘 여정의 첫 마을인 시라키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의 허름한 바에서 또르티야 프랑세사와 카페오레를 마시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라키에서 쉬어가는 순례객들이 가게마다 가득했다. 내 눈은 나도 모르게 혹시나 그가 있는지 순례자 무리들을 훑고 있었다. 그는 없다. 이제 다시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왜 머리와 마음이 이렇게 불협화음인지 모르겠다.
다음 도착지인 로르카까지는 가는 길 내내 포도밭들이 즐비하다. 포도밭을 처음 본다. 스페인의 강력한 태양 아래서 영글어가는 포도가 와인이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오늘은 기온이 35도는 넘을 듯 했다. 하늘도 땅도 모두 불타오르는 느낌이다. 로르카에 도착해서 물통에 물을 긷고 양말을 벗어서 물집 생긴 자리를 확인했다. 약간 물집이 잡혔지만 아직은 걸을만했다. 썬크림을 바르고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멀리 보이는 나무 그늘 아래 한 무리의 순례객들이 쉬고 있었다. 순례자들에게 점점 가까워지자 누군가 나를 불렀다.
“제이미 괜찮아?”
다니엘이었다.
“응, 이제 걷는게 훨씬 나아졌어, 넌 오늘 어디까지 가?” 나는 애써 초연한 척 대답했다
“에스테야까지”
“응, 나도, 좀 더 쉬다가 와, 나 먼저 갈께”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그가 물었다.
“결정은 내렸어?”
“무슨 결정? 아, 아직, 우선은 그냥 걷는데만 집중하려고”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태양 탓인지 걷다 지친 순례객이 잔디밭 그늘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더 걸은 후 그늘에서 잠시 쉬다가 배낭의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두 명의 순례객이 내 앞을 지나가는데 다니엘이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걷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지나간 그가 혼자 되돌아온다. 내가 일어서기를 기다리며 옆에 멈추어 선다. 무심한 척 했지만 왠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걸으며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기하게도 우리 둘 다 헤르만 헤세와 밀란 쿤데라를 한 때 좋아했었다. 그는 스페인에서 변호사를 하다 미국 대학원에서 법률 공부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질문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못 찾았고 뉴욕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쿠바로 가서 2년 동안 영화를 공부했다. 단편 영화를 다섯 편 정도 만들었는데 자기에게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다시 변호사의 길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꿈이 뭐야?”
나의 꿈? 나는 세상을 돌아다니고 글을 쓰고 싶었어.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외교관이 되어서 퇴근 후 글을 쓰는 삶을 대학생 때는 막연히 생각했었어. 그런데 대학교 때 좋아했던 남자가 생겼어. 사랑 때문에 외교관 꿈을 접었는데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 것도 같아. 그것을 절실히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어쨌든 외교관은 안 되었지만 공부와 일 때문에 외국을 많이 돌아다니긴 한 편이야. 그런데 글을 쓰는 것은, 아직 못했네.
다니엘이 웃는다.
“우리 합작회사를 하면 되겠다. 영화 만들 때 시나리오가 중요한데 네가 시나리오 쓰고 내가 연출을 하면 되겠네”
“하하, 생각해보지”
고등학교 1학년 때 꿈을 쓰는 란에는 작가라고 썼던 것 같다. 가끔씩 시를 썼다. 중고등학교 때 시백일장에서 종종 상을 받았는데 한 번도 심각하게 시를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한 적은 없었다. 주로 슬플 때 시를 썼다. 슬프지 않을 때는 시를 잊고 살았다. 어쩌면 나는 글쟁이가 될만한 재능은 없다고 생각하거나, 작가가 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안한 미래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내 꿈을 내 마음 속 골방에 처박아 놓고 살았다.
에스테야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나, 다니엘, 다니엘 친구인 하비에르, 이렇게 셋이 서 있는데 직원이 일행이냐고 물었다. 나는 재빨리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침대표를 받아들고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낯선 곳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방이 지닌 매력에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더해지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그냥 좋은 친구일 뿐이다라고 되뇌이며 잠이 들었다.